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1:1-17
요나 1장 설교 — 도망치는 선지자, 뒤쫓으시는 하나님
요나 1장은 누구나 줄거리를 아는 본문이라, 설교자가 본문을 다시 읽지 않고도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험입니다. 회중은 이미 큰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본문은 17절에 이르기 전까지 열여섯 절 동안 도망치는 선지자와 그를 추격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기도하는 이방인 뱃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조용히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요나를 손가락질하는 자리가 아니라 요나의 자리에 서 보는 것입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을 Preaching Lab에 올리시면 아래 다섯 질문을 실제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본문 한눈에
- 1-3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고, 요나는 니느웨 대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는데, 본문은 도망의 이유를 아직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얼굴을 피한다는 말만 두 번 반복합니다.
- 4-6절에서 하나님이 큰 바람을 바다에 던지시고, 이방인 뱃사람들은 각자 자기 신에게 부르짖는데 선지자는 배 밑층에서 깊이 잠들어 있어 선장이 그를 깨워 기도하라고 다그칩니다.
- 7-10절에서 제비가 요나에게 뽑히고, 요나는 자기 신앙을 고백하지만 뱃사람들은 그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 도망하는 중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 크게 두려워합니다.
- 11-15절에서 요나는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뱃사람들은 그 말을 따르기 전에 힘써 노를 저어 육지로 돌아가려 하며 여호와께 무죄한 피를 묻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 16-17절에서 뱃사람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제물을 드리고 서원하며,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요나는 사흘 밤낮을 그 뱃속에 머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부르심을 피하는 사람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
본문의 중심 동사는 요나의 도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추격입니다. 바람을 던지시고, 제비를 주관하시고, 물고기를 예비하시는 분이 이야기의 주어입니다. 이 방향으로 가려면 요나의 불순종을 도덕적으로 정죄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도망치는 사람을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집요한 은혜가 설교의 결론이 되어야 합니다. 그 대가는 4장을 미리 끌어오고 싶은 유혹을 참는 것입니다. 1장은 아직 요나의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잠든 선지자와 기도하는 이방인
본문은 신앙인과 불신자의 자리를 일부러 뒤집어 놓습니다. 부르짖고, 무죄한 피를 두려워하고, 제물을 드리고, 서원하는 이들은 뱃사람들이고, 잠들어 있는 이는 선지자입니다. 이 방향은 교회 안의 회중에게 가장 불편한 거울이 되는 만큼, 설교자가 회중을 꾸짖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먼저 그 배 밑층에 있음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폭풍 속에서 드러나는 고백
9절의 고백은 정통적이고 아름답지만, 그 고백을 하는 사람은 지금 그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는 중입니다. 입술의 신앙과 발걸음의 방향이 갈라진 상태를 본문이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이 방향은 고백과 삶의 간격을 다루기에 좋지만, 요나의 고백이 결국 뱃사람들을 여호와께로 이끄는 통로가 되었다는 점까지 가야 본문이 말하는 데까지 갑니다. 실패한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고백으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물고기가 본문을 삼키는 경우
17절은 한 절이고, 본문은 열여섯 절 동안 배 위에 머뭅니다. 그런데 설교는 물고기가 실제로 있었는지, 어떤 물고기였는지를 변호하거나 설명하는 데 상당 시간을 쓰기 쉽습니다. 그 시간만큼 뱃사람들의 기도와 요나의 잠은 설교에서 사라집니다. 물고기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도구이지 설교의 주제가 아닙니다.
요나를 회중에게서 떼어 놓는 경우
요나를 고집 센 실패자로 세워 놓고 회중에게 저렇게 되지 말라고 말하면, 설교는 편안해지고 본문은 힘을 잃습니다. 본문은 요나의 도망을 조롱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갑니다. 설교자가 요나를 삼인칭으로만 부르고 한 번도 우리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회중은 남의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4장의 이유를 1장에 미리 끌어오는 경우
요나가 왜 도망쳤는지는 4:2에 가서야 요나 자신의 입으로 나옵니다. 1장은 그 이유를 비워 둡니다. 설교 첫 대지부터 니느웨를 향한 요나의 미움과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해 버리면, 본문이 일부러 만든 긴장이 사라지고 1장은 4장의 서론이 되어 버립니다. 1장을 설교하신다면 1장이 말하는 만큼만 말하고, 이유는 다음 설교에 남겨 두시는 것이 본문에 충실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설교 전체에서 4-16절의 뱃사람들에게 쓴 시간과 17절의 물고기에 쓴 시간을 각각 재어 보면 어느 쪽이 길었는지요. 뱃사람들의 기도와 서원(14절, 16절)을 실제로 언급하셨는지요.
- 요나를 가리킬 때 우리 또는 저 자신이라는 말을 몇 번 쓰셨고, 요나는 또는 그는이라고 삼인칭으로만 부른 횟수는 몇 번인지요. 첫 번째 일인칭이 설교의 몇 분 지점에서 나왔는지요.
- 요나가 도망친 이유를 4장에서 가져와 설명하셨는지요. 설명하셨다면 몇 분 지점에서였고, 그 뒤로 1장 본문으로 다시 돌아오셨는지요.
- 5절의 잠든 요나와 부르짖는 뱃사람들의 대비를 대지나 문장으로 명시하셨는지요. 아니면 선장이 요나를 깨우는 6절이 설교에서 아예 빠졌는지요.
- 결론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문장의 주어가 하나님이었는지 회중이었는지요. 설교가 순종하라는 명령으로 끝났는지, 도망치는 사람을 붙드시는 하나님으로 끝났는지를 마지막 두 문장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떠 있는 적용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시다 또는 도망치지 맙시다입니다. 방향은 맞지만, 회중은 자신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피하고 있는지를 그 말로는 알 수 없습니다. 내려앉은 적용은 요나의 도망이 니느웨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사람을 향한 구체적인 말씀을 피한 것이었듯, 성도 한 사람이 이번 주에 피하고 있는 한 사람, 한 대화, 한 자리를 이름 붙이게 하는 것입니다.
- 지금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미루고 있는 사람이나 자리가 있다면, 이번 주 안에 그 이름을 종이에 적고 연락하거나 찾아가는 날짜를 정해 보십시오.
- 요나가 배 밑층에서 잠들어 있던 것처럼 내가 눈을 감고 있는 동안 곁에서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 이번 주에 그 한 사람에게 지금 어떤지를 먼저 물어보십시오.
- 뱃사람들이 폭풍 속에서 각자 자기 신에게 부르짖다가 여호와를 알게 되었듯, 아직 신앙이 없지만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을 위해 이번 주 매일 이름을 불러 기도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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