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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1-17

요한복음 15장 설교 —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5:1-17은 다락방 강화의 한복판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 교회 강단에서 가장 자주 오르는 본문 중 하나입니다. 익숙한 만큼 설교자는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회중이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되풀이하기 쉽습니다.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거하라'는 명령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곧바로 '서로 사랑하라'로 이어지는지를 회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풀어내기를 조용히 요구합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을 Preaching Lab에 올리시면 아래 다섯 질문을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문 한눈에

  1. 1-3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 아버지를 농부로 소개하시고, 열매 없는 가지는 제거되고 열매 맺는 가지는 깨끗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이미 말씀으로 깨끗하다고 선언하십니다.
  2. 4-8절은 이 본문의 중심 명령인 '내 안에 거하라'를 반복하며,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선언과 열매를 많이 맺어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는 약속을 함께 놓습니다.
  3. 9-11절에서 거함의 내용이 사랑으로 밝혀집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아들이 제자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길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 목적은 제자들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4. 12-15절은 계명을 하나로 좁힙니다.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같이 하라는 것이며, 그 사랑의 척도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제자들은 종이 아니라 친구로 불립니다.
  5. 16-17절은 순서를 바로잡습니다. 제자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를 택하여 세우셨고, 열매 맺음과 기도 응답의 약속 뒤에 다시 한 번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본문이 닫힙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거함이 먼저다 — 열매는 결과이지 조건이 아니다

4-5절의 '거하라'를 설교의 등뼈로 삼고, 열매는 가지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붙어 있는 가지에 맺히는 것임을 보여주는 방향입니다. 3절에서 제자들이 이미 깨끗하다고 선언된 사실을 붙들면 이 설교는 은혜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 방향은 설교자에게 '거한다'는 것이 회중의 월요일에 어떤 모습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중은 아름다운 그림만 안고 돌아갑니다.

거함의 내용은 사랑이다 — 9절에서 17절로 가는 길

본문이 '내 안에 거하라'에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로, 다시 '서로 사랑하라'로 옮겨가는 움직임을 따라가는 방향입니다. 많은 설교가 8절에서 멈추는데, 예수님은 17절까지 말씀하셨고 거함의 열매를 공동체의 사랑으로 못 박으셨습니다. 이 방향은 설교자가 개인 경건에 머무르지 않고 회중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말하게 하며, 그만큼 교회 안의 실제 관계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용기를 요구합니다.

택하심과 친구됨 — 15-16절에서 시작하는 설교

제자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택하셨다는 16절과, 종이 아니라 친구라 부르신 15절을 앞세워 본문 전체를 그 빛 아래 읽는 방향입니다. 거하라는 명령이 부담이 아니라 이미 택함받은 자에게 주어진 자리임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다만 택하심을 말할 때 예정에 관한 교단의 이해가 갈리므로, 본문이 말하는 범위인 제자 부르심과 열매 맺도록 세우심에 머무르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2절과 6절을 건너뛰거나, 반대로 그것만 남기는 것

제거되는 가지와 불에 던져지는 가지는 설교하기 불편한 구절이라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반대로 설교 전체가 경고로 기울어 회중을 겁주는 데서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은 3절에서 제자들이 이미 깨끗하다고 말한 뒤 이 경고를 놓습니다. 경고를 말하되 그 자리를 본문의 순서대로 두는 것이 정직한 설교입니다. 이 구절이 구원의 상실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통마다 읽기가 다르므로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까지 단정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포도나무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는 것

포도 농사, 가지치기, 접붙임에 관한 긴 설명이 설교의 절반을 차지하고 정작 예수님의 말씀은 배경으로 밀려나는 일이 잦습니다. 예수님은 농사법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자신과 제자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예화는 본문이 이미 하는 말을 더 잘 들리게 하는 만큼만 쓰고, 예화에서 얻은 통찰을 본문이 말하지 않는 곳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거함을 활동 목록으로 바꾸어 은혜를 조건으로 만드는 것

'거한다'를 새벽기도, 큐티, 예배 출석의 목록으로 곧장 번역하면 회중은 본문을 열매 맺기 위한 과제표로 듣게 됩니다. 그 활동들이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라, 본문은 먼저 예수님이 제자를 택하셨고 이미 깨끗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실천을 말하되 그것이 붙어 있음의 조건이 아니라 붙어 있는 가지의 모습임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설교는 복음을 지나쳐 도덕으로 갑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설교 안에서 '거하다'라는 말을 몇 번 쓰셨고, 그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런 것이다'라고 회중의 일상 언어로 풀어 말한 대목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요, 아니면 본문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셨는지요.
  2. 12절과 17절의 '서로 사랑하라'가 설교에서 다루어졌는지요. 다루어졌다면 설교 시작 후 몇 분 지점이었고 몇 분을 쓰셨는지, 아니면 8절의 열매에서 설교가 사실상 끝났는지요.
  3. 2절과 6절의 제거되는 가지를 언급하셨는지요. 언급하셨다면 3절의 '이미 깨끗하다'는 선언이 그 앞이나 뒤에 함께 나왔는지, 아니면 경고만 홀로 남았는지요.
  4. 포도나무와 농사에 관한 설명이나 예화에 쓰신 시간이 본문 구절을 직접 읽고 풀어 말한 시간보다 길었는지요. 녹취록에서 두 부분의 분량을 견주어 보실 수 있습니다.
  5. 16절의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가 설교에 등장했는지요. 등장했다면 그 문장이 회중에게 위로로 들리도록 배치되었는지, 아니면 지나가는 인용에 그쳤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은 '주님 안에 더 거합시다'나 '더 사랑합시다'라는 방향 제시로 끝나기 쉽습니다. 방향은 옳지만 회중은 그것을 다음 주일 전에 무엇을 하라는 말로 듣지 못합니다. 착지한 적용은 거함이 이번 주 어느 시간, 어느 자리에서 일어나는지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이 교회의 어느 한 사람에게 향하는지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특히 12절과 17절 때문에 개인 경건의 적용만으로는 절반에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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