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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3:6-12

말라기 3장 설교 — 온전한 십일조, 돌아오라는 부르심

말라기 3:6-12은 한국 교회 강단에서 십일조 본문으로 가장 자주 오르는 본문 가운데 하나라, 회중은 설교자가 입을 열기 전에 이미 결론을 짐작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조용히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8절의 도둑질보다 6절의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7절의 돌아오라는 부르심이 먼저 들리게 하는 일이고, Preaching Lab은 설교하신 뒤 녹음에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함께 살피는 자리입니다.

본문 한눈에

  1. 6절은 여호와께서 변하지 않으시므로 야곱의 자손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심판 앞에 놓인 백성이 아직 남아 있는 까닭이 그들의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있음을 먼저 못 박습니다.
  2. 7절에서 하나님은 조상 때부터 떠나 있던 백성에게 돌아오라 부르시고, 백성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느냐고 되묻습니다. 말라기 전체가 그렇듯 하나님의 말씀과 백성의 반문이 오가는 논쟁 형식입니다.
  3. 8-9절은 그 반문에 대한 답으로 십일조와 봉헌물을 짚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는 물음이 온 나라를 향한 저주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4. 10절은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라는 명령과 나를 시험하여 보라는 이례적인 초대, 그리고 하늘 문을 열겠다는 약속을 한데 묶습니다.
  5. 11-12절은 그 약속을 땅과 열매와 열방의 평가로 넓힙니다. 회복된 예배가 회복된 땅으로, 그리고 모든 민족이 부르는 복된 이름으로 이어지는 그림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돌아옴의 설교: 7절을 중심에 두는 길

본문의 뼈대는 떠남과 돌아옴이고, 십일조는 그 돌아옴이 손에 잡히는 자리로 제시됩니다. 이 길은 헌금 설교라는 회중의 예상을 깨고 관계의 회복을 말할 수 있지만, 8-10절을 흐리게 지나가면 본문이 굳이 십일조를 집은 이유를 놓칩니다. 돌아옴이 지갑에서 확인된다는 본문의 구체성을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창고의 설교: 십일조가 어디로 가는가

10절의 창고는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먹이던 자리였고(신명기 14장, 느헤미야 13장 참조), 말라기 1-2장은 그 창고를 맡은 제사장들이 먼저 무너졌음을 보여 줍니다. 이 길은 십일조를 개인의 복 문제에서 공동체의 예배와 돌봄 문제로 옮겨 놓습니다. 그 대신 설교자는 우리 교회의 창고가 실제로 누구를 먹이고 있는지를 말할 준비가 되어야 하고, 그것은 강단에서 부담스러운 정직함을 요구합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설교: 6절에서 12절까지

6절의 불변하심이 없으면 10절의 약속은 거래가 되고 9절의 저주는 위협이 됩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성품을 본문의 지붕으로 삼아 저주와 약속을 모두 언약 안에서 읽습니다. 요구되는 것은 절제입니다. 10절의 시험하여 보라를 신명기 6:16의 시험하지 말라와 나란히 놓고, 이것이 하나님이 스스로 여신 예외적인 초대임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10절만 남는 설교

6-7절을 서론으로 스치고 10절에서 이십 분을 보내면 회중은 돌아오라는 부르심을 듣지 못하고 헌금 독려만 듣습니다. 본문은 돌아오라는 말에서 시작해 십일조로 내려오는데, 설교는 십일조에서 시작해 거기서 끝나기 쉽습니다. 녹취록에서 돌아옴이라는 말이 몇 번 나왔는지 세어 보면 이 문제가 바로 드러납니다.

약속을 계약으로 바꾸는 설교

하늘 문과 넘치는 복을 개인의 재정 형편과 직결시키면, 십일조를 드리고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은 성도는 설교 뒤에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믿음을 의심하게 됩니다. 11-12절의 복은 땅과 백성과 열방을 향한 언약적 그림이고, 본문에는 개인의 잔고 이야기가 없습니다. 예화가 그 빈자리를 채우기 쉬운데, 예화가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약속하지 않도록 살펴야 합니다.

신약의 물음을 건너뛰는 설교

십일조가 신약 성도에게 그대로 구속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교단과 전통이 다르게 답합니다. 여전히 유효한 명령으로 보는 쪽도 있고, 자원하는 드림의 최소한의 기준으로 보는 쪽도 있으며, 고린도후서 8-9장의 원리로 이어받았다고 보는 쪽도 있습니다. 설교자가 자기 전통의 입장을 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 물음이 회중 안에 있다는 것을 아예 모른 척하면 성실하게 고민하던 성도가 설교 밖으로 밀려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취록에서 6절의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7절의 돌아오라는 부르심이 8절의 도둑질 이야기보다 먼저 나왔는지요, 그리고 각각에 몇 분을 쓰셨는지요. 10절에 쓰신 시간과 견주어 보십시오.
  2. 10절의 시험하여 보라를 설명하실 때, 이것이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다른 본문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한 문장이라도 말씀하셨는지요. 말씀하셨다면 그 문장을 녹취록에서 찾아 그대로 읽어 보십시오.
  3. 창고가 무엇이었는지, 곧 그 십일조로 누가 먹었는지를 말씀하셨는지요. 레위인, 고아, 과부, 나그네 가운데 설교에 실제로 등장한 낱말이 무엇인지 세어 보십시오.
  4. 하늘 문과 복을 말씀하시는 대목에서, 회중 개인의 재정이 나아진다는 취지의 문장이 있었는지요. 있었다면 그 문장이 11-12절의 어느 구절에 근거한다고 말씀하셨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5. 십일조를 이미 드리고 있는 성도, 아직 드리지 않는 성도, 드리고도 형편이 어려운 성도, 이 셋 가운데 설교가 직접 말을 건넨 대상은 누구였는지요. 각 대상을 향한 문장이 녹취록에 하나라도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하나님께 돌아갑시다, 온전히 드립시다 같은 말로 끝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도는 월요일에 무엇을 하면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리를 잡은 적용은 7절의 돌아옴이 이번 주 어느 통장, 어느 대화, 어느 결정에서 확인되는지를 하나 짚어 주고, 그것이 10절의 창고처럼 누군가를 실제로 먹이는 데까지 이어지는 모양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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