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식 · 로마서 6:1-11 · 마태복음 28:18-20 · 사도행전 8:26-40 · 골로새서 2:11-15
세례식 설교 —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표
세례식은 설교자가 본문만이 아니라 회중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함께 설교하는 날입니다. 물이 뿌려지거나 몸이 잠기는 그 짧은 순간이 예배의 중심이 되기 쉽고, 그래서 설교는 그 순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말해 주는 자리로 물러서야 합니다. 이 날 강단에 조용히 요구되는 것은, 세례를 받는 사람을 칭찬하는 일도 세례의 교리를 다 정리하는 일도 아니라, 세례가 붙들고 있는 복음을 회중 전체가 자기 것으로 다시 듣게 하는 일입니다.
본문 한눈에
- 로마서 6:1-11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사건으로 말하며, 3-4절의 함께 장사되고 함께 살아난다는 진술이 11절의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기라는 명령의 근거가 됩니다.
- 마태복음 28:18-20은 세례를 제자 삼는 명령 안에 두어, 세례가 개인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고 가르침과 순종으로 이어지는 시작임을 보여 줍니다.
- 사도행전 8:26-40은 말씀을 듣고 이해한 사람이 물을 보고 세례를 청하는 장면으로, 세례가 복음 이해의 열매이고 그 뒤에 기쁨이 따른다는 것을 서사로 말합니다.
- 골로새서 2:11-15는 세례를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와 나란히 놓고, 12절에서 세례 안에서 함께 장사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말하며, 13-15절에서 그 근거를 십자가에 둡니다.
- 이 날 강단에 요구되는 것은 세례식이라는 예식이 회중 모두에게 이미 일어난 일과 지금 요구되는 일을 함께 상기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연합의 설교 — 로마서 6장을 따라 죽음과 부활을 말하기
세례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설교하는 길입니다. 3-5절에서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11절과 12절에서 그것이 오늘 죄에 대해 어떻게 서는가로 이어집니다. 이 길은 설교자가 1절의 질문, 곧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물음을 회중이 실제로 갖는 물음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것을 요구합니다. 그 물음을 건너뛰면 6장은 도덕 훈계로 내려앉습니다.
제자도의 설교 — 마태복음 28장을 따라 세례를 시작으로 놓기
세례를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으로 설교하는 길입니다. 19-20절에서 세례와 가르침이 한 명령 안에 있음을 보이고, 세례 받는 성도에게도 회중에게도 이 뒤에 오는 삶을 말합니다. 이 길이 요구하는 것은 20절의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명령의 무게만큼 크게 다루는 것입니다. 약속이 빠지면 세례식이 서약식이 되고, 회중은 격려 대신 부담을 안고 돌아갑니다.
이야기의 설교 — 사도행전 8장을 따라 한 사람의 길을 걷기
에디오피아 관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세례가 어떻게 말씀에서 물로, 물에서 기쁨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길입니다. 세례 받는 성도의 여정과 자연스럽게 맞물리고, 회중이 자기 세례를 떠올리게 하기 좋습니다. 이 길의 대가는 절제입니다. 이야기가 좋아서 이사야 53장 본문을 읽던 관리보다 이야기 자체가 앞서면, 세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흐려지고 감동만 남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세례 받는 사람이 본문을 대신하는 것
세례 받는 성도의 간증과 사연이 설교의 몸통이 되고 본문은 서두에서 한 번 읽히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귀하지만, 로마서 6장이나 골로새서 2장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말합니다. 설교의 중심 문장이 사람 이름으로 시작하는지 그리스도로 시작하는지를 미리 살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교파 간 갈림길을 한쪽으로 결론짓고 지나가는 것
유아세례와 신자의 세례, 침수와 살수, 성례와 의식이라는 이해는 교단마다 다르고, 각각 진지한 성경 해석 위에 서 있습니다. 세례식 설교에서 다른 전통을 가볍게 지적하거나 자기 교단의 관행을 본문이 명령하는 유일한 방식처럼 말하면, 회중 가운데 다른 배경에서 온 성도가 그 자리에서 마음을 닫습니다. 자기 교단의 이해를 분명히 말하되 그것이 하나의 이해라는 것을 회중이 알게 하시는 편이 본문에도 정직합니다.
세례를 회중과 무관한 예식으로 두는 것
설교가 오늘 세례 받는 몇 사람에게만 말하고, 이미 세례 받은 회중은 구경하는 자리에 남는 경우입니다. 로마서 6:3의 우리가 알지 못하느냐는 물음은 회중 전체를 향합니다. 세례를 오래전에 받은 성도에게 그 세례가 오늘 무엇을 요구하는지 말하지 않으면, 본문의 절반이 설교되지 않은 것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설교 본문에서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진술한 문장(죽으셨다, 장사되셨다, 살아나셨다, 십자가에서 이루셨다)이 몇 번 나왔고, 세례 받는 사람이나 회중이 해야 할 일을 진술한 문장이 몇 번 나왔는지요. 앞의 것이 뒤의 것보다 먼저 나왔는지요.
- 로마서 6:1의 물음, 곧 은혜가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물음을 설교에서 실제 물음으로 다루셨는지요. 다루셨다면 녹음의 몇 분 지점이고, 그 물음에 본문의 어느 절로 답하셨는지요.
- 세례를 받는 사람의 이름이 설교에서 몇 번 불렸고, 본문의 절 번호가 몇 번 불렸는지요. 세례 받는 사람의 사연에 쓴 시간과 본문을 풀어 말한 시간을 각각 몇 분으로 세어 보시면 어느 쪽이 설교의 몸통이었는지요.
- 이미 세례를 받은 회중에게 직접 말을 건 대목이 있었는지요. 있었다면 그 대목에서 회중이 자기 세례와 관련해 이번 주에 무엇을 하라고 들었는지 한 문장으로 옮겨 적을 수 있는지요.
- 세례의 방식이나 대상에 관해 다른 교단의 이해를 언급하신 대목이 있었다면, 그 대목을 다시 들으실 때 다른 전통에서 온 성도가 자기 신앙을 폄하당했다고 느낄 표현이 있었는지요. 없었다면 자기 교단의 이해를 말할 때 그것이 하나의 이해임을 밝히는 말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세례식 설교의 적용은 새 사람으로 살자, 세례의 은혜를 기억하자는 방향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방향은 맞지만 회중은 그것을 어디에 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돌아갑니다. 로마서 6:11의 여기라는 명령과 골로새서 2:12의 함께 장사되었다는 진술이 다음 주일 전에 손으로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로 내려올 때, 회중은 세례가 자기 것이었음을 몸으로 확인합니다.
- 자기 세례 날짜를 찾아 적어 두고, 이번 주 안에 가족이나 성도 한 사람에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 분만 이야기해 보시라고 청하십니다.
- 오늘 세례 받은 성도 가운데 한 사람을 정해 수요일 전에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묻고, 다음 주일 예배에 함께 앉기로 약속하시라고 청하십니다.
- 로마서 6:11-13을 집에서 소리 내어 한 번 읽고, 자기 지체 가운데 죄에 내어 주고 있는 습관 하나를 종이에 적어 이번 주에 그 한 가지를 멈추어 보시라고 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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