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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8일 주일 · 성령강림 후 제21주일(Proper 24)

10월 18일 주일 설교 — 마태복음 22:15-22,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출애굽기 33:12-23은 보여 주시면서 동시에 가려 두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시편 99편은 그 거룩하신 분이 왕이시라고 선포하며, 데살로니가전서 1:1-10은 우상을 버리고 돌아선 회중을 보여 줍니다. 네 본문이 결국 누가 왕이신가라는 한 물음 아래 모이는데, 그 물음을 가장 날카롭게 들고 오는 자리가 마태복음 22:15-22이라 이것을 초점으로 잡았습니다. 성서일과를 따르지 않는 교회에서는 참고로만 보시면 되고, 다만 이 본문을 택하신다면 설교자가 자기 정치적 위치를 미리 정리해 두셔야 합니다. 본문은 그 질문을 피해 지나가도록 놓아 주지 않습니다.

이 주일의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가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마태복음 22:15-22

  1. 15-16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직접 나서지 않고 자기 제자들과 헤롯 당원을 함께 보내며, 참되시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는 아첨으로 말문을 엽니다.
  2. 17절의 질문은 답이 둘뿐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옳다 하시면 로마에 눌린 백성에게 밀리고, 옳지 않다 하시면 헤롯 당원이 고발할 말을 얻습니다.
  3. 18-19절에서 예수님은 그 속마음을 아시고 논쟁의 틀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동전 한 개를 가져오라 하십니다. 질문이 벌어지던 자리 자체가 옮겨집니다.
  4. 20-21절 상반절은 대답이 아니라 되물음입니다.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시고, 그들이 스스로 가이사라고 대답한 뒤에야 명령이 떨어집니다.
  5. 21절 후반의 두 번째 구절에 본문의 무게가 실려 있고, 22절은 그들이 답을 얻어 물러갔다고 하지 않고 놀라서 떠났다고만 적습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함정의 구조를 먼저 보여 주는 길

서로 어울리지 않던 두 집단이 한 질문을 들고 함께 왔다는 사실이 15-16절의 핵심이고, 그 구도를 보면 17절이 왜 덫인지가 설명 없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덫에 걸리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덫이 서 있던 바닥을 바꾸셨다는 데까지 가야 본문이 열립니다. 다만 이 길은 1세기 세금과 당파 배경에 시간을 써야 해서, 적용이 뒤로 밀리고 설교가 역사 강의처럼 들릴 위험을 안고 갑니다.

형상이 새겨진 것은 누구의 것인가

20절의 되물음은 동전에 새겨진 형상을 근거로 소유를 확인하는 방식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이 21절 후반을 설명해 줍니다. 창세기 1:27로 건너가 사람 자신이 그 두 번째 항목이라고 읽는 길인데, 회중에게 가장 오래 남는 대지가 되기 쉽습니다. 값은 분명합니다. 본문이 명시하지 않은 연결이므로 이것이 추론임을 강단에서 밝히지 않으면, 본문 아닌 것을 본문의 권위로 말하게 됩니다.

두 영역의 관계를 정면으로 다루는 길

세속 권세에 대한 복종과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함께 서는지를 다루는 길이며, 교단에 따라 두 왕국으로 보는 틀, 영역 주권의 틀, 변혁의 틀이 각각 다르게 답해 왔습니다. 어느 쪽을 택하시든 다른 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문장으로 알려 주시면 회중은 생각할 여지를 얻습니다. 값은 추상화입니다. 이 길은 가장 쉽게 관념으로 떠오르고, 동시에 회중 안의 실제 정치적 긴장을 건드리지 않고는 끝나지 않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정교분리라는 구호로 닫아 버리기

이 본문을 근대 정교분리 원칙의 증거 구절로 읽으면 설교는 21절 전반절에서 끝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라는 두 번째 절이 빈칸으로 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두 영역을 나란히 놓고 선을 그으신 것이 아니라, 한쪽을 다른 쪽 아래 두신 것입니다. 구호로 닫으면 회중은 본문에서 이미 알고 있던 상식만 확인하고 돌아갑니다.

