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4:14-24
여호수아 24장 설교 — 세겜의 선택, 그리고 여호수아가 거절한 첫 대답
여호수아 24:15은 가정 예배와 헌신 예배, 새해와 임직식에서 가장 자주 불려 나오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결단을 촉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백성이 결단하자마자 여호수아가 그 대답을 물리치는 장면(19절)을 품고 있어서, 설교자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회중이 「예」라고 답한 뒤에 강단이 무엇을 더 말할 것인지를. Preaching Lab은 그 설교를 녹음으로 다시 들으실 때 이 페이지의 다섯 질문을 곁에 두시기를 권합니다.
본문 한눈에
- 본문은 1-13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부터 가나안 정착까지를 일인칭으로 회고하신 직후에 시작되며, 14절의 「그러므로」는 그 은혜의 역사 위에 선 요청입니다.
- 14-15절에서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섬기라 하되, 그것이 싫거든 강 저편의 신이든 아모리 족속의 신이든 오늘 택하라고 하며 선택을 백성 앞에 실제로 열어 놓고, 자기 집의 결단을 먼저 밝힙니다.
- 16-18절에서 백성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스스로 열거하며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답하고, 그 대답은 신학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 19-20절에서 여호수아는 뜻밖에도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 하며 하나님의 거룩과 질투, 배반의 결과를 말하고, 백성은 21절에서 다시 「아니니이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 22-24절에서 여호수아는 백성을 스스로에 대한 증인으로 세우고,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라 명하며, 백성은 세 번째로 순종을 서약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은혜가 앞서고 선택이 뒤따른다
14절의 「그러므로」에 무게를 두고, 1-13절의 하나님 독백이 없었다면 15절의 선택도 없다는 순서를 드러내는 방향입니다. 선택은 은혜를 얻는 조건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이 선명해집니다. 다만 이 방향을 택하시면 설교 시간의 상당 부분을 본문 앞 단락에 써야 하고, 회중이 이미 외우고 있는 15절이 설교의 결론이 아니라 중간 지점이 되어야 하므로 구성에 품이 듭니다.
여호수아가 「예」를 물리친 이유
19절을 설교의 중심에 두는 방향입니다. 백성의 첫 대답은 틀린 데가 없었는데도 여호수아는 그것을 받지 않았고,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서 인간의 결단이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를 먼저 듣게 했습니다. 이 방향은 결단의 진지함을 회복시키지만, 설교자가 19절을 「그래도 우리는 할 수 있다」로 서둘러 뒤집지 않고 그 무게를 회중이 견디게 두는 인내를 요구합니다.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은혜가 결단 안에서 어떻게 만나는지는 전통마다 강조점이 다르므로, 한쪽 표현을 유일한 답처럼 말하지 않는 조심도 필요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
23절을 축으로 삼는 방향입니다. 세 번이나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서약한 백성에게 여호수아는 이방 신을 버리라고 말하는데, 그 신들은 강 저편이나 애굽이 아니라 「너희 중에」 있었습니다. 고백과 소유 사이의 간격이 이 본문의 마지막 긴장이며, 설교자는 그 간격을 회중 각자의 집 안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이 방향의 비용은 구체성입니다. 우상을 「돈, 명예, 자녀」로 뭉뚱그리면 아무도 자기 것으로 듣지 않기 때문에, 이 회중에게 실제로 있는 것을 이름 붙일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15절에서 멈추는 설교
「오직 나와 내 집은」에서 설교를 사실상 끝내고 19-24절은 낭독으로만 지나가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그러면 본문이 여호수아 개인의 결단 간증이 되고, 백성의 세 번 서약과 여호수아의 거절이라는 본문의 실제 드라마가 사라집니다. 15절은 본문 안에서 시작에 가깝지 결론이 아닙니다.
선택을 은혜와 떼어 놓는 설교
「하나님은 너를 택하셨으니 이제 네가 택할 차례」라는 구도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1-13절과 14절의 「그러므로」를 잘라 내면 결단이 곧 조건이 되어 버립니다. 회중은 결단하지 못하는 자기를 정죄하거나 결단한 자기를 신뢰하게 되는데, 19절은 바로 그 두 번째 위험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회고가 설교의 서론용 배경이 아니라 결단의 근거로 실제로 들리는지 살피실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 예배 본문으로만 좁히는 설교
15절의 「내 집」 때문에 이 본문은 가정의 달과 가정 헌신 예배에 자주 쓰이지만, 세겜에 모인 것은 한 가정이 아니라 온 지파이고 서약의 주체도 백성 전체입니다. 가정 신앙 교육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를 얹으면 본문에 없는 내용이 설교의 절반을 차지하기 쉽습니다. 가정을 말씀하시더라도 그것이 공동체 전체의 언약 갱신 안에 놓여 있음을 잃지 않으셔야 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녹음에서 19절(「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을 읽거나 언급한 시각이 있는지, 있다면 그 뒤에 몇 문장을 머물렀는지, 아니면 곧바로 15절이나 결단 촉구로 돌아갔는지 확인해 보셨는지요.
- 14절의 「그러므로」 또는 1-13절의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설교 안에서 몇 번, 어느 대지에서 언급하셨는지 세어 보시고, 그것이 서론에서만 나오고 결단을 촉구하는 결론부에서는 사라졌는지 살펴보셨는지요.
- 백성이 16-18절, 21절, 24절에서 세 번 답한 것을 설교에서 세 번으로 다루셨는지, 아니면 한 번의 결단으로 뭉뚱그리셨는지, 그리고 여호수아가 첫 대답을 받지 않은 이유를 회중이 들을 수 있는 문장으로 말씀하셨는지요.
- 23절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오늘 회중에게 적용하실 때 실제로 이름 붙인 것이 무엇이었는지 녹취록에서 찾아보시고, 그것이 「돈, 세상, 우상」 같은 범주어였는지 이 회중이 자기 집에서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었는지요.
- 「선택」 「결단」 「택하라」라는 말을 몇 번 쓰셨는지 세어 보시고, 그 가운데 몇 번이 「무엇을 어떻게」와 연결되었는지, 몇 번이 그 말 자체로 끝났는지 구분해 보셨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오늘 여호와를 택하십시오」 「가정에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이며, 회중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세겜의 백성처럼 「예」라고만 하고 돌아갑니다. 착지한 적용은 23절이 하는 일을 그대로 합니다. 이미 고백한 사람에게 아직 집에 남아 있는 것 하나를 이번 주에 치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가 작을수록, 그리고 다음 주일 전에 끝낼 수 있을수록 본문에 가깝습니다.
- 이번 주 하루를 정해 집 안에서 하나님보다 먼저 손이 가는 물건이나 습관 하나를 종이에 적어 보고, 그것을 한 주 동안 눈에 보이는 자리에서 치워 두십시오.
- 가족이나 가까운 성도 한 사람에게 22절처럼 증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며, 이번 주에 바꾸기로 한 한 가지를 말로 알리고 다음 주일에 어땠는지 물어 달라고 하십시오.
- 1-13절을 본떠, 하나님이 나와 내 집에 하신 일을 다섯 가지만 날짜와 함께 적어 두고, 그 목록을 다 쓴 뒤에야 15절의 결단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이 설교 녹음으로 리포트 받기Preaching Lab 이 무엇인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