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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25-40

요한복음 6장 설교 — 나는 생명의 떡이니

요한복음 6:25-40은 오병이어의 배부름 뒤에 오는 본문입니다. 어제 떡을 먹은 무리가 오늘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은 그들이 찾는 것과 자신이 주시려는 것이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조용히 되돌려 줍니다. 회중이 오늘 강단에서 찾는 것은 무엇이고, 설교자가 주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둘이 다를 때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지입니다. Preaching Lab은 그 물음을 설교 녹음으로 다시 들어 보는 자리입니다.

본문 한눈에

  1. 무리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예수님은 그들이 표적을 보아서가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왔다고 짚으십니다(25-27절).
  2. 무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고, 예수님은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답하십니다(28-29절).
  3. 무리는 광야의 만나를 들어 표적을 요구하고, 예수님은 만나를 주신 이가 모세가 아니라 아버지이며 참 떡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라고 하십니다(30-33절).
  4. 그 떡을 항상 달라는 청에 예수님은 자신이 곧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시고, 오는 자와 믿는 자가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라 하십니다(34-36절).
  5. 본문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가 내게로 오고, 오는 자를 결코 내쫓지 않으며,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겠다는 약속으로 닫힙니다(37-40절).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떡을 찾는 무리와 떡이신 분

26-27절을 축으로, 사람들이 예수님께 오는 동기와 예수님이 주시려는 것 사이의 간격을 다루는 방향입니다. 회중이 신앙에서 실제로 구하는 것을 정직하게 드러내야 하므로, 설교자가 자기 회중의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방향을 택하면 35절의 선언이 책망의 끝이 아니라 초대로 들리도록 후반부를 길게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는 것이다

28-29절의 질문과 답을 중심에 두고, 행위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마음과 믿음으로 받는 은혜의 차이를 다루는 방향입니다. 종교개혁의 이신칭의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요한복음의 믿음은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게 오고 먹는 것이라는 점을 본문 자체의 언어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 방향은 35절의 오다와 믿다가 한 짝으로 놓인 것을 놓치지 않을 때 힘이 있습니다.

내쫓지 아니하리라

37-40절의 약속을 정점으로, 오는 자를 붙드시는 아버지의 뜻과 마지막 날의 부활을 다루는 방향입니다. 위로가 절실한 회중, 장례 뒤의 주일, 신앙의 확신이 흔들리는 성도에게 맞습니다. 다만 37절과 39절은 예정과 견인에 관해 교단마다 읽는 결이 다르니, 설교자는 자기 교단의 고백 안에서 말하되 본문이 이 약속을 논쟁이 아니라 위로로 주고 있다는 점을 앞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26절에서 회중을 꾸짖고 끝나는 설교

떡 때문에 왔다는 지적은 예리해서 설교자가 거기에 오래 머물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무리에게 등을 돌리지 않고 35절과 37절의 초대를 주십니다. 책망이 설교의 절반을 넘으면 본문의 무게중심이 뒤집힙니다.

생명의 떡을 곧바로 성찬으로만 읽는 설교

51절 이하의 살과 피 언어는 이 본문 밖에 있습니다. 25-40절에서 떡을 먹는다는 것은 오다와 믿다로 풀이되고 있습니다(35절). 성찬 주일이라면 연결이 자연스럽지만, 그때도 본문이 먼저 말하는 믿음의 차원을 건너뛰지 않아야 합니다. 성찬의 의미는 교단마다 다르게 고백하므로 본문 범위를 정직하게 지키는 것이 오히려 안전합니다.

만나 이야기가 본문을 대신하는 설교

31절의 만나는 출애굽기 16장으로 가는 문이 되고, 설교자는 광야 이야기에 예화의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나를 길게 설명하지 않고 곧장 그것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로 방향을 돌리십니다(32절). 만나 설명이 예수님의 선언보다 길어지면 회중은 모세를 듣고 돌아갑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35절의 선언이 설교의 몇 분 지점에서 처음 나왔고, 그 뒤로 몇 번 더 되풀이되었는지요. 26절의 책망에 쓴 시간과 35절 이후의 초대에 쓴 시간을 재어 보면 어느 쪽이 길었는지요.
  2. 29절의 하나님의 일이 믿는 것이라는 말씀을 설교에서 어떻게 풀었는지요. 믿음이라는 말을 쓴 자리에서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곧 누구에게 가고 무엇을 받는 것인지를 한 번이라도 구체적인 문장으로 말했는지요, 아니면 믿음이라는 낱말만 반복되었는지요.
  3. 37절의 내쫓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이 설교에 들어 있었는지요. 들어 있었다면 그 말씀이 누구를 향한 것으로 들리도록 말했는지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예정에 관한 교리 설명으로 빠져 몇 분을 썼는지요.
  4. 회중이 예수님께 오는 동기를 다루는 대목에서 설교자가 든 예는 어떤 것이었는지요. 그 예가 회중 밖의 누군가를 가리켰는지, 아니면 우리라는 주어로 이 자리의 성도를 포함했는지 녹취록에서 세어 보십시오.
  5. 만나와 오병이어와 출애굽 이야기에 쓴 시간을 합하면 몇 분이었고, 본문 25-40절 자체를 읽고 풀어 준 시간은 몇 분이었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예수님을 더 사모하자,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는 양식을 구하자로 끝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도가 월요일에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자리를 잡은 적용은 27절의 두 양식과 35절의 오다를 이번 주의 어느 시간, 어느 자리에 놓아 주는 것입니다. 회중이 예수님께 오는 자기 동기를 한 번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그 뒤에 그래도 오라는 초대가 남아 있음을 손에 쥐어 주는 적용이 이 본문에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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