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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0편

시편 90편 설교 —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날을 계수하는 지혜

시편 90편은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 첫 주일, 그리고 장례 강단에 가장 자주 오르는 시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만큼 회중은 이 본문을 이미 여러 번 들었고, 12절 한 절만 남기고 나머지를 잊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편은 설교자에게 인생의 짧음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원을 먼저 말하고, 죽음을 말하되 진노와 죄를 건너뛰지 않으며, 탄식으로 끝내지 않고 기도로 끝내라고 조용히 요구합니다.

본문 한눈에

  1. 1-2절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시작합니다. 산이 생기기 전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 계셨고, 그분이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다는 고백이 시 전체의 바닥입니다.
  2. 3-6절은 그 영원 앞에 인생을 세웁니다. 티끌로 돌아가는 사람, 밤의 한 순간 같은 천 년, 아침에 돋았다가 저녁에 마르는 풀이 이어집니다.
  3. 7-11절은 이 시편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입니다. 인생이 짧은 것은 그저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진노 아래 있기 때문이며, 우리의 죄악과 은밀한 죄가 주의 얼굴 빛 앞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칠십, 강건하면 팔십이라는 말도 여기에 있습니다.
  4. 12절은 시의 경첩입니다. 앞의 열한 절을 다 통과한 뒤에야 우리 날을 계수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는 기도가 나오고, 그 목적은 효율이 아니라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5. 13-17절은 연이은 청원입니다. 돌아오소서, 아침에 인자하심으로 만족하게 하소서, 괴롭게 하신 날수만큼 기쁘게 하소서, 우리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는 탄식이 아니라 이 기도로 닫힙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영원하신 하나님과 풀 같은 인생 (1-6절을 축으로)

하나님의 영원과 사람의 유한을 나란히 세우는 방향입니다. 인생의 짧음을 말하는 설교는 흔하지만, 이 시편은 짧음을 먼저 말하지 않고 거처 되시는 하나님을 먼저 말한다는 점을 살리면 회중이 위로부터 자기 삶을 보게 됩니다. 이 길은 7-11절과 13-17절을 뒤에 반드시 붙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설교로 끝날 위험이 있습니다.

진노 아래의 죽음, 그리고 돌아오시는 하나님 (7-11절과 13절)

죽음이 중립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죄와 진노의 결과라는 본문의 주장을 정면으로 다루는 방향입니다. 이 길은 창세기 3장과 로마서 5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13절의 돌아오소서라는 청원이 왜 절박한지를 설명해 줍니다. 대가는 분명합니다. 회중이 듣기 힘든 절을 읽어야 하고, 진노를 말한 만큼 그리스도 안에서 그 진노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같은 설교 안에서 말씀하셔야 합니다.

기도로 끝나는 시편 (12-17절을 축으로)

12절의 지혜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지혜가 13-17절의 어떤 기도로 이어지는지를 따라가는 방향입니다. 날을 계수하는 사람은 계획표를 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시라고, 아침에 인자하심으로 만족하게 해 달라고, 손이 하는 일을 견고하게 해 달라고 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이 길의 요지입니다. 이 길을 택하면 설교의 끝이 곧 회중의 기도가 되어야 하므로, 마무리를 권면이 아니라 청원의 모양으로 다듬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7-11절을 건너뛰고 12절로 직행하는 설교

인생이 짧으니 소중히 살자는 메시지는 이 본문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본문은 인생이 짧은 이유를 진노와 죄악에서 찾는데, 이 대목을 읽지 않으면 시편 90편은 세상의 어떤 격언과도 구별되지 않게 됩니다. 어려운 절을 다루어야 13절의 돌아오소서가 복음으로 들리고, 그리스도가 설교에 들어올 자리가 생깁니다.

날을 계수함을 시간 관리로 바꾸는 설교

12절은 신년 설교에서 자주 목표 설정과 시간 활용의 권면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나 본문이 구하는 것은 지혜로운 마음이고, 그 지혜의 내용은 바로 뒤의 기도들입니다. 계수함이 달력과 계획표의 이야기가 되면 회중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법이 아니라 한 해를 더 알차게 쓰는 법을 듣고 돌아갑니다.

표제와 예화가 본문을 삼키는 설교

표제의 모세의 기도라는 말에서 광야 세대의 죽음을 길게 재구성하다가 정작 시편 본문은 몇 절 읽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병상과 장례, 지난 한 해의 회고 예화도 마찬가지로 강력해서, 예화가 끝난 뒤 회중이 기억하는 것이 본문이 아니라 이야기가 되기 쉽습니다. 특히 13-17절의 청원은 예화 뒤에 남는 시간 안에서 다루어지지 못하고 자주 사라집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설교의 첫 삼 분이 무엇으로 시작되었는지 녹음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본문처럼 하나님의 영원과 거처 되심으로 시작하셨는지, 아니면 인생의 짧음이나 지난 한 해의 회고 예화로 시작하셨는지요.
  2. 7-11절, 곧 진노와 죄악과 은밀한 죄를 말하는 대목을 설교 안에서 실제로 몇 번 언급하셨는지 세어 보십시오. 한 번도 없다면 12절로 곧장 건너뛰신 것이고, 있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 문장을 녹취록에서 찾을 수 있는지요.
  3. 12절의 지혜로운 마음을 설교에서 무엇이라고 정의하셨는지, 그 정의가 담긴 문장을 녹취록에서 그대로 찾아낼 수 있는지요. 찾을 수 없다면 회중은 각자의 뜻으로 지혜를 채워 넣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4. 13-17절의 청원 다섯 가지, 곧 돌아오소서, 아침에 만족하게 하소서, 괴롭게 하신 날수만큼 기쁘게 하소서, 주의 행사를 보이소서,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가운데 몇 개가 설교의 마지막 오 분 안에 등장했는지요.
  5.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처음 나온 지점이 설교 몇 분째였는지, 그리고 그때 본문의 어느 절과 이어져 나왔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마무리 기도에서만 처음 나왔다면 본문의 진노와 죽음은 복음 없이 남겨진 것입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시간을 아끼며 살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자 정도로 끝납니다.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음 주일까지 성도가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착지한 적용은 본문의 기도를 성도의 입에 실제로 올리게 하거나, 자기 날을 실제 숫자로 세어 보게 하거나, 자기 손이 하는 일 하나를 지목해서 하나님께 가져가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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