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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22일 주일 ·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Proper 29)

11월 22일 주일 설교 — 마태복음 25:31-46, 심판하시는 왕은 어느 자리에 서 계신가

성서일과(RCL)가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에 배정한 네 본문이며, 이를 따르지 않는 교단도 많으니 골라 보시는 참고 목록으로 두시면 됩니다. 에스겔 34:11-16, 20-24은 흩어진 양을 찾아 먹이고 살진 양과 여린 양 사이를 판단하시는 목자를, 시편 100은 그 목자의 백성이 감사로 문에 들어서는 장면을, 에베소서 1:15-23은 만물 위에 머리로 세워진 분을 바라보는 기도를 놓는데, 마태복음 25:31-46은 그 왕이 앉으신 보좌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말합니다. 중심 본문을 복음서로 둔 까닭은 이 주일이 묻는 「그 왕이 누구신가」에 이 본문이 가장 불편한 답을 주기 때문이고, 그래서 설교자는 회중을 미리 오른쪽에 앉혀 둘 수 없게 됩니다.

이 주일의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가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마태복음 25:31-46

  1. 31-33절은 장면을 세웁니다. 인자가 영광 중에 와 보좌에 앉으시고 모든 민족이 그 앞에 모이며,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 좌우로 나뉩니다. 왕권과 심판이 한 장면 안에 같이 있습니다.
  2. 34-36절에서 오른쪽에 있는 이들은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는데, 그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고백이나 직분이 아니라 먹이고 마시게 하고 영접하고 입히고 돌아보고 찾아간 여섯 가지 몸의 일입니다.
  3. 37-39절의 되묻기가 이 본문의 중심 장치입니다. 의인들은 칭찬을 받고도 「언제 그랬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자기가 한 일을 왕에게 한 일로 알지 못한 채 한 것입니다.
  4. 40절이 그 물음에 답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왕에게 한 것이라는 동일시이고, 이 한 절이 앞뒤를 다 지탱합니다.
  5. 41-45절은 같은 목록을 부정형으로 반복하고 같은 되묻기를 또 둡니다. 양쪽 다 몰랐다는 점이 같습니다. 46절은 영벌과 영생이라는 두 끝으로 장면을 닫고, 설교가 피해 갈 수 없는 무게를 거기 남깁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이 주일의 왕이 어떤 왕인지로 가는 길

보좌에 앉아 민족들을 판단하시는 분이 굶주린 자, 헐벗은 자, 갇힌 자와 자기를 같이 세우십니다. 왕권 주일에 이 본문을 두면 왕의 영광이 어디서 드러나는지를 다시 묻게 되고, 에베소서 1:20-23의 높아지심과 나란히 놓기도 수월합니다. 대가는 시간입니다. 기독론에 대지를 다 쓰면 46절의 무게와 회중이 들고 나갈 한 가지가 설교 끝에 밀려 사라집니다.

「언제 그랬습니까」를 중심에 두는 길

양쪽이 똑같이 몰랐다는 것을 축으로 삼으면, 공로를 계산하는 신앙이 본문 안에서 저절로 해체됩니다. 의식하지 않고 한 일이 심판대에서 셈해졌다는 사실은 성도의 하루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대가는 적용의 선명함입니다. 무의식성을 강조하다 보면 회중이 할 일을 못 들고 나가고, 교회가 의도를 가지고 해 온 구제 사역이 뜻하지 않게 깎여 들립니다.

범위를 정면으로 다루는 길

모든 민족이 모였다는 32절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는 40절의 표현 때문에, 심판받는 대상이 누구인지와 작은 자가 교회 안의 궁핍한 형제인지 모든 가난한 이웃인지가 오래 다투어진 자리입니다. 여기서 믿음과 행위의 관계, 최후 심판과 영벌의 성격 같은 갈림길이 함께 열리며, 어느 교단이든 이미 쓰고 있는 답이 있습니다. 대가는 강단이 논쟁에 끌려갈 위험입니다. 갈림길이 있다는 사실은 밝히되 설교가 어느 쪽에 서는지는 스스로 정하시고, 회중이 결론 없이 나가지 않게만 하십시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구제 사역 격려로 끝나는 설교

본문이 보좌와 심판의 장면인데, 설교가 교회 봉사 부서 안내처럼 닫히는 일이 흔합니다. 행동이 나오는 것은 본문의 요구이지만, 왕과 심판이 서론의 배경으로만 쓰이면 25장이 아니라 다른 본문을 설교한 셈이 됩니다. 봉사 안내는 광고 시간에 두고, 강단에는 보좌를 남겨 두십시오.

본문을 미리 안전하게 만드는 설교

반대 방향의 미끄러짐도 자주 봅니다. 행위 구원으로 들릴까 염려하여 서론부터 「이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로 못을 박아 두면, 본문이 던지려던 충격을 설교자가 먼저 흡수해 버립니다. 교리적 균형은 필요하지만, 그 설명을 본문의 충격이 회중에게 닿은 뒤에 두는 것과 먼저 두는 것은 같은 설교가 아닙니다.