당파로 기울거나, 무서워 아무 말도 안 하기

특정 정당이나 정권을 겨눈 문장이 하나 들어가면 회중의 절반은 그 순간부터 본문이 아니라 설교자를 듣습니다. 반대로 긴장이 두려워 다 걷어 내면 세금을 손에 들고 물으신 본문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교훈으로 바뀝니다. 이 본문에서 어려운 것은 어느 편을 들 것인가가 아니라, 편을 들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으로 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재치에 감탄하다 끝나기

22절의 놀람을 논쟁의 승리로만 읽으면 설교는 지혜로운 응답의 예화가 되고, 적용은 우리도 지혜롭게 대답하자는 말로 줄어듭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설득되었다고 하지 않고 떠났다고 합니다. 명령은 그들에게 남겨진 채 끝났고, 강단도 그 미결 상태를 함께 넘겨주어야 합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 Francis Landy (2023). The Face of God: Dialogue and Distance in Exodus 33,12-34,8. Scandinavian Journal of the Old Testament. 논문 보기

    출애굽기 33:12-23

    이 논문은 출애굽기 33장의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를 얼굴이라는 낱말의 서로 다른 뜻 위에서 움직이는 본문으로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쟁점은 둘인데, 얼굴을 마주 대하여 말씀하시면서도 그 얼굴은 볼 수 없다는 역설과, 얼굴이 선하심이나 영광 같은 다른 말들과 어떻게 이어지는가이며, 저자는 끝에 형상화 자체에 대한 저항을 제안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출애굽기 33:12-23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성도에게 설명할 때, 보여 주시는 쪽과 가려 두시는 쪽 가운데 어디에 무게를 두는 것이 이 본문에 맞는지요.

  • Michael Glowasky (2023). Ethos, Opposition, and Identification: Paul's Constitutive Rhetoric in 1 Thessalonians 1–3. ˜The œCatholic Biblical quarterly. 논문 보기

    데살로니가전서 1:1-10

    이 논문은 데살로니가전서 1-3장의 부드러운 칭찬을 수신자들이 이미 지닌 성품에 대한 보고로만 읽으면 그 수사가 하는 일을 놓친다고 봅니다. 초록에 따르면 바울은 오히려 그들이 입기를 바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자신과 독자 사이의 동일시를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그들의 신앙의 길을 북돋운다고 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데살로니가전서 1:3의 칭찬을 강단에서 전할 때, 회중이 이미 이룬 것에 대한 확인으로 전하는지 아직 입지 않은 옷으로 전하는지요.

  • S. Joubert (2024). “It all starts with urgency…” Engaging with the local ekklesia of Thessalonica as a window and mirror en route to sustained missionary impact. Acta Theologica. 논문 보기

    데살로니가전서 1:1-10

    이 논문은 사도행전 17:1-9과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교회의 자기 이해와 세상 속 존재 방식을 비추는 창이자 거울로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바울이 몸으로 드러낸 복음 선포와 그 긴박함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로 옮겨져, 말씀에 대한 헌신과 고난 속의 견고함, 다른 계층과 문화의 사람들에 대한 열림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데살로니가 교회가 본이 되었다는 1:7의 말이 오늘 이 회중에게는 무엇이 옮겨지는 일로 설명될 수 있는지요.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1. 하나님의 것이 무엇인지를 한 문장으로 말한 대목이 녹음 어디쯤에 있는지요. 없었다면 21절 후반절은 설교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요.
  2. 데나리온과 로마 세금의 배경 설명에 몇 분을 쓰셨는지, 그 설명이 어느 대지에 붙어 있었는지요. 배경이 대지 하나를 통째로 차지했는지도 함께 보십시오.
  3. 정교분리나 그와 같은 뜻의 표현이 몇 번 나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본문을 읽어 가다 나온 결론인지 처음부터 전제로 들고 들어간 말인지요.
  4. 특정 정당이나 정권, 인물을 지목하거나 회중이 곧 알아들을 만큼 암시한 문장이 몇 번 있었는지요. 그런 문장 뒤에 회중의 반응 소리가 달라졌는지도 들어 보십시오.
  5. 적용 대목에서 성도가 다음 주일 전에 실제로 할 수 있는 행동을 몇 개 말씀하셨는지, 그 가운데 시점이나 대상이 지정된 것이 하나라도 있었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방향을 가리키는 말도 설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는 문장은 방향이고, 성도가 수요일 저녁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 본문은 손에 쥘 수 있는 동전 한 개로 질문을 받았으니 적용도 그만큼 작고 만져지는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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