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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1일 주일 · 모든 성인 주일

11월 1일 주일 설교 — 마태복음 5:1-12, 복이 있다는 선언이 먼저 오는 자리

이 주일의 네 본문은 같은 장면을 서로 다른 높이에서 봅니다. 요한계시록 7:9-17은 이미 환난을 지나 서 있는 큰 무리를, 시편 34:1-10, 22은 지금 부르짖는 자의 입을, 요한1서 3:1-3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말하고, 마태복음 5:1-12은 그 셋을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현재형 선언으로 묶습니다. 성서일과를 따르지 않는 교회가 많으니 이 넷은 본문을 고르실 때의 참고로만 보시면 되고, 중심을 마태복음에 두는 까닭은 이 주일이 먼저 간 성도를 기억하는 날이면서도 실제로 앉아 있는 회중이 애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이 조용히 요구하는 것은 설교자가 복의 조건을 설명하려는 손을 잠시 내려놓고, 복이 있다고 먼저 선언하는 입이 되는 일입니다.

이 주일의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가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마태복음 5:1-12

  1. 5:1-2은 자리를 먼저 정리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 앉으신 뒤 입을 여시는데, 듣는 사람이 제자들인지 무리 전체인지가 열려 있고 이 물음이 뒤의 모든 절의 수신자를 결정합니다.
  2. 3-6절은 아래쪽을 향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결핍의 목록이며, 그들에게 나라와 위로와 땅과 배부름이 붙습니다.
  3. 7-10절에서 방향이 바뀝니다. 긍휼, 청결, 화평, 의를 위한 박해는 결핍이라기보다 처신이고, 그 처신의 끝에 다시 3절과 같은 천국이 놓여 10절이 3절과 한 쌍으로 닫힙니다.
  4. 11-12절에서 3인칭이 2인칭으로 바뀝니다. 그들이 아니라 듣는 이들에게 직접, 욕과 박해와 거짓 비방을 당할 때 기뻐하라 하시며 그 근거를 하늘의 상과 먼저 박해받은 선지자들에게 둡니다.
  5. 그래서 본문의 움직임은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선언에서 소속으로 갑니다. 복이 있다는 말이 먼저 오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자기가 어느 줄에 서 있는지를 뒤늦게 알아보는 순서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복은 상이 아니라 왕의 선언으로

팔복을 자격 심사표가 아니라 즉위한 왕이 내리는 공포로 읽는 길입니다. 3절과 10절이 같은 천국으로 닫히는 구조가 이 읽기를 지지하고, 애통하는 성도가 자기 처지를 고치지 않은 상태로 복의 명단에 들어갑니다. 값은 윤리적 요구가 흐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에 대답하지 않으면 설교가 위로의 어조만 남고, 7-9절이 분명히 요구하는 처신이 설교에서 사라집니다.

먼저 간 이들의 명단으로

요한계시록 7:9-17과 묶어, 팔복을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성도들의 이름표로 읽는 길입니다. 모든 성인 주일의 성격에 가장 자연스럽고, 12절의 선지자들이 이미 그 선례를 본문 안에 두었습니다. 값은 두 가지입니다. 성도를 기억하는 일이 중보나 공로의 문제로 들리지 않게 교단의 결을 살펴야 하고, 하늘의 상을 죽음 이후로만 밀어 둘지 지금 시작된 나라로 볼지는 종말론의 갈림길이라 설교에서 한쪽으로 몰아세우기보다 본문이 말하는 선까지만 가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산상수훈의 문으로

5:1-2의 청중 구조에 무게를 두고, 이 본문을 뒤따르는 가르침 전체의 서문으로 읽는 길입니다. 복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정해 놓고 그 사람에게 요구가 주어진다는 순서가 드러나, 뒤의 어려운 명령들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이미 속한 자의 삶으로 읽힙니다. 값은 이 주일이 다음 설교의 예고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회중이 들어야 할 선언이 설명에 밀리고, 요구만 또렷해지면 본문이 율법주의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여덟 복을 여덟 대지로

복마다 한 토막씩 설명하면 한 항목에 두세 분밖에 못 쓰고, 끝나고 나면 회중에게 아무 한 절도 남지 않습니다. 이 본문은 목록처럼 보이지만 3절과 10절이 같은 결론으로 닫히는 한 단위입니다. 여덟을 다 다루기로 하셨다면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세우고 나머지를 그 주위로 모으는 편이 기억에 남습니다.

