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 누가복음 2:1-20 · 요한복음 1:1-14 · 이사야 9:6 · 마태복음 2:1-12
성탄절 설교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날
성탄절은 회중이 한 해 중 가장 익숙한 본문을 가장 익숙한 마음으로 듣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 강단이 감당해야 할 것은 새로운 말을 찾는 일이 아니라, 다 아는 이야기가 다시 사건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 페이지는 그 준비와, 설교 후 녹음이나 녹취록을 놓고 스스로 되짚어 보실 때를 위해 Preaching Lab 이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 한눈에
- 누가복음 2:1-20 은 황제의 칙령으로 시작해 구유에 누인 아기로 내려오고, 목자들이 듣고 가서 보고 돌아가며 전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세상의 권력에서 시작해 들판의 무명한 사람들로 시선이 옮겨 가는 것이 이 본문의 움직임입니다.
- 요한복음 1:1-14 은 같은 사건을 시간 이전에서부터 봅니다. 태초의 말씀이 세상에 오셨는데 세상이 알지 못했고, 그럼에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 14절의 육신이 되심으로 모입니다.
- 이사야 9:6 은 어둠 가운데 있는 백성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선언이며, 그 아기에게 붙는 이름들은 아기의 크기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큽니다. 성탄의 역설이 구약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 마태복음 2:1-12 은 이방의 박사들은 찾아와 경배하는데 예루살렘은 소동하고 헤롯은 두려워하는 대조를 보여 줍니다. 아기의 탄생이 모두에게 기쁜 소식으로 들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여기 있습니다.
- 성탄절 강단에 요구되는 것은 이 네 본문 중 하나를 골라 그 본문이 하는 말을 하게 두는 것입니다. 성탄절 전체를 한 설교에 담으려 하면 어느 본문도 제대로 말하지 못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낮은 자리로 오신 하나님 (누가복음 2장)
황제의 호적 명령과 여관에 자리가 없어 구유에 누인 아기, 그리고 첫 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신분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님이 어디로 오셨는가가 본문 자체에서 드러납니다. 이 길은 설교자가 그 낮음을 감상으로 미화하지 않고, 왜 그 자리였는가를 끝까지 묻는 것을 요구합니다. 구유가 예쁜 장식이 되는 순간 이 길은 힘을 잃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 (요한복음 1장)
성탄을 아기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라 성육신이라는 교리적 사건으로 다루는 길입니다. 회중이 매년 듣는 마구간 장면 대신, 창조주가 피조 세계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의 무게를 설교하게 됩니다. 이 길은 추상으로 흐르기 쉬우므로, 14절의 거하셨다는 말이 실제로 어떤 삶이었는지를 복음서의 구체적 장면과 이어 주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소식을 듣고 반응한 사람들 (마태복음 2장 · 누가복음 2:15-20)
목자들은 가서 보고 돌아와 전했고, 박사들은 먼 길을 와서 경배하고 다른 길로 돌아갔으며, 헤롯과 예루살렘은 소동했습니다. 같은 소식 앞에서 갈린 반응을 따라가면 회중 자신이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를 묻는 설교가 됩니다. 이 길은 회중을 헤롯 편에 세워 꾸짖는 쪽으로 기울기 쉬우니, 본문이 그러하듯 경배한 사람들의 발걸음에 더 오래 머무는 것이 맞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본문 넷을 한 설교에 다 담는 것
성탄절 설교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모습은 누가복음의 목자, 마태복음의 박사, 요한복음의 말씀, 이사야의 이름들이 한 편에 차례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회중은 성탄절 이야기 전체를 들었다고 느끼지만 어느 본문도 자기 말을 다 하지 못합니다. 본문을 하나로 정하셨다면 나머지는 인용 한 번 정도로 그치는 것이 그 본문에 대한 예의입니다.
구유가 설교의 주제가 되는 것
마구간과 구유의 초라함을 길게 묘사하다가, 설교의 무게가 성육신하신 분이 아니라 그 장소의 분위기로 옮겨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는 구유를 한 절에서 두 번 언급할 뿐 묘사하지 않고, 천사의 말은 장소가 아니라 태어나신 분이 누구인가에 집중합니다. 묘사가 길어질수록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평화를 정서로만 말하는 것
누가복음 2:14 의 평화가 마음의 평안이나 가정의 화목으로 곧장 옮겨지면, 그 평화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본문의 방향이 사라집니다. 마태복음 2장이 보여 주듯 이 아기의 탄생은 소동과 두려움도 불러왔습니다. 성탄의 평화를 말씀하실 때 그 평화가 무엇에서 무엇으로의 평화인지 한 번은 짚어 주셔야 회중이 연말의 훈훈함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설교에서 실제로 강해한 본문은 하나였는지요. 녹취록에서 누가복음, 마태복음, 요한복음, 이사야 중 몇 곳을 본문처럼 다루었는지 세어 보시고, 정하신 본문에 쓴 시간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 태어나신 분이 누구인가를 본문의 말로 말한 대목이 어디였는지요. 누가복음 2:11 의 세 호칭이나 이사야 9:6 의 이름들, 요한복음 1:14 의 표현 중 어느 것을 설교 안에서 풀어 주셨는지, 아니면 아기라는 말로만 지나갔는지 찾아보십시오.
- 구유와 마구간을 묘사한 시간과 그것이 뜻하는 바를 설명한 시간을 재어 보십시오. 장면 묘사가 3분을 넘었는데 그 뒤에 왜 그 자리였는가에 대한 문장이 없다면 예화가 본문을 대신한 것입니다.
- 평화, 기쁨, 사랑 같은 성탄절 단어를 쓰실 때마다 그 단어가 본문의 어느 절에 묶여 있었는지 표시해 보십시오. 절 번호 없이 단독으로 나온 횟수가 절에 묶인 횟수보다 많다면 절기의 정서가 본문을 앞선 것입니다.
- 적용 부분에서 목자들이나 박사들이 한 행동, 곧 가서 보고, 돌아가 전하고, 경배하고, 다른 길로 간 것 중 하나라도 회중이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옮겨졌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그런 문장이 하나도 없다면 적용은 방향만 있고 행동이 없었던 것입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성탄절 설교의 적용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자, 성탄의 기쁨을 나누자로 끝나기 쉽습니다. 방향은 맞지만 회중이 월요일에 무엇을 하면 되는지는 남지 않습니다. 본문 속 목자들과 박사들은 듣고 나서 실제로 움직였으니, 적용도 그렇게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무엇을 하는가까지 내려와야 본문과 같은 모양이 됩니다.
- 목자들이 돌아가 전한 것처럼, 올해 성탄절에 교회에 오지 않은 가족이나 지인 한 사람에게 이번 주 안에 직접 전화하거나 찾아가 성탄 인사와 함께 오늘 들은 본문 한 절을 나누십시오.
- 여관에 자리가 없었던 것을 기억하며, 이번 주 안에 내 집 식탁이나 시간에 자리를 하나 내어 혼자 지내는 성도나 이웃 한 사람을 초대하십시오.
- 박사들이 예물을 드린 것처럼, 성탄절 다음 주일 전에 내가 정한 금액이나 물건 하나를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어려운 이웃이나 교회의 구제 항목에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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