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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2월 13일 주일 · 대림절 셋째 주일

12월 13일 주일 설교 — 요한복음 1:6-8, 19-28, 빛이 아니라 증언하는 자리

대림절 셋째 주일의 네 본문은 성탄을 앞두고 기쁨의 근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캐묻습니다. 이사야 61:1-4, 8-11은 기름부음 받은 자의 선포로, 시편 126편은 눈물로 씨 뿌린 자의 귀환으로, 데살로니가전서 5:16-24은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으로, 요한복음 1장은 빛이 아닌 자의 증언으로 그 근거를 댑니다. 이 주일이 결국 「네가 누구냐」는 심문 앞에서 요한이 내놓은 대답에 걸려 있다고 보아 요한복음 1:6-8, 19-28을 중심 본문으로 잡았고, 성구집(RCL)을 따르지 않는 교회가 많으니 나머지 셋은 참고로만 두십시오. 이 본문을 택하신다면 강단은 자기를 가리키지 않는 말하기를 설교 그 자리에서 실연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습니다.

이 주일의 본문

개정공통성서일과(RCL) 나해 Track 1 기준 · 본문은 참고용입니다 — 소속 교단의 일정이나 연속 강해가 있으면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중심 본문 한눈에 — 요한복음 1:6-8,19-28

  1. 6-8절은 로고스 찬가의 흐름을 끊고 한 사람을 들여놓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고, 그의 일은 증언이며, 본문은 그가 빛이 아니라는 것을 두 번에 걸쳐 분명히 합니다.
  2. 19절부터 장면이 바뀌어 예루살렘에서 보낸 이들의 심문이 시작됩니다. 요한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잇따라 부인하는데, 이 부인은 그의 성격이 아니라 그의 직무를 규정하는 진술입니다.
  3. 22-23절에서 그는 끝내 자기 이름 대신 이사야 40:3을 끌어와 광야의 소리라고만 답합니다. 신분을 묻는 질문에 그는 역할로, 그것도 남의 책에 적힌 문장으로 대답합니다.
  4. 24-27절은 세례의 권한 문제로 옮겨 갑니다. 요한은 자신이 물로 베푸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미 그들 가운데 서 계시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분, 신발끈 풀기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 분을 가리킵니다.
  5. 28절은 그 모든 말이 어디서 있었는지를 적습니다.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 곧 성전도 아니고 회당도 아닌 자리에서 증언이 일어났다는 기록으로 장면이 닫힙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세 길

나는 아니다 — 부인이 증언이 되는 자리

20-21절의 잇따른 부인을 그리스도론적 진술로 읽는 길입니다. 요한은 자기를 비우는 것으로 겸손을 전시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비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분의 자리를 만듭니다. 이 길의 대가는 설교가 금방 목회자론이나 사역자 수련회 메시지로 좁아진다는 것입니다. 강단에 선 사람의 자기 점검으로 끝나면 평일을 사는 성도에게는 들을 것이 남지 않으니, 회중 각자가 누구를 가리키며 사는지로 질문을 옮겨 놓아야 합니다.

광야의 소리 — 기다림이 벌어지는 장소

23절의 이사야 40:3 인용과 28절의 베다니를 함께 묶어, 대림절을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의 문제로 세우는 길입니다. 이사야 61:1-4의 기름부음 선포와 시편 126편의 돌아옴도 폐허와 포로라는 구체적 자리를 전제하므로, 광야는 은유로만 두기 아깝습니다. 대가는 구약 인용의 출처와 배경을 따라가는 데 시간이 쏠린다는 점입니다. 설명이 길어지면 회중이 본문의 질문, 곧 「네가 누구냐」를 자기 앞에서 만나기 전에 설교가 끝납니다.

너희 중에 서 계시나 — 알아보지 못한 현존

26절을 축으로 삼으면 대림절 셋째 주일의 기쁨이 감정이 아니라 사실에서 나옵니다.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미 와 계시다는 것이 데살로니가전서 5:16의 명령이 명령일 수 있는 근거이고, 이 지점에서 재림을 어떻게 기다리는가라는 종말론의 갈림과 요한의 물 세례가 교회의 세례와 어떤 관계인가라는 갈림이 함께 드러납니다. 둘 중 어느 쪽을 택하실지는 교단의 고백이 정할 일이니, 강단에서는 갈림이 있다는 것만 정직하게 드러내고 지나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대가는 숨은 현존을 너무 일반화하면 성육신의 구체성이 흐려져, 결국 어디에나 계신다는 막연한 위로로 내려앉는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미끄러지는 자리

요한을 겸손의 예화로 소비하기

이 본문은 인물 묘사가 아니라 심문 조서에 가깝습니다. 요한의 부인을 성품의 미담으로 바꾸면 설교는 자기를 낮추자는 권면으로 끝나고, 정작 뒤에 오시는 분에 대해서는 한 문장도 하지 않은 채 마무리됩니다. 요한이 무엇을 거절했는지보다 누구를 위해 거절했는지가 본문의 무게입니다.

심문하는 이들을 악역으로 세우기

19-25절의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권한을 확인하러 온 사람들이고, 그 질문 자체는 부당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완고한 종교인의 전형으로 그려 조롱하면 설교에 반유대적 어조가 스며들고, 회중은 자기를 질문자 쪽이 아니라 늘 요한 쪽에 세워 두게 됩니다. 질문이 정당했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쪽이 본문에 더 가깝고 회중에게 더 아픕니다.