가난과 애통을 내면 태도로만 환원

심령이 가난함을 겸손으로, 애통을 죄에 대한 통회로 바로 번역해 버리면 본문이 가장 먼저 품은 사람들이 설교에서 지워집니다. 마태의 표현이 실제 처지를 포함하는지 내면을 가리키는지는 논의가 있는 자리이니 한쪽으로 못 박기보다 두 결을 함께 열어 두시는 것이 정직합니다. 특히 이 주일에는 올해 상을 치른 가정이 앉아 있을 수 있어, 4절의 애통을 비유로만 쓰면 그분들이 본문 밖에 서게 됩니다.

11-12절을 당겨 쓰거나 부풀리기

박해를 직장에서의 사소한 불편으로 축소하면 12절의 기뻐하라가 가벼워지고, 반대로 회중이 겪지 않은 박해를 극적으로 그리면 성도들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또 하늘의 상을 현세의 보상으로 바꿔 읽으면 본문의 근거가 뒤집힙니다. 의를 위하여라는 한정구를 빼지 않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이 정리됩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 Dawid Ledwoń (2025). The Hope of Being Similar to God in 1 John 2:28–3:10. The Biblical Annals. 논문 보기

    요한1서 3:1-3

    이 논문은 요한1서 2:28-3:10을 한 단위로 보면서, 3:2-3의 대명사가 아버지냐 그리스도냐를 택하는 대신 구원의 역사를 한 하나님의 일로 제시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라고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하나님을 닮으리라는 소망은 사변에 그치지 않고 신자의 삶을 실제로 형성하는 기능을 하며, 생명에 대한 존중과 섬김과 용서와 평화의 관계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요한1서 3:2의 그와 같을 것이라는 소망을 강단에서 누구를 닮는 일로 말하고 계시며, 그 소망이 이번 주 회중의 어떤 관계에서 드러난다고 보십니까.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1. 팔복을 조건으로 말한 문장과 선언으로 말한 문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았는지요. 녹음에서 복을 받으려면 또는 그래야 복이 있다는 꼴의 조건문이 몇 번 나오는지 세어 보실 수 있습니다.
  2. 여덟 복 가운데 실제로 입에 올린 것은 몇 개이고, 가장 긴 시간을 쓴 항목은 어느 절이었는지요. 한 항목이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면 그것이 의도한 중심이었는지요.
  3. 11-12절까지 다루셨는지, 10절에서 설교가 사실상 멈췄는지요. 3인칭에서 2인칭으로 바뀌는 자리를 녹음에서 짚을 수 있는지 들어 보시면 됩니다.
  4. 지금 애통하고 있는 성도를 향해 현재형으로 직접 부르는 문장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아니면 애통하는 자가 끝까지 설명의 대상인 3인칭으로만 남았는지요.
  5. 적용에서 다음 주일 전에 할 수 있는 행동이 말로 나왔는지, 설교 몇 분대에 나왔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본문 어느 절에서 나온 것인지 밝히셨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웃을 사랑하십시오나 애통하는 이와 함께하십시오는 방향입니다. 방향은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토요일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데, 이 본문의 적용은 다음 주일 전에 끝낼 수 있고 끝났는지 본인이 알 수 있는 크기여야 합니다. 팔복에서 나오는 행동은 대개 작고 구체적입니다. 4절에서는 한 사람의 이름이, 9절에서는 한 번의 자리가, 요한계시록 7:17에서는 한 번의 기도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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