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5일 주일 · 성령강림 후 제25주일(Proper 28)
11월 15일 주일 설교 — 마태복음 25:14-30, 주인이 없는 동안의 시간
성서일과의 네 본문은 교단에 따라 쓰기도 하고 쓰지 않기도 하니 참고로만 보셔도 됩니다. 사사기 4:1-7이 하나님께서 뜻밖의 사람을 세워 일하시는 장면이고 시편 123편이 종의 눈이 주인의 손을 향해 있는 자리이며 데살로니가전서 5:1-11이 그날 앞에서 깨어 있음을 말한다면, 넷이 함께 가리키는 축은 주인의 때와 종에게 맡겨진 시간입니다. 그 축이 이야기로 가장 또렷하게 서 있는 마태복음 25:14-30을 중심 본문으로 잡았고,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조용히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결산을 똑바로 말하면서도 회중을 두려움으로 움직이지 않는 일입니다.
이 주일의 본문
- 구약 사사기 4:1-7
- 시편 시편 123
- 서신 데살로니가전서 5:1-11
- 복음서 마태복음 25:14-30 — 이번 주일의 중심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가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마태복음 25:14-30
- 주인이 길을 떠나며 세 종에게 소유를 맡기는데, 액수가 다섯과 둘과 하나로 서로 다르고 본문은 그것을 각각 그 재능대로라고만 말한 뒤 설명하지 않습니다(15절).
- 두 종은 곧바로 장사하여 맡은 만큼 남기고, 한 종은 땅을 파서 묻어 둡니다. 이야기는 이 셋의 행동을 평가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을 그냥 지나갑니다(16-19절).
- 결산 자리에서 다섯 달란트 종과 두 달란트 종이 받는 말은 남긴 액수가 다른데도 글자 하나 다르지 않습니다(21, 23절). 비교의 기준이 성과가 아니라는 신호가 여기에 있습니다.
- 세 번째 종은 자기 행동을 변명하기 전에 주인이 어떤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지를 먼저 말합니다. 굳은 사람이라는 그의 한마디와 두려워하였다는 고백이 그가 땅을 판 이유로 제시됩니다(24-25절).
- 주인의 대답은 그 종이 가진 주인 상을 그대로 되받아 되묻고, 이야기는 가진 자와 없는 자에 대한 말과 바깥 어두운 데라는 선고로 닫힙니다(26-30절). 25장의 세 비유가 모두 이렇게 끝난다는 점이 이 결말을 읽는 자리를 정해 줍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결산의 날에서 거꾸로 읽기
마태복음 25장은 열 처녀와 달란트와 양과 염소를 한 줄로 세워 두었고, 이 비유는 그 가운데 토막입니다. 주인의 부재가 곧 교회가 서 있는 시간이라는 틀로 읽으면 본문이 윤리 교훈이 아니라 종말론적 선언으로 들립니다. 다만 재림의 시기와 성격, 심판의 범위를 어디까지 말할지는 교단에 따라 갈리는 자리이니, 본문이 말하는 선을 긋고 그 너머는 넘지 않겠다고 미리 정해 두셔야 강단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 번째 종이 품고 있던 주인
그가 땅을 판 것은 게으름이라기보다 자기가 아는 주인 앞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선택이었고, 본문은 그 판단의 뿌리를 24절에 놓아 둡니다.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지가 손이 하는 일을 결정한다는 길로 가면, 회중 안의 조심스러운 신앙을 정면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대가는 설교가 심리 분석으로 기울어 29-30절의 무게가 사라지기 쉽다는 것이고, 은혜와 책임의 관계를 어떻게 잡느냐가 곧 드러나므로 그 지점을 흐리지 않을 문장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달란트는 돈이고 액수가 처음부터 달랐다
본문의 달란트는 무게 단위의 거액이고, 주인은 재산을 종에게 맡기고 떠나는 부재 주인입니다. 이 경제적 결을 살려 읽으면 맡김이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신뢰였다는 점이 드러나고, 회중이 늘 하는 비교를 본문으로 건드릴 수 있습니다. 대가는 이 길을 끝까지 밀면 주인을 당시의 수탈자로 읽는 해석과 마주친다는 것이며, 그 길을 택하시든 않으시든 마지막 두 절을 어떻게 설명할지는 답을 가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달란트를 곧바로 재능으로 바꿔 부르는 일
영어의 talent라는 낱말이 이 비유에서 나왔을 만큼 이 치환은 오래되었지만, 본문의 달란트는 사람에게 속한 능력이 아니라 주인에게 속한 돈입니다. 재능 이야기로 바꾸는 순간 설교는 자기 계발로 내려앉고, 결산과 바깥 어두운 데가 설명할 수 없는 혹처럼 남습니다.
두 번째 종이 사라지는 일
설교가 다섯 달란트와 한 달란트만 맞세우면, 회중은 많이 남긴 사람이 칭찬받는 이야기로 듣고 돌아갑니다. 두 종이 받는 칭찬이 똑같다는 21절과 23절의 반복이 이 비유에서 성과주의를 막는 유일한 장치이니, 그 반복을 강단에서 소리 내어 보여 주셔야 합니다.
