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18
요한복음 1장 설교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다
요한복음 1:1-18은 성탄절과 신년, 그리고 요한복음 강해의 첫 주일에 강단에 오르는 본문입니다. 신학의 무게가 가장 큰 열여덟 절이라 설교자는 자칫 교리 강의로 흐르거나, 반대로 어려운 절을 건너뛰고 따뜻한 성탄 분위기만 남기기 쉽습니다. 이 페이지는 Preaching Lab이 설교 녹음을 듣고 드리는 피드백과 같은 눈으로, 이 본문을 설교하기 전과 후에 점검하실 수 있도록 만든 작업 페이지입니다.
본문 한눈에
- 1-5절은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곧 하나님이셨으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고 생명과 빛이 그 안에 있었다고 선언합니다.
- 6-8절은 갑자기 요한이라는 사람을 등장시켜 그가 빛이 아니라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임을 분명히 합니다.
- 9-13절은 참 빛이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과 자기 백성이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그럼에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선언합니다.
- 14절은 본문의 정점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 15-18절은 다시 요한의 증언을 끼워 넣은 뒤, 율법은 모세로,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으며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독생하신 하나님이 그분을 나타내셨다고 마무리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 성육신 그 자체
14절을 중심에 두고 창조주가 피조 세계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 자체를 설교하는 길입니다. 1절의 높이와 14절의 낮음 사이의 거리를 회중이 실감하게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 방향은 설교자에게 추상적인 교리 용어를 회중의 언어로 옮기는 수고를 요구하고, 그 수고를 건너뛰면 성도들은 익숙한 말을 익숙하게 흘려듣고 돌아갑니다.
영접과 거절 — 10-13절의 두 갈래
빛이 왔는데 세상이 알지 못했고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는 11절의 아픔과, 영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자녀 됨의 권세를 대조하는 길입니다. 회중 안의 오래된 성도들에게 영접이 과거 사건이 아니라 지금의 태도임을 묻게 됩니다. 이 방향은 12-13절의 신적 주도권과 인간의 믿음이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대해 교단마다 강조점이 다르므로, 설교자가 본인 교단의 언어를 쓰되 다른 전통을 폄하하지 않는 절제를 요구합니다.
증언자 요한 — 빛이 아닌 자의 자리
6-8절과 15절의 세례 요한을 축으로, 자신이 빛이 아님을 아는 증인의 자세를 설교하는 길입니다. 전도와 봉사, 직분을 맡은 성도들에게 자기 자리를 확인시키는 데 강합니다. 다만 요한이 본문의 주인공이 아니므로, 요한의 겸손이 설교의 중심이 되어 정작 그가 가리키는 분이 뒤로 물러나면 본문의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 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1절에서 교리 강의로 빠져 14절에 못 닿는 경우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다는 1절은 삼위일체 설명을 부르고, 설교자는 그 유혹에 십 분 넘게 머물기 쉽습니다. 그러면 정작 이 본문이 향하는 14절과 18절은 시간에 밀려 급하게 지나갑니다. 1절은 14절을 놀랍게 만들기 위한 높이이지 그 자체가 종착지가 아닙니다.
11절을 유대인 이야기로 남겨 두는 경우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는 11절을 당시 이스라엘의 실패로만 설명하고 넘어가면, 회중은 자신이 그 백성의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합니다. 본문은 이미 교회 안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도 빛을 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 절을 건너뛰면 12절의 은혜도 가벼워집니다.
성탄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는 경우
왕이 거지 옷을 입고 백성 가운데 들어갔다는 식의 성육신 예화는 힘이 세서, 설교의 기억이 예화에만 남고 본문의 실제 문장은 한 번도 회중 앞에 놓이지 않는 일이 생깁니다. 예화가 14절을 설명하는지, 14절이 예화의 근거로 잠깐 인용되는지는 녹음을 들으면 분명히 구분됩니다. 또한 17절의 율법과 은혜의 대조를 모세를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풀면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설교 전체에서 14절을 몇 번 직접 언급하셨고, 그 절에 머문 시간이 1절의 신성 설명에 쓴 시간보다 길었는지요, 짧았는지요.
- 11절의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을 당시 이스라엘에게만 적용하셨는지, 아니면 지금 예배당에 앉은 성도에게 돌리는 문장이 녹취록에 한 문장이라도 있는지요.
- 성육신 예화를 쓰셨다면, 예화가 끝난 뒤 본문의 절 번호로 되돌아오는 문장이 있었는지, 아니면 예화에서 바로 적용으로 넘어가셨는지요.
- 12-13절의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를 설명하실 때 특정 교단의 구원론 용어를 몇 번 쓰셨고, 그 용어를 처음 듣는 새신자가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 준 문장이 뒤따랐는지요.
- 18절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를 설교의 결론에서 실제로 다루셨는지, 아니면 시간에 밀려 17절 이후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마치셨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은 「우리도 빛을 영접합시다」나 「성육신의 사랑을 본받읍시다」에서 멈추기 쉽습니다. 그것은 방향이지 행동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14절은 하나님이 거리를 좁혀 실제 몸으로 사람 곁에 오셨다는 뜻이므로, 착지한 적용은 성도가 이번 주에 누구 곁으로 몸을 옮길 것인지를 이름과 시간으로 말하게 합니다.
- 이번 주 안에 오랫동안 문자로만 안부를 묻던 한 사람을 정해 직접 찾아가거나 얼굴을 보고 식사 한 끼를 함께 하십시오.
- 요한복음 1:1-18을 이번 주 매일 아침 한 번씩 소리 내어 읽고, 14절에서 「우리 가운데」의 「우리」에 자기 이름을 넣어 한 번 더 읽어 보십시오.
- 교회 안에서 아직 이름을 모르는 성도 한 분에게 다음 주일 예배 전에 먼저 다가가 이름을 묻고 자기 이름을 알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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