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aching Lab

요한일서 4:7-21

요한일서 4장 설교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사랑이 먼저 왔습니다

요한일서 4:7-21은 사랑을 말하는 본문 가운데 가장 자주 강단에 오르지만, 그만큼 「우리 서로 사랑하자」 한 마디로 끝나기 쉬운 본문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사랑을 권면하기 전에 사랑의 출처를 세 번이나 못 박습니다.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회중을 다그치기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충분히 말하라고 조용히 요구합니다. Preaching Lab 은 그 요구가 실제 설교에서 지켜졌는지 녹음으로 확인하도록 돕습니다.

본문 한눈에

  1. 7-8절은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으로 시작하되, 그 근거를 사랑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과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라는 선언에 둡니다.
  2. 9-10절은 그 사랑이 어디서 드러났는지를 말합니다. 독생자를 보내신 것, 그리고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셔서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신 것입니다.
  3. 11-16절은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고 온전해지신다고 말하며, 성령과 고백을 그 거하심의 증거로 듭니다.
  4. 17-18절은 사랑이 온전해지면 심판 날에 담대함이 생기고 두려움이 쫓겨난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은 형벌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5. 19-21절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먼저 사랑하셨고,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사랑의 출처를 먼저 세우는 설교

10절과 19절을 축으로 삼아, 사랑은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하신 일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대지로 세우는 방향입니다. 복음이 설교의 몸통이 되고 권면은 그 뒤에 따라옵니다. 다만 이 길은 화목제물이라는 말을 회중이 알아듣게 풀어야 하고, 권면이 뒤로 밀리다 못해 사라지지 않도록 마지막 대지에 자리를 확보해 두셔야 합니다.

두려움을 내쫓는 사랑

17-18절을 중심에 두고, 심판 앞의 두려움과 온전한 사랑의 관계를 다루는 방향입니다.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앙생활을 이어 온 성도에게 이 본문은 큰 위로가 됩니다. 이 길이 요구하는 것은 18절을 문맥에서 떼어 일반적인 불안 다스리기로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두려움은 심판 날과 형벌에 관한 것이고, 그것을 쫓아내는 사랑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보이는 형제, 보이지 않는 하나님

20-21절을 종착점으로 삼아, 하나님 사랑이 형제 사랑으로 검증된다는 것을 대지로 삼는 방향입니다. 교회 안의 갈등이나 오래 묵은 관계를 직접 다룰 수 있어 적용이 선명해집니다. 이 길의 대가는 본문이 정죄로 들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20절의 「거짓말하는 자」가 회중을 향한 화살이 아니라 요한이 자기 공동체 안의 자기기만을 짚는 말임을 설교자가 스스로 먼저 받아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9-10절을 건너뛰고 7절에서 11절로 가는 설교

서로 사랑하자는 권면이 강해서 아들을 보내신 일과 화목제물이 한두 문장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본문은 도덕 교훈이 되고, 회중은 자기 힘으로 사랑해 보라는 말만 듣고 돌아갑니다. 요한은 권면 사이에 복음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복음 위에 권면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본문에서 떼어내는 설교

8절과 16절의 선언은 너무 유명해서 본문 없이도 설교가 됩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선언을 아들을 보내신 사건과 성령의 거하심, 그리고 심판 날의 담대함과 묶어 놓았습니다. 사랑을 하나님의 여러 속성 가운데 하나로 나열하거나, 반대로 사랑이라는 말로 심판과 형벌을 지우는 쪽으로 가면 본문이 하는 말보다 덜 말하거나 더 말하게 됩니다.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는 설교

사랑 본문은 감동적인 예화를 부릅니다. 희생한 부모, 원수를 용서한 사람, 끝까지 돌본 이웃의 이야기가 들어오면 회중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본문은 잊습니다. 예화가 10절의 「먼저」와 20절의 「보이는 형제」를 비추는지, 아니면 그저 사랑 일반을 비추는지가 갈림길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음에서 「먼저」 사랑하셨다는 말(10절, 19절)이 몇 번 나왔는지, 그리고 그 말이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보다 앞에 놓였는지 뒤에 놓였는지 확인해 보셨는지요.
  2. 화목제물(10절)이라는 말을 풀어 설명한 구간이 있는지, 있다면 몇 분 몇 초부터이고 몇 문장이나 쓰였는지 헤아려 보셨는지요.
  3. 18절의 두려움을 다룰 때 심판 날과 형벌이라는 문맥이 언급되었는지, 아니면 불안이나 걱정 일반으로 옮겨 갔는지 녹취록에서 그 자리를 짚어 보셨는지요.
  4. 20절의 「보이는 형제」를 말할 때 회중이 떠올릴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의 자리(가족, 같은 구역, 서운한 교우)를 이름 붙여 말했는지, 아니면 「이웃」과 「형제」라는 말로만 남았는지요.
  5. 설교의 마지막 오 분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한 문장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한 문장의 수를 각각 세어 보셨는지요. 요한의 비율과 얼마나 다른지 보이실 것입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서로 사랑합시다」는 방향이지 행동이 아닙니다. 회중은 그 말에 동의하고 돌아가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착지한 적용은 20절의 「보이는 형제」를 한 사람으로 좁히고, 그 사람에게 이번 주 안에 할 수 있는 일 하나를 손에 쥐어 줍니다. 그리고 그 일이 우리가 먼저 사랑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짚어 줍니다.

이 설교 녹음으로 리포트 받기Preaching Lab 이 무엇인지 보기

함께 보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