AI 설교 평가는 무엇을 보는가 — 그리고 보지 않는 것
2026년 9월 19일
「AI 가 설교를 평가한다」는 말은 마음에 걸립니다. 걸리는 것이 맞습니다. 설교는 강단에 선 사람의 몫이고, 최종 분별은 언제나 그분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AI 가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를 먼저 긋습니다 — 무엇을 보는지보다 무엇을 보지 않는지가 더 중요한 자리입니다.
보지 않는 것
- 신학적 판단. 이 본문 해석이 옳은가, 이 교리가 맞는가는 보지 않습니다. 교단마다 갈리는 지점에서 한쪽을 정답으로 세우면 그것은 피드백이 아니라 편들기입니다.
- 영성. 기도의 깊이, 성령의 역사, 그날 예배당에 있던 것 — 글로 옮겨진 녹취록에는 담기지 않고, 담기지 않은 것을 평하면 거짓말입니다.
- 사람. 설교자의 인격이나 소명을 평하지 않습니다. 짚는 것은 그날 그 설교의 말입니다.
이 셋을 빼면 남는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남는 것이 사실 설교자가 혼자서는 가장 못 보는 자리입니다.
보는 것
- 구조. 대지가 몇 개이고 서로 어떻게 잇는지, 청중이 지금 어디쯤인지 알 수 있게 번호를 다시 불러 주는지.
- 본문과의 거리. 본문 앞뒤 절을 함께 읽는지, 예화가 본문으로 돌아오는지, 결론이 본문에서 나왔는지.
- 적용. 방향(「서로 배려합시다」)에서 끝나는지, 동작(「나가시기 전에 그 한 분 손을 잡고」)까지 가는지.
- 말의 습관. 군말의 횟수, 문장 끝의 되풀이, 한 문장의 길이. 사람 판단이 아니라 세어서 나오는 수라 틀리지 않습니다.
- 마지막 문장. 그림으로 끝나는지 개념어로 끝나는지 — 사람은 마지막에 들은 것을 들고 나갑니다.
믿을 수 없는 지적을 가려내는 기준 하나
AI 의 말을 얼마나 믿을 것인가를 정하는 기준은 하나면 됩니다 — 원문 인용이 붙어 있는가. 「전환이 매끄럽지 않습니다」는 아무 설교에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예컨대 「두 번째 대지에서 세 번째로 넘어갈 때 "그리고 또 하나는요"가 다리의 전부입니다」 같은 말은 그 설교에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인용이 없는 지적은 버리셔도 됩니다. 그리고 틀린 지적이 하나만 있어도 리포트 전체를 못 믿게 되므로, 인용 없는 말은 애초에 쓰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같은 까닭으로 대안은 그대로 강단에서 쓰실 수 있는 문장이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하십시오」는 대안이 아닙니다. 「장례식장 대목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여섯은 '~입니다'로 끊으십시오」가 대안입니다.
한 편이 아니라 회차
한 편의 평가는 그날의 우연을 많이 담습니다. 값어치는 회차가 쌓일 때 나옵니다 — 같은 지적이 말만 바뀌어 넉 주째 오는지, 지난번에 있었는데 이번엔 안 나온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갈라 보여 주지 못하는 도구는 평가는 해도 회고는 못 합니다.
그리고 누가 보는가
피드백이 오지 않던 가장 큰 까닭은 「누가 보느냐」였습니다. 그래서 리포트는 설교자 본인만 봅니다. 교회도, 당회도, 서비스를 만드는 저희도 임의로 열지 않습니다. 녹취록은 학습에 쓰지 않고, 보관 기간은 설교자가 정하시며, 원하시면 즉시 지웁니다. 설교는 목회자의 저작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