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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19

요한복음 21장 설교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장은 부활 이후 실패한 제자를 다시 세우시는 장면이라 목회자 위임식, 부활절 후 주일, 그리고 낙심한 성도가 많은 계절에 자주 강단에 오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조용히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세 번의 질문을 따뜻한 회복 이야기로만 풀고 18-19절의 십자가 예고를 뒤에 남겨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신 뒤 녹음을 놓고 아래 다섯 질문을 스스로 물어보시면, Preaching Lab 없이도 그 설교가 본문을 끝까지 따라갔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

본문 한눈에

  1. 1-3절에서 베드로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말하고 여섯 제자가 따라나서지만,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2. 4-8절에서 날이 밝을 때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시고, 오른편에 던지라는 말씀에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랑하시는 제자가 먼저 알아보고 베드로가 바다로 뛰어듭니다.
  3. 9-14절에서 예수께서는 이미 숯불과 떡과 생선을 준비해 두셨고, 153마리 물고기 앞에서 제자들과 조반을 나누시며 이것이 부활 후 세 번째 나타나심이라고 기록됩니다.
  4. 15-17절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하느냐를 세 번 물으시고, 세 번 양을 먹이고 치라고 맡기시며, 세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근심합니다.
  5. 18-19절에서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장차 남에게 이끌려 갈 것을 말씀하시고, 그것이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를 가리키신 뒤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숯불 곁의 회복

요한복음 18:18의 숯불 곁에서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다시 숯불 곁에서 세 번 사랑을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안에서 이 낱말이 이 두 곳에만 나온다는 것은 표준 주석들이 공통으로 짚는 사실이라, 본문이 스스로 그 연결을 열어 둔 셈입니다. 이 방향은 회중의 실패에 직접 닿지만, 회복을 위로로만 끝내지 않고 위임과 죽음의 예고까지 한 호흡으로 가져가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사랑이 사명보다 먼저

예수께서는 양을 먹일 능력이나 계획을 묻지 않으시고 오직 사랑하느냐를 물으신 뒤에야 양을 맡기십니다. 이 방향은 섬김의 근거가 은사나 성과가 아니라 예수를 향한 사랑임을 말하게 하며, 위임식이나 직분자 임직에 잘 맞습니다. 다만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목회자에게만 좁히면 회중 대부분이 관람석에 앉게 되므로,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를 설교자가 미리 정해 두셔야 합니다.

옛 자리로 돌아간 제자를 찾아오시는 주님

부활을 보고도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로 돌아가 밤새 빈 그물을 거둡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새벽에 바닷가에 서서 아침을 차려 두십니다. 이 방향은 신앙의 열정이 식은 성도, 다시 생업으로 돌아간 성도에게 말을 걸 수 있지만, 1-14절에 시간을 다 쓰고 15-19절을 급히 덧붙이는 구조가 되기 쉽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헬라어 두 낱말 구분에 설교를 얹는 것

15-17절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두 헬라어 낱말로 오간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고, 그것을 예수의 높은 사랑과 베드로의 낮은 사랑으로 풀어 설교 전체를 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표준 주석들은 요한이 이 장에서 양, 알다, 먹이다 같은 말도 비슷한 뜻의 낱말을 번갈아 쓴다는 점을 함께 짚으며, 두 낱말의 차이를 결정적으로 읽는 데 신중합니다. 그 구분을 언급하시더라도, 그것이 무너지면 설교도 무너지는 구조는 피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153마리 풀이가 본문을 삼키는 것

물고기 수 153을 두고 온갖 상징 풀이가 전해 내려오지만, 본문은 그 수의 뜻을 말하지 않고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사실만 덧붙입니다. 그 숫자에 몇 분을 쓰면 회중은 흥미를 느끼지만, 정작 세 번의 질문과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뒤로 밀립니다. 요한이 이 장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를 보면 그 숫자는 지나가는 자리이지 머무는 자리가 아닙니다.

17절에서 끝내고 18-19절을 남겨 두는 것

세 번째 위임에서 설교를 맺으면 회중은 회복과 사명의 따뜻한 결론을 안고 돌아가지만, 본문은 곧바로 베드로가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가 죽을 것을 말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이 예고 뒤에 놓여 있어서, 따름의 값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면 본문이 말한 것의 절반만 전한 셈이 됩니다. 어려운 두 절을 빼는 것이 아니라 그 두 절 때문에 앞의 회복이 얼마나 무거운 은혜인지가 드러나도록 순서를 지키시는 것이 본문에 가깝습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취록에서 요한복음 18:18의 숯불과 세 번 부인을 실제로 언급하신 자리가 있는지, 있다면 설교 몇 분 지점이었고 그것이 15-17절의 세 번 질문과 한 문장 안에서 연결되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2. 세 번의 질문을 하나로 뭉뚱그려 말씀하셨는지, 아니면 17절의 베드로가 근심한 것을 따로 다루셨는지 — 녹취록에서 근심, 세 번째, 17절 같은 말이 등장하는지 찾아보십시오.
  3. 18-19절을 강단에서 읽으셨는지, 읽으셨다면 그 두 절에 몇 문장을 쓰셨는지, 그리고 결론부에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실제로 등장했는지 세어 보십시오.
  4.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수신자를 목회자나 직분자로 한정해 말씀하신 횟수와 모든 성도에게 향한 말로 하신 횟수를 각각 세어, 회중 대다수가 그 말씀 안에 들어 있었는지 보십시오.
  5. 예화나 설교자 본인의 실패담에 쓰신 시간과 15-19절을 직접 설명하신 시간을 재어 어느 쪽이 길었는지, 그리고 그 예화가 본문의 어느 절로 다시 돌아왔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은 주님을 더 사랑하자, 맡겨진 양을 잘 돌보자에서 멈추기 쉬운데, 그것은 방향이지 행동이 아닙니다. 본문에는 바닷가에서 밥을 나누고, 이름을 불러 묻고, 구체적으로 양을 맡기는 장면이 있으므로 적용도 그 크기여야 회중이 다음 주일 전에 실제로 해 볼 수 있습니다. 설교를 다시 들으시며 적용 한 문장을 골라, 누가 언제 무엇을 하는지가 그 안에 다 들어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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