마지막 두 절을 건너뛰거나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일
29-30절을 읽지 않으면 본문이 순해지고, 거기에만 머물면 설교가 결심을 겁으로 짜내게 됩니다. 이 선고를 상실로 읽을지 영원한 형벌로 읽을지는 교단마다 다르니 한쪽을 강단에서 단정하기보다,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을 갈라 두고 거기까지만 말하는 쪽이 정직합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Georgel Rednic (2023). Criteria at the Last Judgment from Matthew 25:14-46. Studia Universitatis Babes-Bolyai - Theologia Orthodoxa. 논문 보기
마태복음 25:14-30
초록에 따르면 이 연구는 마태복음 25:14-30과 25:31-46이 서로 다른 대상의 심판 기준을 말한다고 봅니다.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어떻게 썼는지로 묻는 신자에 대한 기준이고, 양과 염소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로 묻는 비신자에 대한 기준이라는 읽기를 ethnos와 adelphos 같은 낱말의 쓰임을 근거로 제시한다고 밝힙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이 비유의 결산 장면은 교회 안에 앉은 성도를 향한 말인지, 아니면 사람 일반에 대한 심판 이야기인지, 설교에서 그 대상을 정해 놓고 말할 수 있겠는지요?
Gijsbert van Appeldoorn (2025). An Eschatological Framework and Social Identity in 1QM 1:1–15 and 1 Thessalonians 5:1–11. Religions. 논문 보기
데살로니가전서 5:1-11
이 논문은 쿰란의 전쟁 두루마리 한 대목과 데살로니가전서 5:1-11이 빛과 어둠, 가족, 전쟁, 윤리, 때라는 거의 같은 종말론적 어휘 틀을 쓴다고 봅니다. 초록에 따르면 틀은 닮았는데 그 틀이 각 공동체의 자기 이해에 미친 영향은 서로 달랐다는 점을 짚습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빛의 자녀와 깨어 있음이라는 같은 말이 공동체를 밖으로 닫히게도 하고 열리게도 한다면, 이 본문을 들은 우리 회중에게는 어느 쪽으로 들리겠는지요?
Ntozakhe Simon Cezula (2025). Gender Parity in Patriarchy? Heterarchy and Reclaiming Women's Rights in Judg 4:4 and an African Context. Old Testament Essays. 논문 보기
사사기 4:1-7
이 논문은 고대 이스라엘을 그저 가부장 사회라고 규정해 버리는 설명이 오히려 가부장적 태도에 성경이라는 방패를 준다고 봅니다. 초록에 따르면 사사기 4:4의 드보라를 예로 들어, 왕정 이전 이스라엘을 권위가 한 줄로 고정되지 않은 사회 모형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드보라는 그 시대 질서를 깨고 나온 예외였는지, 아니면 그 질서 안에서 이미 가능했던 자리였는지, 사사기 4:4은 어느 쪽을 전제하고 말하고 있는지요?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 설교 중 달란트를 재능이나 은사로 바꿔 부른 횟수가 몇 번이었고, 그것이 돈의 단위라고 설명한 대목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요?
- 24-25절에 담긴 세 번째 종의 말을 본문 그대로 다룬 자리가 있었는지요, 아니면 게으름이라는 한 낱말로 요약하고 지나가셨는지요?
- 두 번째 종을 몇 번 언급하셨는지요, 그리고 21절과 23절의 칭찬이 같다는 사실을 말로 지적한 대목이 있었는지요?
- 29-30절을 소리 내어 읽으셨는지요, 읽은 뒤 그 말에 대한 설명 없이 다음 대지로 넘어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였는지요?
- 예화 하나에 쓴 시간이 본문 해설 전체에 쓴 시간보다 길었는지요, 그리고 그 예화가 끝난 뒤 본문의 절 번호로 돌아온 지점이 어디였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방향만 있는 적용은 회중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면 끝납니다. 맡은 것을 잘 쓰십시오는 방향이고, 쥐고만 있던 것 하나를 이번 주 안에 누구에게 어떻게 내놓을지가 행동입니다. 이 본문에서는 묻어 둔 것과 두려움이라는 두 낱말이 행동의 자리를 이미 정해 주고 있으니, 날짜와 사람 이름이 붙는 작은 일 두세 가지로 좁혀 주시는 편이 낫습니다.
- 교회에서 혼자 쥐고 하던 일 하나를 정해, 다음 주일 전에 성도 한 사람에게 옆에서 보게 하고 한 번 맡겨 보십시오.
- 쓰지 않고 두고 있는 것 하나를 떠올려, 이번 주 안에 실제로 한 번 쓰이게 하십시오. 비어 있는 방, 서 있는 차, 토요일 오전 두 시간 가운데 하나면 됩니다.
- 두려워서 미뤄 둔 전화나 심방 한 건을 정하고, 수요일까지라고 날짜를 적어 두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