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4일 주일 · 성령강림 후 제19주일(Proper 22)
10월 4일 주일 설교 — 마태복음 21:33-46, 포도원을 맡은 자들과 버린 돌
이번 주 네 본문은 성서일과(RCL)에서 온 것이고, 고신이나 백석처럼 성서일과를 따르지 않는 교회가 많으니 참고 자료로만 보셔도 됩니다. 출애굽기 20장은 건져 내신 분이 주신 말씀을, 시편 19편은 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빌립보서 3:4b-14은 자기 이력을 다시 셈한 사도를 보여 주는데, 이 셋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이 마태복음 21:33-46입니다. 맡은 자가 주인의 몫을 돌려드리지 않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를 묻는 본문이어서 복음서를 본문으로 잡았고, 이 본문이 설교자에게 조용히 요구하는 것은 농부들을 「그들」이라고 부르는 순간 설교가 거기서 멈춘다는 사실을 아는 일입니다.
이 주일의 본문
- 구약 출애굽기 20:1-4, 7-9, 12-20
- 시편 시편 19
- 서신 빌립보서 3:4b-14
- 복음서 마태복음 21:33-46 — 이번 주일의 중심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가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마태복음 21:33-46
-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와 즙 짜는 틀과 망대까지 갖춘 뒤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떠납니다(33절). 이사야 5장의 포도원 노래를 들은 귀라면 첫 문장에서 이미 누구의 이야기인지 짐작합니다.
- 열매 거둘 때가 되어 주인이 종들을 보내지만 농부들은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칩니다. 더 많은 종을 보내도 같은 일이 되풀이됩니다(34-36절).
- 마지막으로 주인이 아들을 보내는데, 농부들은 상속을 차지할 셈으로 그를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입니다(37-39절). 비유의 무게가 여기서 한 번 꺾입니다.
- 예수께서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물으시자, 듣고 있던 이들이 스스로 판결을 말합니다(40-41절). 선고가 설교자의 입이 아니라 청중의 입에서 나온 것이 이 본문의 구조입니다.
- 이어 시편 118편을 인용해 버린 돌이 모퉁잇돌이 되었다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 열매를 내는 백성에게 넘어간다고 하십니다(42-43절).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인 줄 알았으나 무리를 두려워하여 손을 대지 못합니다(45-46절).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주인의 몫을 돌려드리는 문제
포도원은 농부들의 것이 아니었고, 갈등은 소유가 아니라 열매를 돌려드리는 지점에서 터집니다. 맡김과 셈하는 때라는 두 축으로 설교를 세우면 회중이 자기 자리를 어렵지 않게 찾습니다. 다만 열매가 무엇인지 끝까지 말하지 않으면 「더 충성하자」는 채근으로 내려앉고, 열매의 뿌리를 말하지 않으면 행위로 서는 구원처럼 들립니다. 그 값을 치를 각오로 대지를 잡으십니다.
아들을 보내신 주인과 버린 돌
37-39절과 42절을 한 줄로 이으면 설교가 기독론으로 섭니다. 포도원 밖에서 죽은 아들이 모퉁잇돌이 되었다는 전환은 이 본문이 스스로 마련한 복음의 자리입니다. 이 죽음을 속죄의 어느 틀로 설명하느냐는 교단마다 갈리니, 어느 틀을 고르기 전에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 곧 끈질긴 보냄과 끝까지 간 거절을 먼저 말씀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대신 비유의 날카로운 심판 쪽이 무뎌지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청중이 스스로 선고하게 두는 구성
41절에서 선고한 입은 예수의 입이 아니라 듣던 자들의 입이었고, 45절에서야 그들은 그 선고가 자기에게 돌아온 것을 알아챕니다. 이 거울 구조를 설교의 구조로 그대로 옮기면 적용을 억지로 밀어 넣지 않아도 됩니다. 값은 둘입니다. 몰아세우는 설교로 기울기 쉽고, 거울을 들이댄 다음 복음을 둘 자리를 미리 비워 두지 않으면 회중이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그들」로 끝나는 설교
농부를 당시 종교 지도자로 못 박고 끝내면 본문이 45절에서 하는 일, 곧 듣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일을 설교가 하지 못합니다. 43절의 「다른 백성」을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했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것도 로마서 9-11장과의 긴장을 지워 버리는 길이고, 언약의 연속과 불연속을 어떻게 보느냐는 교단마다 다릅니다. 판단을 내리시려면 적어도 그 갈림이 있다는 것은 밝히고 가십니다.
세부를 하나씩 맞추는 우화 풀이
울타리는 무엇, 망대는 무엇, 즙 짜는 틀은 무엇 하고 하나씩 대응시키면 대지는 세 개가 나오지만 본문이 묻는 한 가지가 사라집니다. 33절의 세부는 주인이 할 일을 다 해 두었다는 한 가지를 말하려고 모여 있습니다. 비유가 스스로 풀어 주는 것(종들, 아들, 열매, 돌)까지만 따라가는 편이 낫습니다.
