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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5일 주일 · 성령강림 후 제22주일(Proper 25)

10월 25일 주일 설교 — 마태복음 22:34-46, 가장 큰 계명과 그 계명을 주신 분

이번 주 성서일과는 들어가지 못한 땅을 바라보며 마치는 지도자(신 34:1-12), 사람의 날과 하나님의 영원을 나란히 두는 기도(시 90:1-6, 13-17), 복음을 맡은 자의 태도(살전 2:1-8)를 함께 놓습니다. 교단에 따라 성서일과를 쓰지 않으시는 경우가 많으니 참고로만 보시면 되고, 여기서는 복음서를 초점으로 잡았습니다. 이번 주 복음서 본문이 성전 논쟁의 마지막 두 마당을 한 단락으로 묶어 가장 큰 계명(34-40)과 그 계명을 주신 분이 누구신가(41-46)를 붙여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사랑을 설교하는 동안 그리스도론을 놓지 않을 것을, 그리고 강단이 묻는 자리에서 물어지는 자리로 옮겨 앉을 것을 조용히 요구합니다.

이 주일의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가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마태복음 22:34-46

  1. 사두개인과의 부활 논쟁이 끝난 직후, 바리새인 가운데 한 율법사가 시험하려고 어느 계명이 큰지 묻습니다(34-36). 질문의 출발은 호의가 아닙니다.
  2. 예수님은 신명기 6:5과 레위기 19:18을 끌어와 둘을 하나로 묶으시고, 온 율법과 선지자가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하십니다(37-40).
  3. 그리고 흐름이 뒤집힙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먼저 물으십니다 —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인가(41-42).
  4. 시편 110:1을 들어, 다윗이 그를 주라 불렀다면 어떻게 그의 자손이기만 하겠는가를 물으십니다(43-45).
  5. 아무도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고, 그날부터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고 본문은 마칩니다(46). 이 논쟁이 닫히는 자리는 정답이 아니라 침묵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두 계명을 하나로 묶으신 자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떼지 않으시고 온 율법과 선지자가 거기 달렸다고 하신 40절을 축으로 세우는 길입니다. 회중이 가장 쉽게 따라오고, 신명기와 레위기를 함께 펴야 하므로 구약과 복음서가 한 자리에서 만납니다. 값은 41-46절이 서론이나 각주로 밀려나 이 단락이 윤리 권면으로 좁아지는 것입니다.

계명을 주신 분이 누구신가

34-40절을 41-46절의 디딤돌로 읽어, 이렇게 전부를 요구하시는 분의 신분을 묻는 길입니다. 사랑의 명령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가가 이 본문의 마지막 물음이고, 그래야 46절의 침묵이 설교의 끝과 맞습니다. 값은 시편 110편 인용을 다루느라 설명이 길어진다는 것, 그리고 「사랑」 설교를 기대한 회중에게 적용이 얇게 느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묻던 자리에서 물어지는 자리로

시험하려고 던진 질문과 사람을 세우려고 던지신 질문이 같은 단락에서 맞서는 모양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 성경 앞에서 말이 막히는 장면이라, 강단과 성도 모두를 같은 쪽에 세울 수 있습니다. 값은 본문의 내용보다 대화의 형식을 다루게 되는 것이고, 조심하지 않으면 「질문하는 태도」에 관한 일반론으로 흐릅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40절에서 멈추는 것

41절부터는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이어지는 장면인데, 거기서 끊으면 본문이 종교 일반의 윤리 격언으로 남습니다. 한 번에 두 쪽을 다 다룰 시간이 없다면, 왜 여기까지만 읽는지를 회중에게 한 문장으로 밝혀 주시는 편이 낫습니다.

사랑을 감정의 세기로 바꾸는 것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라는 말은 감정의 온도를 재는 말이 아니라 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 사랑하십시오」로 닫히면 성도는 자기 감정을 점검하다가 돌아가고, 다음 주에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상대를 희화화하는 것

바리새인과 율법사를 율법주의의 표본으로 세워 놓고 때리면, 본문의 질문이 회중을 향하지 않고 이천 년 전의 남을 향합니다. 유대교 전체에 대한 왜곡으로도 쉽게 번지고, 정작 말이 막힌 쪽에 우리를 세워 보는 일을 건너뛰게 됩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 Kordin Sagala, Ayub Rusmanto (2023). Kualitas Kehidupan Religiusitas Kristen di Tengah Masyarakat Pluralitas Berdasarkan Kajian Teologis Matius 22:34-40. Philoxenia Jurnal Teologi dan Pendidikan Kristiani. 논문 보기

    마태복음 22:34-46

    이 논문은 마태복음 22:34-40의 사랑의 계명을 여러 신념이 섞여 사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을 묻는 물음으로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나눌 수 없어 둘 중 하나를 소홀히 하는 것은 곧 둘 다 소홀히 하는 것이며, 이 계명이 향하는 대상은 교회 안이 아니라 다원적인 세상이라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이 본문이 말하는 이웃은 회중 안의 성도인지 강단 밖 다원적인 사회의 사람들인지, 본문은 그 범위를 어디서 정하고 있는지요.

  • H.J. Prinsloo (2023). A text-centred rhetorical analysis of 1 Thessalonians 2:1–12. Stellenbosch Theological Journal. 논문 보기

    데살로니가전서 2:1-8

    이 논문은 데살로니가전서 2:1-12를 고대 수사학 이론의 틀에 맞추기보다 본문 자체에서 바울의 설득 전략을 읽어내려 합니다. 초록에 따르면 바울은 이미 그 회중과 좋은 관계에 있어 권위를 새로 증명할 필요가 없었고, 바깥에서 들어온 비난 때문에 자신의 진실성을 다시 확인시킬 필요를 느꼈다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바울이 2:1-8에서 자기 사역의 모습을 길게 꺼내는 것은 자기 변호인지 복음의 신뢰성을 지키려는 것인지, 본문의 어느 표현이 그 차이를 가려 주는지요.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1. 41-46절을 설교 본문으로 실제로 다루셨는지요. 녹음에서 그 절들이 언급된 횟수와, 전체 시간의 어디쯤(앞·중간·끝)에 놓였는지를 세어 보십시오.
  2. 「사랑」이라는 낱말을 몇 번 말씀하셨는지요. 그중 성도가 이번 주에 실제로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바뀐 것은 몇 번인지요.
  3. 신명기 6:5과 레위기 19:18이 구약에서 온 인용임을 밝히셨는지요, 아니면 출처 없이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소개하고 지나가셨는지요.
  4. 바리새인이나 율법사를 말씀하실 때 회중이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비하가 몇 번 들어갔는지요. 그 뒤에 「우리도 그렇습니다」로 돌린 자리는 있었는지요.
  5. 예화는 몇 개였고 가장 긴 예화는 몇 분이었는지요. 그 예화가 끝난 뒤 본문의 어느 절로 돌아오셨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웃을 사랑하십시오」는 방향입니다. 옳지만 듣고 나서 무엇을 할지가 사람마다 다르고, 대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한 주가 지납니다. 이 본문에서 행동으로 내려오는 통로는 두 계명이 하나라는 지점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던 것 가운데 하나를 이웃에게 닿는 자리로 옮기면, 다음 주일 전에 확인할 수 있는 크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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