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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11-32

누가복음 15장 설교 — 두 아들을 다 잃을 뻔한 아버지

이 비유는 회중 대부분이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감동을 다시 만들어 내려는 유혹과, 이미 아는 이야기를 그냥 되풀이하는 유혹 사이에 서게 되십니다. 본문이 조용히 요구하는 것은 둘째 아들에서 멈추지 않고 32절의 열린 결말까지 회중을 데려가는 일이며, 설교를 마치신 뒤 녹음으로 그 길을 다시 걸어 보시는 데 Preaching Lab이 곁에 있습니다.

본문 한눈에

  1. 1-2절이 이 비유의 청중을 밝힙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가까이 오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는 자리에서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아들 세 비유가 이어집니다.
  2. 11-16절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유산을 요구하고 먼 나라로 떠나 모든 것을 잃으며, 돼지 먹이조차 얻지 못하는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3. 17-20절 상반절에서 그는 스스로 돌이켜 품꾼으로라도 받아 달라는 말을 준비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섭니다.
  4. 20절 하반절-24절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아직 멀리 있을 때 달려가 안고, 준비한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옷과 반지와 신발과 잔치로 아들의 자리를 되돌려 줍니다.
  5. 25-32절에서 맏아들은 잔치 소리를 듣고 분노하여 들어가기를 거절하고, 아버지는 이번에도 밖으로 나가 그를 달래며, 비유는 맏아들이 들어갔는지 말하지 않은 채 끝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달려 나가는 아버지 — 하나님의 마음을 보이는 설교

20절의 아버지가 이 비유의 중심이라고 보고, 돌아오는 자를 기다리고 먼저 달려가는 하나님을 회중 앞에 세우는 방향입니다. 회개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성도, 스스로를 품꾼 자격도 없다고 여기는 성도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닿습니다. 다만 이 방향은 25절 이후를 덧붙이는 결론으로 밀어 두기 쉬우므로, 맏아들 장면에 처음부터 시간을 배정해 두셔야 합니다.

집 안에 있으면서 잃어버린 아들 — 맏아들을 향한 설교

1-2절의 청중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라는 점을 붙들고, 비유의 칼끝이 사실 맏아들에게 향해 있다고 읽는 방향입니다. 오래 교회를 지켜 온 성도, 봉사와 헌신으로 자기 자리를 증명해 온 성도에게 29절의 종노릇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드러냅니다. 이 방향은 설교자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 서야 설득력이 생기며, 회중을 꾸짖는 자리에 서는 순간 본문의 아버지와 어긋납니다.

잔치에 들어갈 것인가 — 열린 결말을 그대로 두는 설교

32절에서 비유가 끝나고 맏아들의 대답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교의 구조로 삼는 방향입니다. 잃은 양과 드라크마 비유가 잔치와 기쁨으로 끝난 데 반해 세 번째 비유만 문 밖에서 멈춘다는 점을 살려, 회중 각자에게 그 문 앞에 서게 합니다. 이 방향은 결론을 설교자가 대신 닫아 주고 싶은 유혹을 견뎌야 하며, 회중이 불편한 채로 돌아가는 것을 감수하셔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24절에서 설교가 끝나 버리는 것

둘째 아들의 귀향과 잔치에서 감정의 정점이 오기 때문에 많은 설교가 그 자리에서 사실상 마무리되고, 맏아들은 짧은 후기처럼 붙습니다. 그러면 1-2절이 밝힌 청중을 놓치고, 비유가 왜 문 밖에서 끝나는지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원고 단계에서 25-32절에 배정한 분량을 세어 보시면 이 문제는 미리 보입니다.

돌아온 것을 회개의 공로로 만드는 것

17-19절의 돌이킴을 강조하다 보면 아들이 먼저 잘 결심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받아 주었다는 인상을 남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준비된 고백을 끝까지 듣지 않고 이미 안고 있습니다. 회개의 필요를 말하되, 아들의 배고픔과 계산이 섞인 동기를 미화하지 않는 편이 본문에 더 가깝습니다.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는 것

이 비유는 그 자체가 이야기라서 설교자가 가족 이야기, 탕자 경험담, 영화 장면을 겹쳐 넣으면 회중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문이 아니라 예화가 됩니다. 특히 감동적인 귀향 예화는 맏아들 장면의 불편함을 지워 버립니다. 예화를 쓰신다면 그것이 본문의 어느 절을 밝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본문이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반복하는 예화는 빼셔도 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설교 전체에서 25-32절 맏아들 장면에 쓴 시간이 몇 분이었는지, 그리고 11-24절에 쓴 시간과 비교해 어느 정도였는지 녹음의 시간 표시로 확인해 보셨는지요.
  2. 1-2절의 청중, 곧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수군거리는 자리를 설교 안에서 몇 번 언급하셨는지, 아니면 비유를 청중 없는 이야기로 다루셨는지 녹취록에서 세어 보셨는지요.
  3. 20절에서 아버지가 아들의 고백을 끝까지 듣지 않고 안았다는 점을 말씀하셨는지, 아니면 아들의 회개 결심이 잔치의 조건처럼 들리는 문장이 있었는지 찾아보셨는지요.
  4. 맏아들을 다루실 때 회중을 향해 여러분이라고 부른 문장과 설교자 자신을 포함해 우리라고 부른 문장의 비율이 어떠했는지, 그 장면에서 강단이 꾸짖는 자리에 서지는 않았는지 들어 보셨는지요.
  5. 설교의 마지막 두 문장이 무엇이었는지 적어 보시고, 그것이 32절의 열린 결말을 회중에게 넘기는 문장이었는지 아니면 설교자가 결론을 대신 닫아 준 문장이었는지 확인해 보셨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읍시다, 돌아옵시다, 형제를 품읍시다로 끝납니다.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회중이 주중에 무엇을 했는지 다음 주일에 스스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착지한 적용은 둘째 아들의 자리에 있는 이와 맏아들의 자리에 있는 이에게 각각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손에 쥐어 주고, 그것이 본문의 어느 절에서 나왔는지 회중이 알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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