포도원을 우리 교회 사업으로 바꿔 놓기
포도원을 곧 우리 교회로 치환하면 적용이 헌금과 봉사 독려로 좁아지고, 주인의 몫을 요구받는 쪽이 회중만 됩니다. 이 본문에서 먼저 셈을 받는 자리는 포도원을 맡은 자, 곧 강단과 당회입니다. 설교자가 그 자리에 자기를 세우지 않고 전하면 회중은 금방 알아듣습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Ryan Kristopher Giffin (2023). Would Paul Have Written Something Like This? The Justification Clause of Philippians 3:12 and the Last Judgment. Horizons in Biblical Theology. 논문 보기
빌립보서 3:4b-14
이 논문은 빌립보서 3:12를 「내가 이미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도 아니요」로 읽는 이문이 몇몇 중요한 사본과 초기 인용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초록에 따르면 그 읽기는 바울이 썼을 리 없다고 물러날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미래 시제로 말하는 바울의 다른 구절들과 어긋나지 않으며 마지막 심판에서의 의롭다 하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12절의 「아직 얻지 못하였다」가 성화의 진행만이 아니라 마지막 날의 판결까지 바라보는 말이라면, 이 본문에서 구원의 확신은 어느 자리에 두고 전해야 할는지요?
Francesco Bianchini (2024). Talking about Oneself to Talk about Christ: The Autobiographical Text of Philippians 3:1–4.1 in Light of Ancient Rhetorical Heritage. Religions. 논문 보기
빌립보서 3:4b-14
이 논문은 빌립보서 3:1-4:1을 고대 수사학에 있던 자기 칭찬의 장르 안에서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바울이 자기 이력을 늘어놓는 것은 스스로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바꾸어 놓은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한 방식이며, 듣는 이들이 그 삶을 저마다의 자리에서 본받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이 단락에서 바울의 자기 이야기가 그리스도 이야기로 넘어가는 지점이 몇 절인지, 강단에서 내 간증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본문 앞에서 물어볼 수 있지 않겠는지요?
Solomon Olusola Ademiluka (2023). Exodus 20:5 in light of the teaching on retribution in the neo-Pentecostal churches in Nigeria. In die Skriflig/In Luce Verbi. 논문 보기
출애굽기 20:1-4, 7-9, 12-20
이 논문은 출애굽기 20:5의 「아버지의 죄를 자손에게 갚는다」는 말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교리를 끌어내는 읽기를 검토합니다. 초록에 따르면 에스겔과 예레미야도 포로를 조상의 죄와 연결해 말하므로 집단 책임과 개인 책임이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통상의 전제는 다시 볼 필요가 있으나, 출애굽기의 이야기적 성격을 보면 그 구절의 말은 서술자의 말이어서 거기서 저주 교리를 세우는 것은 본문을 잘못 쓰는 일이라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성서일과는 5-6절을 건너뛰지만 십계명을 통째로 읽는 회중에게는 그 절이 들립니다. 성도들이 집안의 불행을 조상의 죄로 셈하는 방식으로 이 본문을 듣고 있다면, 강단에서 한 번은 그 자리를 짚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 설교 안에서 농부들을 「그들」이나 당시 지도자들로 가리킨 문장이 몇 번이었고, 회중과 설교자 자신을 농부 자리에 세운 문장은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요. 있었다면 녹음 몇 분대였는지요.
- 42절의 모퉁잇돌을 본문 낭독으로만 지나가셨는지, 아니면 거기서 한 대지를 세우셨는지요. 그 돌을 말한 시간이 몇 분이었는지 재어 보십니다.
- 「열매」가 무엇인지를 일반론이 아니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말로 말하신 대목이 몇 번, 어디에 있었는지요.
- 예화에 쓴 시간이 본문 자체를 설명한 시간보다 길지 않았는지요. 예화가 몇 개였고 각각 몇 분이었는지 세어 보십니다.
- 마지막 5분에서 적용이 방향으로 끝났는지 행동으로 끝났는지요. 회중이 다음 주일까지 실제로 할 수 있는 동사가 몇 개 나왔는지 꼽아 보십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맡은 자답게 충성하십시다」는 방향이고, 방향은 회중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말입니다. 적용은 다음 주일이 오기 전에 끝났는지 안 끝났는지 본인이 알 수 있는 크기여야 합니다. 이 본문은 쥐고 있던 것을 돌려드리는 이야기이므로, 작아도 실제로 손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행동이 맞습니다.
- 교회에서 맡은 일 가운데 내가 주인처럼 쥐고 있던 것 하나를 이번 주에 다른 성도에게 실제로 넘겨 보십니다. 명단이든 열쇠든 계정 비밀번호든 순서 하나든, 말로가 아니라 건네는 데까지 가는 것이 요점입니다.
- 바른 말을 전했다가 내가 멀리하게 된 사람 한 분에게 이번 주 안에 전화나 문자를 한 통 보냅니다. 비유에서 맞고 쫓겨난 종이 늘 밖에 있는 사람만은 아닙니다.
- 이번 주 수입이나 시간에서 한 몫을 금요일까지 미리 떼어, 교회 밖의 한 사람에게 씁니다. 장을 봐서 한 가정에 가져가는 정도면 충분하고, 남은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떼는 것이 이 본문의 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