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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20-40

열왕기상 18장 설교 — 갈멜산,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에게

갈멜산은 한국 강단에서 가장 자주 오르는 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이 내리는 장면이 워낙 선명해서, 설교자는 그 불빛에 기대어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지나치기 쉽습니다. 이 본문이 설교자에게 조용히 요구하는 것은, 회중을 엘리야 자리에 세우기 전에 먼저 21절의 머뭇거리는 백성 자리에 세우는 일입니다.

본문 한눈에

  1. 엘리야는 아합의 소집으로 온 이스라엘과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산에 모으고, 21절에서 백성에게 언제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겠느냐고 묻지만 백성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2. 22-24절에서 엘리야는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라는 시험 조건을 내걸고, 백성은 이 말에는 좋다고 답합니다.
  3. 26-29절에서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 제사 때까지 부르짖고 뛰놀고 몸을 상하게 하지만 아무 소리도 응답도 없고, 그 사이 엘리야의 조롱이 끼어듭니다.
  4. 30-35절에서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열두 지파의 돌로 다시 쌓고 물을 세 번 붓게 하며, 36-37절의 짧은 기도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심과 백성의 마음을 돌이키심을 구합니다.
  5. 38-39절에서 불이 내려 제물과 물까지 삼키자 백성은 엎드려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40절에서 바알 선지자들은 기손 시내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머뭇거림에서 고백으로 — 21절과 39절 사이

본문의 앞뒤를 묶는 것은 백성입니다. 21절에서 침묵하던 이들이 39절에서 엎드려 고백하는데, 그 사이를 움직인 것은 백성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이 방향은 회중이 지금 어디에서 머뭇거리는지를 정직하게 짚어야 하고, 그 머뭇거림을 꾸짖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먼저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보이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일 — 30-35절

불이 내리기 전에 엘리야는 백성을 가까이 오게 하고 무너진 제단을 열두 돌로 다시 쌓습니다. 분열된 왕국 시대에 열두 지파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는 것은 그 자체로 언약을 향한 선언입니다. 이 방향은 예배의 회복을 말하기 좋지만, 제단 쌓기가 응답의 조건이나 공로로 들리지 않도록 36-37절의 기도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주도권에 걸려 있음을 함께 보여야 합니다.

짧은 기도와 긴 부르짖음 — 26-29절과 36-37절의 대비

바알 선지자들은 하루 종일 소리를 높이고 몸을 상하게 하지만 엘리야의 기도는 두 절에 그칩니다. 본문은 기도의 길이나 열심이 아니라 누구에게 드리느냐가 응답을 가른다고 말합니다. 이 방향은 회중의 기도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지만, 열심 자체를 조롱하는 쪽으로 미끄러지면 오히려 간절히 기도해 온 성도를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조롱의 대상은 열심이 아니라 응답 없는 대상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회중을 처음부터 엘리야 자리에 세우는 것

본문에서 회중과 가장 가까운 인물은 엘리야가 아니라 21절의 침묵하는 백성입니다. 설교가 처음부터 담대한 엘리야가 되라고 권면하면,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성도는 자기 자리를 본문에서 찾지 못하고 설교를 남의 이야기로 듣게 됩니다. 엘리야의 담대함은 백성의 머뭇거림을 먼저 정직하게 짚은 뒤에야 설득력을 갖습니다.

40절을 건너뛰거나 가볍게 넘기는 것

바알 선지자들이 기손 시내에서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불편하지만 본문의 일부입니다. 이 절을 읽지 않거나 한 문장으로 지나가면 회중은 설교자가 성경을 고른다고 느끼고, 반대로 이 절을 오늘의 원수 갚음으로 곧장 옮기면 본문이 감당하지 못하는 무게를 지게 됩니다. 언약 백성 안에서 우상 숭배가 얼마나 무거운 일이었는지를 그 시대의 자리에서 말하고, 오늘의 적용은 십자가를 거쳐 오도록 하는 정직한 몇 문장이 필요합니다.

불이 내리는 장면이 설교를 삼키는 것

38절은 극적이어서 예화와 목소리가 여기에 집중되기 쉽고, 그러면 설교가 기적 체험을 약속하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러나 37절의 기도가 구한 것은 불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이 돌이키는 것이었고, 불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불이 내려도 마음이 돌이키지 않은 아합과 이세벨이 19장에 그대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이 본문의 후렴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설교의 처음 5분 안에 회중을 어느 인물의 자리에 세우셨는지요. 녹취록에서 엘리야가 되라는 권면이 먼저 나왔는지, 21절의 머뭇거리는 백성이 먼저 나왔는지 순서를 확인해 보십시오.
  2. 21절의 머뭇거림을 오늘의 무엇으로 이름 붙이셨는지요. 녹취록에서 그 머뭇거림이 실제 생활의 한 장면으로 구체화된 곳이 있는지, 아니면 세상과 하나님 사이라는 일반적인 말에 머물렀는지 세어 보십시오.
  3. 40절을 읽으셨는지, 읽으셨다면 몇 문장으로 다루셨는지요. 그리고 그 문장들이 그 시대의 언약과 우상 숭배를 말했는지, 오늘의 특정 집단을 겨누는 말로 들릴 여지가 있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4. 36-37절의 기도를 설교에서 얼마나 다루셨는지요. 38절의 불 장면과 37절의 기도 내용에 각각 쓰신 시간을 견주어 보시고, 백성의 마음이 돌이키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었다는 점이 한 번이라도 명시되었는지 보십시오.
  5. 바알 선지자들의 열심을 언급하실 때 조롱의 대상이 열심 그 자체였는지, 응답하지 못하는 대상이었는지요. 녹취록에서 회중의 웃음이 나온 자리가 있다면 그 웃음이 무엇을 향했는지 되짚어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은 결단하라는 말로 끝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단하라는 말은 방향이지 행동이 아니고, 회중은 강단을 내려가면서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지 여전히 모릅니다. 착지한 적용은 21절의 두 사이라는 자리를 각 성도의 이번 주 생활 가운데 한 지점으로 좁히고, 그 지점에서 이번 주에 실제로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손에 쥐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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