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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 · 고린도전서 11:23-34 · 누가복음 22:14-23 · 요한복음 6:53-58 · 출애굽기 12:1-14

성찬식 설교 — 떡과 잔 앞에서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설교

성찬식 설교는 설교자가 홀로 서는 시간이 아닙니다. 설교가 끝나면 곧바로 떡과 잔이 나오고, 회중은 설교자의 말이 아니라 예식 자체를 통해 주의 죽으심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이 설교는 예식을 가리키되 예식을 가로막지 않아야 하고, 설명하되 대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용한 요구를 받습니다. Preaching Lab은 설교자가 그날의 녹음을 들으며 그 요구에 얼마나 응답했는지를 스스로 살피시도록 돕고자 합니다.

본문 한눈에

  1.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받은 것을 전한다고 말하며 성찬을 주께서 잡히시던 밤과 묶어 놓습니다. 성찬은 교회가 만든 관습이 아니라 받아서 전해 온 것입니다.
  2. 23-26절의 제정 말씀은 기념과 선포와 기다림이라는 세 방향을 동시에 가리킵니다. 뒤를 보고, 지금 전하고, 앞을 바라봅니다.
  3. 27-32절은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일과 자기를 살피는 일을 말하는데, 그 문맥은 17-22절에 있는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가난한 지체를 부끄럽게 하는 일입니다.
  4. 누가복음 22장은 같은 사건을 유월절 식탁 위에 올려놓고, 출애굽기 12장은 그 식탁이 애초에 어떤 밤을 기억하는지 보여 줍니다.
  5. 요한복음 6장은 성찬 제정 기사가 아니지만,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말로 그리스도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강한 언어로 묻습니다. 성찬 주일 강단은 이 네 갈래를 한 번에 다 다루려 하기보다 어느 하나를 골라 깊이 서는 쪽이 낫습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기념에서 선포로 — 26절을 축으로 삼는 길

고린도전서 11:26은 성찬을 먹고 마시는 행위 자체가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길은 성찬을 회중이 받는 은혜로만 두지 않고, 회중이 함께 하는 선포 행위로 세웁니다. 다만 이 길을 택하면 그날 설교는 십자가의 죽으심 자체를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죽으심을 전하는 예식을 설명하면서 정작 죽으심이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비워 두면 축이 무너집니다.

유월절 식탁에서 새 언약으로 — 출애굽기 12장과 누가복음 22장을 잇는 길

누가복음 22:15-20은 예수님이 유월절을 간절히 원하셨다고 말하고, 잔을 새 언약이라 부르십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어린 양과 피와 급히 먹는 밤을 먼저 세우면 성찬의 잔이 왜 언약의 잔인지가 회중에게 보입니다. 이 길은 구약 본문에 시간을 충분히 써야 하고, 유월절과 성찬의 연속성과 차이를 둘 다 말해야 합니다. 연속성만 말하면 성찬이 옛 절기의 반복이 되고, 차이만 말하면 구약을 읽은 이유가 사라집니다.

자기를 살피라 — 27-32절을 문맥 안에서 세우는 길

성찬 앞의 자기 성찰은 한국 교회 강단에 익숙한 주제입니다. 이 길이 본문에 충실하려면 살핌의 내용이 17-22절과 33-34절이 말하는 것, 곧 지체를 기다리지 않고 가난한 이를 부끄럽게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숨은 죄를 샅샅이 찾는 설교로 흐르면 본문이 묻는 질문과 설교가 묻는 질문이 갈립니다. 이 길은 회중 안의 실제 관계를 짚어야 하므로 설교자에게 가장 큰 목회적 용기를 요구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살핌이 두려움이 되어 식탁이 멀어지는 자리

27절과 29절의 경고를 앞세우면 회중은 성찬을 받기 전에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에 굳어집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식탁은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에게 먼저 주신 것이고, 합당하지 않게라는 말은 먹는 태도와 공동체를 향한 말이지 먹을 자격을 따지는 말이 아닙니다. 경고가 초대를 삼키면 예식이 설교와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성찬의 의미를 나열하다가 본문이 사라지는 자리

성찬 주일 설교는 기념, 감사, 교제, 언약, 기다림처럼 성찬의 의미를 항목으로 나열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설교는 교리 요약이 되고 그날 읽은 본문은 서론에서만 쓰입니다. 본문이 고린도전서 11장이면 고린도 교회의 식탁이, 누가복음 22장이면 유월절 밤의 식탁이 설교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떡과 잔의 성격을 설교자가 정해 버리는 자리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어떻게 담는지는 개혁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감리교회, 침례교회가 오래 다르게 고백해 온 자리이고, 요한복음 6:53-58을 성찬과 어떻게 연결할지도 전통마다 다릅니다. 설교자가 자기 교단의 고백을 회중에게 가르치는 일은 마땅하지만, 다른 고백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거나 본문이 어느 한쪽을 명백히 지지한다고 말하는 순간 본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 셈이 됩니다. 이 갈림길은 이름을 붙여 두고 자기 교회의 자리를 말씀하시는 편이 정직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설교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명시적으로 말한 문장이 몇 개였는지요. 성찬의 의미나 절차를 설명한 시간과 죽으심 자체를 말한 시간의 비율을 녹취록에서 세어 보실 수 있습니다.
  2. 고린도전서 11장을 본문으로 하셨다면, 17-22절 또는 33-34절의 공동체 문제를 언급하셨는지, 아니면 27-32절의 자기 살핌만 떼어 다루셨는지요. 녹취록에서 분열, 기다림, 가난한 지체에 해당하는 말이 어디에 나오는지 표시해 보십시오.
  3. 회중이 성찬에 나아오도록 초대하는 말과 성찬 앞에서 주의하도록 경고하는 말이 각각 몇 번 나왔고, 설교의 마지막 삼 분 안에는 어느 쪽이 남았는지요.
  4. 성찬의 신학적 성격에 관해 설교자의 교단이 고백하는 바를 말씀하신 대목에서, 다른 전통의 고백을 틀렸다고 규정한 문장이 있었는지요. 있었다면 녹취록에서 그 문장을 찾아 그것이 본문에서 나온 말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5. 설교 뒤에 이어질 성찬 예식을 가리킨 문장이 있었는지요. 곧 이 떡과 이 잔이라고 지시한 대목이 몇 번 있었고, 설교가 예식과 이어지지 않고 독립된 한 편으로 끝났는지를 녹음의 마무리 부분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성찬 주일의 적용은 자기를 돌아봅시다, 주님을 기억합시다처럼 방향만 있는 말로 끝나기 쉽습니다. 방향은 옳지만 회중은 그것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릅니다. 착지한 적용은 본문의 식탁이 요구하는 일, 곧 지체와의 화해와 주의 죽으심을 실제로 기억하는 행위를 다음 주일 전에 할 수 있는 크기로 줄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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