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1-16
히브리서 11장 설교 — 보지 못하는 것을 붙든 사람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본문으로 자주 불리지만, 실은 지치고 흔들리는 회중에게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주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자에게 조용히 요구하는 것은 믿음의 개념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받지 못한 것을 붙들고 사는 삶이 어떤 모양인지를 회중 앞에 세워 보이는 일입니다. Preaching Lab 은 설교를 마치신 뒤 녹음으로 그 자리를 다시 살펴보실 때 쓰는 도구이고, 이 페이지는 그 앞뒤에 함께 놓고 보시라고 만든 것입니다.
본문 한눈에
- 1-3절은 믿음을 정의하기보다 방향을 정합니다. 바라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서 있는 자세이며, 3절은 그 첫 사례로 창조 자체를 듭니다.
- 4-7절은 아벨, 에녹, 노아를 부릅니다. 세 사람 모두 하나님이 인정하셨다는 말이 반복되고, 6절은 그 사이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조건을 끼워 넣습니다.
- 8-12절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머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간 일, 약속의 땅에서 장막에 산 일, 죽은 자와 같은 몸에서 후손을 얻은 일이 모두 아직 받지 못한 약속을 붙든 이야기입니다.
- 13-16절이 본문의 무게중심입니다. 이들이 약속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한 삶을 하나님이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 그래서 본문은 믿음이 무엇을 얻어 내는가가 아니라, 얻지 못한 채로도 어디를 향해 서 있는가를 묻습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믿음
13절을 설교의 축으로 삼는 길입니다. 본문의 인물들이 약속을 받지 못한 채 죽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세우면, 믿음이 곧 응답의 보증이라는 회중의 기대와 부딪히게 됩니다. 이 길은 기도 응답을 기다리다 지친 성도에게 가장 정직한 위로가 되지만, 설교자가 그 부딪힘을 끝까지 견디고 16절의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으로 데려가야 하며, 중간에 결국 다 받았다는 식으로 무마하면 본문이 무너집니다.
나그네와 행인의 정체성
9-10절과 13-16절의 장막, 나그네, 본향이라는 말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안에서도 장막에 살았다는 대목은 믿음이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의 문제임을 보여 줍니다. 이 길은 회중이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묻게 하지만, 세상을 등지라는 도피의 설교로 흐르지 않으려면 본향을 사모하는 것이 지금 여기서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설교자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사람
16절 하반절에 무게를 두는 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은 결함이 많은 인물들인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 길은 자신의 믿음이 작다고 느끼는 성도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 주지만, 4절부터 반복되는 인정하셨다는 말이 무엇에 대한 인정인지를 본문 안에서 짚지 않으면 값싼 위로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1절을 정의로 굳히고 본문을 떠남
1절을 믿음의 사전적 정의로 삼아 실상과 증거라는 두 낱말을 풀이하는 데 설교의 절반을 쓰고, 정작 그 뒤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예화 정도로만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은 1절을 설명하기 위해 인물들을 부른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삶으로 1절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정의에서 출발하시더라도 13절에서 그 정의가 어떻게 뒤집히는지까지 가셔야 합니다.
믿음을 응답의 조건으로 만듦
6절의 상 주시는 이라는 표현과 11-12절의 사라 이야기를 묶어, 믿으면 받는다는 구조로 설교가 기울기 쉽습니다. 그러나 같은 본문 13절은 이들이 약속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 절을 건너뛰거나 한 문장으로 지나가면, 회중은 믿음을 기도 응답을 끌어내는 수단으로 듣고 돌아가게 됩니다.
믿음의 영웅전으로 흐름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을 차례로 소개하다 보면 설교가 위인전이 되고, 회중은 나는 저렇게 못 한다는 결론으로 내려앉습니다. 본문이 이들을 부르는 이유는 본받으라는 것이기 전에, 이들도 보지 못한 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16절에서 하나님이 이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인물들의 위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가리킨다는 점이 설교에 드러나야 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13절의 약속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을 설교 중에 실제로 언급하셨는지요. 언급하셨다면 몇 분 지점에서, 몇 문장으로 다루셨고, 그 뒤에 곧바로 그래도 결국은 받았다는 식의 완충 문장이 따라붙지는 않았는지 녹취록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 본문에 나온 인물 가운데 설교에서 이름을 부르며 다룬 사람이 몇 명이고, 각 인물에 쓴 시간이 대략 얼마였는지요. 아브라함에게만 시간이 몰리고 아벨과 에녹은 한 줄로 지나갔다면, 본문이 그 넷을 왜 함께 세웠는지가 설교에 남았는지 다시 들어 보십시오.
- 믿음이라는 낱말을 설교에서 몇 번 쓰셨고, 그 가운데 몇 번이 본문 자체의 표현인 바라는 것, 보이지 않는 것, 나그네, 본향 같은 구체적인 말로 풀려 있었는지요. 믿음이 정의 없이 반복되기만 했다면 회중은 각자의 뜻으로 채워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16절 하반절의 하나님이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설교 어디에 나왔는지요. 결론부에 한 번 나왔는지, 아니면 아예 나오지 않았는지, 나왔다면 그것이 회중에게 주어진 복음의 말로 들렸는지 인물들에 대한 칭찬으로 들렸는지 그 앞뒤 문장을 읽어 보십시오.
- 설교에서 쓰신 예화가 본문의 인물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였다면, 그 예화의 주인공은 결국 원하던 것을 받았는지요. 본문의 인물들은 받지 못했는데 예화의 주인공은 받았다면, 예화가 본문의 방향을 조용히 뒤집었을 수 있습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뜬 적용은 더 큰 믿음을 가지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자 같은 말로 끝나는 것입니다. 방향은 맞지만 성도가 월요일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내려앉은 적용은 본문이 말하는 나그네의 자세, 아직 받지 못한 약속을 붙드는 일, 앞서 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이번 주 어느 자리에서 어떤 행동이 되는지를 한 가지로 좁혀 말합니다.
- 오래 기도해 왔지만 아직 응답받지 못한 제목 하나를 종이에 적고, 그 옆에 13절 말씀의 절 번호를 써서 이번 주 매일 그 종이를 보며 한 번씩 기도해 보십시오.
- 이번 주 안에 나보다 앞서 믿음의 길을 걸었던 한 분, 돌아가신 분이든 살아 계신 분이든 그분의 이름을 떠올리고, 살아 계시면 전화나 문자로 그분의 믿음이 내게 남긴 것을 한 가지 말씀드려 보십시오.
- 지금 내가 가장 붙들고 있는 소유나 자리 하나를 정직하게 적고, 그것이 없어도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써서 다음 주일 예배 전에 다시 읽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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