성탄을 앞당겨 쓰고 기쁨을 감정으로 요구하기

성탄까지 열흘 남은 자리에서 이 본문은 구유 이야기의 서론으로 쉽게 소비됩니다. 아기 예수의 장면을 미리 끌어오면 요한복음 1장이 붙들고 있는 증언이라는 주제가 분위기에 밀려 사라집니다. 또 항상 기뻐하라를 지금 기뻐하라는 정서적 요구로 바꾸면, 올해 상을 치르신 성도에게 그 말씀은 금지 명령으로 들립니다.

최근 연구가 이 본문에서 짚은 것

아래는 이 본문들을 다룬 최근(2023년 이후) 학술 논문 가운데, 설교자가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골랐습니다. 논문의 서지 정보는 OpenAlex·Crossref 에서 가져와 DOI 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요약은 논문 초록만 읽고 풀어 쓴 것입니다.

  • Rebecca W. Poe Hays (2023). Love, Marriage, and a Delayed Harvest: Isaiah 61 as the Reversal of the Song of the Vineyard (5:1–7).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논문 보기

    이사야 61:1-4, 8-11

    이 논문은 이사야 61장의 정원 이미지와 혼인 언어가 앞선 포도원의 노래(5:1-7)를 거꾸로 되울리는 것이라고 읽습니다. 초록에 따르면 61장은 그 뒤집음을 통해 60-62장의 회복 메시지와 맞물리며, 농사와 관계의 파괴가 하나님의 백성 이야기의 결말이 아님을 말합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이사야 61장의 기쁨을 선포할 때, 그 기쁨이 뒤집고 있는 앞선 심판의 장면을 회중이 함께 듣지 않고도 이 선포의 무게가 전해질 수 있는지요.

  • David G. Peterson (2024). Biblical Studies and Hermeneutics. The Anointed Prophet: Jesus’s Sermon at Nazareth and Luke’s Christology. UNIO CUM CHRISTO. 논문 보기

    이사야 61:1-4, 8-11

    이 논문은 누가복음 4:16-30의 나사렛 설교에서 이사야 61:1-2이 성취되었다는 선언이 누가복음 전체의 예수 사역 양식을 미리 보여 준다고 봅니다. 초록에 따르면 누가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선지자라는 상으로 예수를 구약의 선행자들과 이어 놓으면서, 동시에 선지자이자 구속자로서의 유일함을 함께 드러냅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이사야 61:1의 기름부음을 읽을 때, 그 선포가 이미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신 분을 설교의 어느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등장시켜야 하는지요.

  • Jung-Hun Bae (2025). Unceasing Prayer: The Church Fathers’ Interpretation of 1 Thessalonians 5:17. Korean Journal of Christian Studies. 논문 보기

    데살로니가전서 5:16-24

    이 논문은 데살로니가전서 5:17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를 1세기부터 7세기까지 동방과 서방 교부들이 어떻게 읽고 실천했는지를 네 가지 범주로 정리합니다. 초록에 따르면 교부들은 이 말씀을 알레고리적으로 풀어 정해진 기도 시간과 마음의 기도, 더 나아가 삶 전체의 기도로 넓혔고, 이 기도를 성직자나 수도사만의 일이 아니라 세상에서 평범하게 사는 모든 사람의 일로 보았습니다.

    설교자께 던지는 물음 —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을 평일이 빠듯한 성도에게 전할 때, 그것을 기도 시간의 양으로 말할 것인지 삶의 방향으로 말할 것인지요.

초록을 풀어 쓴 것이라 논문의 논증 전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설교에 쓰시기 전에 논문 원문을 직접 읽어 주십시오. 논문이 말하는 것과 이 페이지가 던지는 물음은 구별해서 읽으십시오. 학술지의 등급이나 동료 심사의 엄격함은 따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 본문과의 관련성으로만 골랐습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으로 확인할 다섯 가지

  1. 설교 녹음에서 증언 또는 증인이라는 낱말이 몇 번 나왔는지, 그리고 그중 몇 번이 세례 요한을 가리켰고 몇 번이 오시는 분을 가리켰는지 세어 보셨는지요.
  2. 20-21절의 세 번 부인을 녹음 몇 분째에 다루셨는지, 그리고 그 대목에서 그것을 겸손의 예로 설명하셨는지 아니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진술로 설명하셨는지 그 문장을 찾아 들어 보시겠는지요.
  3. 이사야 40:3이나 이사야 61장을 절 번호와 함께 입에 올리셨는지, 올리셨다면 그것이 본문을 설명하는 데 쓰였는지 설교 머리의 장식으로 한 번 스쳐 갔는지요.
  4. 예화가 모두 몇 개였고, 각 예화가 끝난 뒤 본문의 절 번호로 돌아오기까지 몇 초가 걸렸는지, 끝까지 돌아오지 않은 예화가 하나라도 있었는지요.
  5. 적용이 시작된 지점이 녹음 몇 분이고, 거기서 성도가 다음 주일 전에 실제로 할 수 있는 동작이 한 번이라도 말로 나왔는지 아니면 방향만 반복되었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웃을 사랑하자, 겸손하자, 주님을 가리키는 삶을 살자 같은 말은 방향입니다. 방향은 틀리지 않았지만 회중은 그것을 들고 수요일 저녁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본문에서 동작으로 바꿀 수 있는 지점은 세 군데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빼고 말하는 것, 자기에게 올 공을 넘기는 것, 그리고 아직 아무도 안 가는 자리에 길을 한 뼘 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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