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11
빌립보서 2장 설교 — 종의 형체를 입으신 그리스도의 마음
빌립보서 2:1-11은 교회 안의 갈등을 다루는 주일, 고난주간과 종려주일, 그리고 겸손과 섬김을 말해야 하는 거의 모든 자리에서 강단에 오르는 본문입니다. 그만큼 익숙해서, 설교자는 본문이 실제로 하는 말보다 이미 알고 있는 말을 하기 쉽습니다. 이 페이지는 설교를 하신 뒤 녹음이나 녹취록으로 되짚어 보실 수 있도록 만든 것이며, Preaching Lab이 설교 피드백에서 실제로 살펴보는 자리들을 따라 짜여 있습니다.
본문 한눈에
- 1-2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것들(권면, 위로, 교제, 긍휼)을 조건절로 세우고, 그것이 참이라면 같은 마음과 같은 사랑으로 자신의 기쁨을 채워 달라고 청합니다.
- 3-4절은 그 하나됨이 어떤 모양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자기 일만이 아니라 남의 일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 5절은 경첩입니다. 이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마음이라고 말하며, 권면을 인물에게 연결합니다.
- 6-8절은 하강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그것을 붙들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으로 죽기까지, 그것도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 9-11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상승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교회의 하나됨을 위한 권면으로 읽기
본문의 문법적 무게는 1-4절의 권면에 있고, 6-11절은 그 권면의 근거이자 동력입니다. 이렇게 설교하면 빌립보 교회의 실제 상황(1:27의 한 뜻, 4:2의 두 사람)이 살아나고 회중의 갈등에 곧바로 닿습니다. 다만 6-11절을 권면의 부록으로 축소하지 않도록,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의 원인이라는 순서를 설교의 구조로 보여 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노래하는 본문으로 읽기
6-11절은 초대교회의 고백이나 찬송으로 널리 여겨지는 대목이며, 하나님의 본체, 종의 형체, 십자가, 주라는 이름이 한 호흡에 담겨 있습니다. 이 방향은 회중이 그리스도를 크게 보게 하고, 예수는 주라는 고백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듣게 합니다. 대가는 강의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이 노래를 여기 두었는지, 즉 빌립보의 다툼과 허영으로 돌아오는 길을 설교 안에 반드시 남겨 두셔야 합니다.
낮아짐과 높아짐의 순서, 하나님의 길로 읽기
9절의 그러므로는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아버지의 높이심이 뒤따른다는 것을 말하며, 이 순서는 3장의 바울 자신의 이야기와 1:29의 고난받는 교회에 그대로 겹칩니다. 이렇게 설교하면 낮아짐이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임이 드러납니다. 조심하실 것은 이것이 낮아지면 보상받는다는 거래로 들리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높이신 주체는 하나님이고, 높이신 목적은 아버지의 영광이지 우리의 성공이 아닙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그리스도가 모범으로만 남는 설교
5절의 이 마음을 품으라를 따라가다 보면 6-11절이 겸손의 위대한 예화가 되고, 설교는 우리도 저렇게 낮아지자로 끝납니다. 그러면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본체, 종의 형체, 십자가, 주라는 이름이 도덕 교훈의 배경 그림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우리가 본받을 일이기 전에 우리를 위해 일어난 일이라는 문장이 설교 안에 실제로 있어야 합니다.
9-11절을 서두르거나 1-4절을 건너뛰는 설교
고난주간이면 8절에서 설교가 끝나고, 겸손 설교면 6-8절을 지나 9-11절을 한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잦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론에 집중하면 1-4절의 다툼과 허영, 남의 일을 돌보라는 구체적 권면이 아예 사라집니다. 본문은 열한 절이 하나의 논증이고, 어느 쪽을 잘라 내면 바울이 왜 이 편지를 썼는지가 설교에서 빠집니다.
비움이라는 낱말과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는 설교
7절의 자기를 비워는 신학사에서 오래 논쟁된 자리이고, 6절의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역시 이미 가진 것을 움켜쥐지 않으셨다는 읽기와 없는 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으셨다는 읽기가 갈립니다. 어느 쪽이든 본문의 요지는 그분이 자기를 위해 지위를 쓰지 않으셨다는 것이므로, 설교가 한쪽 학설 해설이 되거나 비움을 마음 비우기 식의 자기계발로 옮기면 본문을 떠난 것입니다. 변장한 왕 이야기 같은 익숙한 예화도 마찬가지로, 예화가 끝난 뒤 설교가 다시 절로 돌아오는지가 관건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녹음에서 1-4절의 권면과 6-11절의 찬송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5절을 몇 번 말씀하셨고, 어느 지점에서였으며, 6-11절이 1-4절의 근거로 들렸는지 아니면 별개의 대지로 들렸는지요.
- 그리스도를 우리가 본받을 분으로 말한 문장과, 우리를 위해 일하신 분으로 말한 문장을 각각 세어 보십시오. 둘의 비율이 어떠했으며, 후자에 해당하는 문장이 설교의 어느 자리에 있었는지요.
- 9-11절에 몇 분을 쓰셨는지 시간을 재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다는 문장이 실제로 발화되었는지, 모든 입이 주라 시인한다는 고백이 회중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한 문장이라도 풀었는지, 아니면 십자가에서 설교가 사실상 끝났는지요.
- 2-4절의 같은 마음, 다툼과 허영, 남의 일을 돌아봄을 회중의 실제 장면에 연결한 문장이 있었는지 찾아보십시오. 교회 안의 어떤 관계, 어떤 모임, 어떤 결정을 가리키셨는지, 아니면 겸손합시다와 하나 됩시다에 머물렀는지요.
- 가장 긴 예화의 길이를 재어 보시고, 그 예화가 끝난 직후 설교가 어느 절로 돌아갔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돌아간 절이 없다면 그 예화는 본문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본문을 대신한 것입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이 겸손하십시오, 서로 낫게 여기십시오에서 멈추면 방향은 있으나 행동이 없습니다. 3-4절은 이미 방향이 아니라 동작을 말합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을 돌아보라는 것은 이번 주에 누구의 어떤 일을 돌아볼 것인지가 정해질 때 비로소 적용이 됩니다. 착지한 적용은 회중이 주일 오후에 한 사람과 한 자리를 떠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 교회 안에서 마음이 어긋난 한 사람에게 이번 주 안에 먼저 연락하여, 내 사정을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형편을 묻는 대화를 한 번 나눕니다.
- 내가 발언권을 가진 회의나 모임 하나를 정해, 이번 주에는 내 의견을 뒤로 물리고 다른 사람의 제안이 채택되도록 실제로 손을 듭니다.
- 주방, 주차, 청소처럼 눈에 띄지 않는 봉사 자리 하나를 이번 주에 한 번 맡고,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 설교 녹음으로 리포트 받기Preaching Lab 이 무엇인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