회중을 미리 오른쪽에 앉히는 설교

양과 염소를 「우리 교회와 세상」으로 나누면 본문의 질문이 회중을 향하지 않고 건너편을 향합니다. 37절과 44절의 되묻기는 양쪽 다 자기 자리를 몰랐다고 말하는데, 그 모름이 사라진 설교는 본문의 구조를 잃습니다. 그렇다고 죄책감만 쌓아 보내는 것도 같은 실패입니다. 들고 나갈 한 가지가 없으면 무게만 남습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 Stefan Gärtner (2025). The Son of Man’s Judgment of Nations. A Framework for Diaconal Spirituality?. Diaconia. 논문 보기

    마태복음 25:31-46

    초록에 따르면 이 논문은 마태복음 25:31-45을 디아코니아 영성의 신학적 틀로 읽으며, 이 단락이 윤리적 명령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같이 전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일보다 연약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에 무게를 두고,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를 둘로 가르는 구도와 그 사이의 상호성을 다시 묻습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이 본문에서 회중은 돌보는 쪽에만 서 있는지요, 아니면 돌봄을 받는 자리에서 왕을 만나는 일도 설교 안에 자리가 있는지요.

  • Carel Hot Asi Siburian, Asigor Parongna Sitanggang (2024). Wajah Allah yang Tersembunyi Disingkapkan: Etika Eskatologis Matius 25:31-46 sebagai Locus Allah yang Tersembunyi dalam Menyatakan Diri-Nya. Gema Teologika Jurnal Teologi Kontekstual dan Filsafat Keilahian. 논문 보기

    마태복음 25:31-46

    초록에 따르면 이 논문은 마태복음 25:31-46을 서사적으로 읽어, 저주받은 쪽과 의로운 쪽이 똑같이 자기가 한 일을 주님께 한 일로 알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남에게 베푼 일을 스스로 정당화하는 근거로 읽힐 수 없고, 믿음과 모름 사이의 긴장을 유지한 채로만 종말론적 윤리로 읽힌다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낮은 자리에 숨어 계신 분을 알아보지 못한 채 섬긴다는 것이 이 본문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설교가 그 모름을 없애 버리지 않고 말할 수 있는지요.

  • Joel D. Bornau (2023). The Good Shepherd's Covenant. Vanguard Journal of Theology & Ministry. 논문 보기

    에스겔 34:11-16, 20-24

    초록에 따르면 이 논문은 에스겔 34장의 목자 이미지를 타르굼 요나단이 어떻게 옮겼는지 살피고, 그 번역이 심판과 구원, 속량, 신정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훑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 이미 잠겨 있던 메시아적 함의를 번역자가 끌어냈다고 보며, 타르굼의 작성 시기를 1세기로 제안합니다. 논문 자신은 고전적 오순절 교리의 입장에서 쓰였음을 밝힙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에스겔 34장에서 흩어진 양을 찾아 먹이고 양들 사이를 판단하시는 목자가, 마태복음 25장에서 좌우를 가르시는 왕과 같은 분의 같은 일로 읽힐 수 있는지요.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1. 40절의 동일시, 곧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왕에게 한 것이라는 말을 설교 중에 몇 번 말씀하셨는지요. 그리고 그 절을 근거로 세운 대지가 실제로 있었는지, 서론과 결론에만 등장했는지 녹음에서 세어 보십시오.
  2. 31-33절의 심판 장면, 곧 보좌와 모든 민족과 나누심에 쓰신 시간이 몇 분이고 그것이 전체의 어느 구간이었는지요. 그 장면이 설교 앞머리에서 끝나 버렸는지 아니면 본문 전개와 함께 다시 돌아왔는지 보십시오.
  3. 회중이 다음 주일 전에 할 수 있는 한 가지 행동을 말씀하신 문장이 있는지요. 있다면 녹음에서 그 문장을 그대로 받아쓸 수 있는지, 그 안에 언제와 무엇과 누구에게가 다 들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4. 예화에 궁핍한 사람이 몇 사람 등장했고, 그들 가운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지요. 설명의 대상으로만 나왔는지, 이름과 목소리를 가진 사람으로 나왔는지가 녹음에서 금방 들립니다.
  5. 46절을 소리 내어 읽거나 언급한 횟수가 몇 번인지요. 그리고 그 직후에 이어 붙이신 설명이 본문의 무게를 눌러 낮추는 쪽이었는지 그대로 세워 두는 쪽이었는지, 그 대목만 다시 들어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방향이 있는 적용과 행동이 있는 적용은 다릅니다. 「이웃을 사랑하십시오」는 방향이고, 성도가 다음 주일 전에 실제로 한 번 할 수 있는 일은 행동입니다. 이 본문은 고를 것이 비교적 분명합니다. 먹이고 마시게 하고 입히고 찾아가는 몸의 목록을 본문이 이미 내놓았고, 양쪽이 다 몰랐다고 한 것을 생각하면 그 행동은 광고할 만한 크기가 아니어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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