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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2월 6일 주일 · 대림절 둘째 주일

12월 6일 주일 설교 — 마가복음 1:1-8, 광야에서 시작되는 복음

대림절 둘째 주일의 네 본문은 아직 오지 않은 분을 위해 길을 내는 자리에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의 위로, 시편 85편의 평화, 베드로후서 3장의 더딘 약속, 그리고 광야에서 외치는 한 소리입니다. 성서일과를 따르지 않는 교회가 많으니 이 묶음은 참고로만 보시면 되겠고, 여기서는 마가복음 1:1-8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마가가 복음의 첫 문장에서 이사야 40장을 끌어와, 길을 예비하라는 그 목소리가 실제로 한 사람의 몸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이 설교자에게 조용히 요구하는 것은, 자기를 가리키지 않는 말을 강단에서 실제로 해 보이는 일입니다.

이 주일의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나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마가복음 1:1-8

  1. 1절은 문장이라기보다 표제입니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기서 시작된다고 선언하고, 족보도 탄생 이야기도 없이 곧장 광야로 들어갑니다.
  2. 2-3절에서 마가는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는데, 실제로는 출애굽기 23장과 말라기 3장의 어조가 이사야 40:3과 함께 섞여 있습니다. 즉 이 복음의 서두는 한 구절의 인용이 아니라 출애굽과 포로 귀환이라는 긴 기억 전체를 불러옵니다.
  3. 4-5절에서 그 기억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고,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성읍을 나와 요단강으로 내려가 자기 죄를 자복하며 세례를 받습니다.
  4. 6절은 그의 옷과 음식을 묘사합니다. 낙타털 옷과 가죽 띠는 엘리야를 떠올리게 하는 차림이고, 메뚜기와 석청은 그가 도시의 공급 바깥에서 살았다는 표시입니다.
  5. 7-8절에서 요한은 자기 입으로 자기 자리를 줄입니다.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시며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물과 성령을 갈라 놓으며 본문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분 쪽으로 기울어진 채 끝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시작이 놓인 자리 — 성전이 아니라 광야

온 예루살렘이 성읍을 나와 요단강으로 내려갔다는 5절의 움직임은 방향이 뒤집힌 순례입니다. 복음의 시작이 제도의 중심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데서 열렸다는 점을 축으로 삼으면, 대림절이 교회력의 한 칸이 아니라 회중의 현재 위치를 묻는 시간이 됩니다. 대가는 이 길이 쉽게 교회 비판 설교로 미끄러진다는 것입니다. 광야를 말하다가 성전을 때리는 데 시간을 다 쓰면, 정작 그 광야에서 선포된 기쁜 소식이 회중에게 도착하지 않습니다.

요한의 자리 — 가리키고 비켜서는 사람

7절의 신들메 발언은 겸손의 수사가 아니라 직분에 대한 정확한 자기 규정입니다. 증언하는 자리와 증언되는 분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이 본문의 뼈대이고, 이것은 설교자와 중직자와 교사 모두에게 바로 닿습니다. 대가는 이 각도가 설교자의 자기 이야기로 기울기 쉽다는 점입니다. 비켜서는 것에 대해 길게 말할수록 설교자가 더 오래 무대에 서 있게 되는 역설을 본문이 먼저 지적합니다.

물에서 성령으로 — 회개의 세례와 그 다음

8절은 요한의 세례를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끝으로 두지 않습니다. 회개가 요구하는 몸의 행위와, 그 너머에 약속된 하나님의 일 사이의 관계를 따라가면 대림절 설교가 윤리 권면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대가는 여기에 교단마다 다른 갈림이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유아세례와 신자세례, 성령 세례를 회심과 함께 보는 이해와 그 이후의 체험으로 보는 이해가 갈리므로, 이 각도를 택하면 어느 쪽도 몰래 전제하지 않고 본문이 말하는 데까지만 말하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요한을 준비 운동으로만 다루는 것

요한을 예수께 넘어가기 위한 도입부로 처리하면 본문의 여덟 절 중 다섯 절이 설교에서 사라집니다. 마가는 복음의 시작을 요한에게서 잡았고, 회중이 들을 말의 상당 부분이 그 사람의 옷과 음식과 말버릇 안에 있습니다. 조연으로 소개한 인물에게서 적용을 끌어내려 하면 뒷부분이 겉돕니다.

회개를 연말 반성으로 줄이는 것

12월 초라는 달력 때문에 회개가 한 해를 돌아보는 감정 작업으로 좁아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회개는 성읍을 나와 강으로 내려가 물에 들어가고 입으로 자복하는, 장소와 몸이 걸린 일입니다. 마음의 상태만 다루면 5절의 동사들이 설교에서 전부 증발합니다.

