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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8일 주일 · 성령강림 후 제24주일(Proper 27)

11월 8일 주일 설교 — 마태복음 25:1-13, 나누어 줄 수 없는 기다림

성서일과(RCL)가 이 주일에 묶어 둔 네 본문은 여호수아 24장의 선택 요구, 시편 78편의 다음 세대에게 전함, 데살로니가전서 4:13-18의 잠든 자들을 위한 위로, 마태복음 25:1-13의 기다림입니다. 교단에 따라 성서일과를 쓰지 않는 교회가 많으니 이것은 참고할 목록일 뿐이고, 그 가운데 복음서를 중심으로 둔 까닭은 나머지 셋이 모두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 앞에서 백성이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가를 다루는데, 그 질문을 가장 좁고 아프게 묻는 것이 열 처녀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이 설교자에게 조용히 요구하는 것은, 회중을 지혜로운 쪽과 미련한 쪽으로 가르기 전에 설교자 자신도 5절의 「다 졸며 잘」 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일입니다.

이 주일의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가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마태복음 25:1-13

  1. 1-4절에서 열 사람이 같은 자리에 같은 목적으로 서는데, 겉으로 보이는 차이는 없고 다만 다섯이 그릇에 기름을 따로 챙겼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2. 5절이 비유의 축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고, 지혜로운 다섯도 미련한 다섯과 똑같이 졸다가 잠이 듭니다. 본문은 깨어 있지 못한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3. 6-9절에서 자정의 외침이 모두를 깨우고, 그제야 차이가 드러납니다. 빌려 달라는 요청에 돌아온 대답은 인색함이 아니라 「나누면 양쪽 다 모자란다」는 사실의 진술입니다.
  4. 10-12절에서 혼인잔치의 문이 닫히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말이 마태복음 7:23의 울림을 다시 가져옵니다. 잔치의 기쁨과 닫힌 문이 한 장면에 함께 있습니다.
  5. 13절은 그 모든 것을 「그런즉 깨어 있으라」로 묶지만, 본문이 보여 준 깨어 있음은 밤새 눈을 뜨고 있는 일이 아니라 자정에 꺼내 쓸 것을 해 저물기 전에 챙겨 두는 일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지체를 설교의 주제로 세우기

5절의 「더디 오므로」를 가운데 두고, 약속이 늦어지는 시간 자체를 신앙의 자리로 다루는 길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는 몇 해, 돌아오지 않는 자녀, 낫지 않는 병을 들고 앉은 성도에게 이 각도는 가장 직접 닿습니다. 다만 값이 있습니다. 지체를 오래 다루면 설교가 종말의 긴장은 놓아 버린 채 인내심에 관한 조언으로 가라앉기 쉬우니, 기다림의 대상이 「좋은 때」가 아니라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적어도 한 번은 분명히 말해 두셔야 합니다.

빌려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

8-9절을 중심에 두고, 공동체가 참으로 많은 것을 나누어 쓰지만 끝까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는 자리에서 설교를 세우는 길입니다. 어머니의 믿음으로 세례를 받을 수 없고, 목사의 기도로 자기 회개를 치를 수 없습니다. 값은 분명합니다. 이 각도는 자칫 「각자 알아서 하라」는 개인주의로 들릴 수 있으니, 교회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한 대목 세워 두고 그 다음에 대신할 수 없는 자리를 말하는 순서가 안전합니다.

혼인잔치와 닫힌 문을 함께 두기

마태복음 25장 전체가 잔치와 심판을 떼어 놓지 않으므로, 10-12절의 닫힌 문을 피하지 않고 다루는 길입니다. 복음서의 종말은 위협만도 아니고 위로만도 아니며, 기쁨이 실재하기 때문에 늦음이 아픈 구조입니다. 값이 가장 큰 각도입니다. 문이 닫히는 장면은 회중의 구원 확신을 건드리고, 특히 최근에 가족을 떠나보낸 분에게는 다르게 들립니다. 이 길을 택하시면 심방이나 예배 후 대화까지를 설교의 일부로 보셔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기름을 한 가지로 못 박는 일

기름은 성령이라고, 또는 기도라고, 또는 선행이라고 단정하는 문장이 설교 초반에 들어가면 나머지 삼십 분이 그 알레고리의 각주가 됩니다. 본문은 기름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고, 다만 미리 챙겼는가 아닌가만 말합니다. 비워 두는 것이 본문에 더 가깝고, 회중은 그 빈자리에 자기 삶을 넣습니다.

미련한 다섯을 꾸짖는 데서 끝나는 일

가장 흔한 미끄러짐입니다. 설교가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로 회중을 반으로 갈라 세우고, 5절의 「다 졸며」는 조용히 빠집니다. 그러면 본문이 말하지 않은 도덕적 우열이 들어서고, 들으시는 분은 자기 자리를 확인하거나 자기를 변호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다가 나가십니다.