성탄에 미리 착지해 긴장을 지우는 것

본문에는 아직 아기도 구유도 없고,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신다는 미완의 문장만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 구유로 넘어가면 대림절이 성탄 준비 일정표가 되고, 오심을 기다린다는 말의 무게가 사라집니다. 재림을 역사의 끝으로 보는 이해와 지금 여기서 이미 이루어지는 다스림으로 보는 이해가 갈리는 자리이니, 한쪽을 전제로 깔지 말고 본문이 열어 둔 채로 두는 편이 정직합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 Shawn Zelig Aster (2023). Responses in Isaiah 40: 1–11 to Jeremiah’s “Set Time” Prophecy and Ezekiel’s Temple Vision. ˜The œCatholic Biblical quarterly. 논문 보기

    이사야 40:1-11

    이 논문은 이사야 40:1-11을 앞선 예언들에 대한 응답으로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40:2은 예레미야가 말한 칠십 년이 아직 차지 않았어도 회복의 때가 이미 왔다고 주장하고, 40:5은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으로 돌아온다고 본 에스겔의 환상과 달리 유다의 성읍들로 돌아오는 것을 그리면서 성전이 없어도 그 임재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하나님의 임재가 거룩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돌아가 사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이라면, 마가가 이 본문을 성읍 바깥 광야로 가져다 쓴 것은 회중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요.

  • Jude Anyanwu (2025). When seeing becomes hearing: Isaiah 40.1–8 as an exegetical product of Isaiah 6.1–8 and prelude to Isaiah 40–48.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논문 보기

    이사야 40:1-11

    이 논문은 이사야 40:1-8을 이사야 6:1-8을 다시 쓴 편집의 결과로 봅니다. 초록에 따르면 보는 환상이 듣는 소리로 바뀐 이 서두는 형상 없는 하나님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지니며, 바벨론의 우상들과 대비되는 40-48장 전체의 성격을 미리 알려 준다고 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하나님이 보이는 형상이 아니라 들리는 소리로 오신다면, 대림절에 회중이 보려고 하는 것과 실제로 들어야 하는 것 사이를 이 본문은 어떻게 갈라 놓는지요.

  • David Neville (2025). On Behalf of Creation: Reading the Destructive Cosmic Eschatology of 2 Peter 3 in the Light of the Transfiguration.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논문 보기

    베드로후서 3:8-15a

    이 논문은 베드로후서 3장의 불로 녹아내리는 종말 그림을 같은 편지가 언급하는 변화산 사건과 나란히 놓고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이 편지는 심판과 구원을 한 하나님의 일의 두 면으로 보기 때문에, 이미 오셨던 예수의 모습이 장차 오실 그분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며 그 읽기가 창조 세계를 두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고 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지나갈 세상이라는 말이 지금의 창조 세계를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면, 녹아내림을 말하는 이 본문에서 성도가 오늘 질 책임은 어디에 놓이는지요.

  • Kalle O. Lundahl (2023). Mark 1:1: How to Display Differences in Biblical Manuscripts in Editions and Translations. Harvard Theological Review. 논문 보기

    마가복음 1:1-8

    이 논문은 마가복음 1:1의 본문이 사본마다 같지 않다는 사실을 어떻게 다룰지를 묻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시내 사본의 이 구절을 사례로 삼아, 비평본과 번역이 불확실한 자리를 조용히 지우는 대신 눈에 보이게 표시하자고 제안하며, 감추면서 동시에 드러내는 그 표기가 마가복음의 메시아 비밀 주제와도 맞물린다고 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첫 절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구절이 사본에 따라 흔들린다면, 마가가 복음의 첫 문장에서 예수를 누구로 소개하는지를 설교는 어디까지 확정해서 말해야 하는지요.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1. 설교 전체에서 요한이 가리킨 오실 분을 이름으로 부른 것이 몇 번이었고, 그 첫 번째가 설교 시작 몇 분 지점이었는지요.
  2. 회개를 설명한 문장 가운데 마음의 상태를 묘사한 문장과 몸으로 하는 행동을 묘사한 문장이 각각 몇 개였는지, 녹음을 들으며 세어 보실 수 있는지요.
  3. 예화가 모두 몇 개였고 그중 설교자 자신이 주인공인 예화가 몇 개였는지요. 요한의 자리를 말하는 설교에서 이 비율이 엇갈리면 회중에게 먼저 들립니다.
  4. 1:2-3의 인용 문제나 광야의 지리를 설명하는 데 몇 분을 쓰셨고, 그 설명이 다시 선포로 돌아왔는지 아니면 거기서 끝났는지요.
  5. 적용 대목에서 성도가 다음 주일이 오기 전에 실제로 할 수 있는 동작이 한 번이라도 말해졌는지, 그 문장을 녹음에서 찾아 그대로 옮겨 적으실 수 있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방향만 있는 적용과 행동이 있는 적용은 다릅니다. 길을 예비합시다, 회개합시다는 방향이고, 회중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주차장으로 갑니다. 이 본문의 적용은 회개가 장소와 몸이 걸린 일이었다는 5절의 사실을 그대로 따라가, 다음 주일 전에 끝낼 수 있는 작은 한 가지로 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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