비유에서 종말론의 시간표를 끌어내려는 일

자정의 외침과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이 같은 주일에 놓이면, 휴거의 시점이나 천년왕국의 전후를 이 비유로 정하려는 유혹이 생깁니다. 교단 안에 여러 입장이 나란히 있고 이 본문은 그 질문에 답하려고 쓰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비유가 말한 것보다 많이 말하게 되고, 설교의 무게는 준비에서 도표로 옮겨 갑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 Michael Peppard (2024). Torches, Not Lamps, in the Wedding Parable of Matthew 25.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논문 보기

    마태복음 25:1-13

    이 논문은 마태복음 25:1-13의 여인들이 든 것이 영어 성경이 거의 예외 없이 쓰는 등불, 곧 흙으로 구운 기름등이 아니라 횃불이라고 봅니다. 초록에 따르면 그 그리스 낱말의 번역 문제와 고대 지중해 혼례 관행, 미술사 쪽 연구 결과가 그 결론으로 모인다고 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저들이 손에 든 것이 작은 기름등이 아니라 금세 타들어 가는 횃불이라면, 기름이 모자란다는 말과 자정까지의 시간 감각을 본문에서 어떻게 다시 읽어야 하는지요.

  • Herman Arnolus Manoe (2025). Shifting the Critique from the Ten Bridesmaids to the Bridegroom: A Postcolonial Feminist Reading of Matthew 25:1–13. Journal of Feminist Studies in Religion. 논문 보기

    마태복음 25:1-13

    이 논문은 열 처녀 비유를 탈식민·여성주의 관점에서 다시 읽으며, 열 사람을 지혜와 미련으로 갈라 세우는 읽기가 정작 신랑 쪽의 처신은 묻지 않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초록에 따르면 열 처녀를 여성 자신으로 읽을 수도 있고 마태 공동체와 맞섰던 당시 지도자 집단의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으며, 이 읽기를 인도네시아의 과거사와 화해 문제에 이어 놓습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이 비유에서 늦게 온 쪽은 신랑인데, 우리 설교는 늘 처녀들만 심문하고 신랑의 지체는 한 번도 묻지 않은 것이 아닌지요.

  • Godfred Nsiah (2024). Reception of Paul’s eschatological teaching in Ghana: A contextual study of 1 Thess. 4:13-18. HTS Teologiese Studies / Theological Studies. 논문 보기

    데살로니가전서 4:13-18

    이 논문은 데살로니가전서 4:13-18의 죽음과 부활 가르침이 가나 교회의 장례 문화와 부딛치는 자리를 다룹니다. 초록에 따르면 본문의 수사적 요소 분석과 아프리카 성서해석의 상황적 성경공부 방식을 함께 써서, 유족에게 사회·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장례 관행은 바꾸거나 피하는 쪽으로 교회가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우리 회중의 장례와 추모 관행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를 두고 소망 없는 자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이 본문과 실제로 어긋나는 대목은 어디인지요.

  • Mark G. Brett (2023). “The Canaanites were then in the Land” and Other Shechemite Ironies. Harvard Theological Review. 논문 보기

    여호수아 24:1-3a, 14-25

    이 논문은 여호수아 24:25-26의 세겜 언약을 창세기 12:6-7의 세겜 장면과 한 쌍의 테두리로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페르시아 시대 편집자들은 세겜과 베델에서 엘과 야웨의 이름이 함께 알려져 있었다고 주장하며, 북쪽 야웨 신앙을 남쪽의 비판과 그 기억을 한낱 과거로 돌리려는 시도에 맞서 변호했다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여호수아가 굳이 세겜에서 온 백성을 모아 섬길 신을 택하라고 한 그 장소의 기억이, 선택을 요구하는 이 장면에 어떤 무게를 더하는지요.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1. 설교 안에서 5절의 「다 졸며 잘새」를 실제로 읽거나 언급하셨는지요. 몇 번이었고, 서론·전개·결론 가운데 어디였는지요.
  2. 「기름은 ...입니다」처럼 기름의 뜻을 하나로 고정하는 단정 문장이 몇 번 나왔는지요. 한 번 이상이면 그 뒤 설교가 그 뜻을 전제로만 진행되었는지요.
  3. 회중을 지혜로운 쪽과 미련한 쪽으로 나누어 부르는 문장이 몇 번 있었는지요. 그중 설교자 자신을 그 둘 가운데 넣은 문장은 있었는지요.
  4. 적용 대목에 이번 주 안에 실행 시점과 대상과 행위가 모두 들어간 문장이 하나라도 있었는지요. 그 문장을 녹음에서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지요.
  5. 신랑과 혼인잔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연결한 대목이 전체 길이의 어느 지점에서 처음 나왔는지요. 그리고 마지막 삼분의 일에서 그 연결이 다시 언급되었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깨어 있으십시오」나 「준비하십시오」는 방향이지 행동이 아닙니다. 방향은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화요일 아침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 본문의 적용은 다음 주일 전에 끝낼 수 있고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작은 일이어야 하고, 그래야 「자정에 하려면 늦는다」는 비유의 논리가 삶에서 한 번 재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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