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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 고린도전서 15장 · 누가복음 24:1-12 · 요한복음 20:1-18 · 마가복음 16:1-8

부활절 설교 — 결말을 아는 회중을 다시 빈 무덤 앞에 세우는 일

부활절은 한 해 중 회중이 가장 많이 모이고, 설교자가 가장 익숙한 본문을 가장 낯설게 전해야 하는 주일입니다. 성도들은 이미 결말을 알고 앉아 있기에,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설교자가 무엇을 덧붙이는지가 더 크게 들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날 강단이 조용히 요구받는 것은 부활을 증명하거나 장식하는 일이 아니라, 회중을 그 아침의 사람들처럼 빈 무덤 앞에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본문 한눈에

  1. 부활절에 흔히 읽는 네 본문 가운데 복음서 셋은 부활 사건 자체를 묘사하지 않고, 빈 무덤과 그 앞에 선 사람들의 반응만을 묘사합니다.
  2. 마가복음 16:8은 두려움과 침묵으로 끝나고, 누가복음 24:11은 제자들이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적으며, 요한복음 20:9와 20:15는 제자들의 몰이해와 마리아가 주님을 동산지기로 오해한 장면을 그대로 둡니다.
  3. 고린도전서 15장만이 부활을 서술이 아니라 논증으로 다루며, 3-8절의 전승, 12-19절의 만일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가정, 20절의 첫 열매, 50-58절의 변화와 승리로 이어집니다.
  4. 그러므로 부활절 강단이 받는 요구는 부활을 봄의 새 생명에 빗대는 것도, 변증 자료로 증명하는 것도 아니라, 이 본문들이 담아 둔 놀람과 두려움과 믿기 어려움을 회중이 다시 겪게 한 뒤 그 자리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빈 무덤 앞에 선 사람들을 따라가는 길

복음서 본문을 택하셨다면 여인들, 베드로, 마리아, 그리고 믿지 않은 제자들의 반응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부활이 처음에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과 혼란으로 왔음을 보여 주는 방향입니다. 회중이 이미 아는 승리를 설교 앞부분에서 20분쯤 미루어 두는 인내가 필요하고, 결말을 서두르면 본문이 애써 남겨 둔 긴장이 사라집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 논증을 그대로 따라가는 길

고린도전서 15:12-19를 축으로, 부활이 신앙 전체의 무게를 실제로 지탱하고 있음을 단계별로 보이는 방향입니다. 절 번호를 짚어 가며 회중이 논리를 따라올 수 있게 해야 하고, 추상에 머물지 않도록 20절의 첫 열매와 58절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결론으로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목회적 위로의 길

요한복음 20장의 울고 있는 마리아와 고린도전서 15:50-58의 마지막 나팔을 붙들고, 올해 상을 당한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전하는 방향입니다. 다만 위로가 본문의 몸의 부활에서 벗어나 막연한 영혼 불멸이나 좋은 곳에 계신다는 말로 흐르지 않도록 지켜야 하며, 부활의 몸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통마다 강조가 다르므로 본문이 말하는 데까지만 말씀하시는 절제가 요구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봄과 새싹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는 경우

나비, 새싹, 겨울 뒤의 봄 같은 예화는 부활을 자연의 순환으로 바꾸어 놓기 쉽습니다. 고린도전서 15:20의 첫 열매는 농사 비유이지만 계절이 돌아온다는 뜻이 아니라 수확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며, 본문이 말하는 부활은 반복되는 현상이 아니라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화 뒤에 본문 절로 돌아오는 문장이 없으면 회중은 예화만 가지고 돌아갑니다.

어려운 절을 건너뛰는 경우

마가복음 16:8의 두려움과 침묵, 누가복음 24:11의 불신, 요한복음 20:9의 아직 알지 못함은 부활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자주 생략됩니다. 그런데 이 절들을 건너뛰면 설교가 회중 가운데 실제로 앉아 있는 의심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합니다. 마가복음을 택하셨다면 9-20절의 긴 결말을 어떻게 다룰지도 미리 정해 두셔야 합니다. 이를 정경으로 읽는 전통과 8절에서 멈추는 전통이 모두 있으므로, 강단에서 어느 한쪽을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본인 교회의 입장을 한 문장으로 밝히고 지나가는 편이 안전합니다.

증명하거나 녹이느라 선포가 사라지는 경우

한쪽에서는 빈 무덤의 증거 자료가 설교를 채우고 정작 그가 살아나셨다는 선포와 회중을 향한 요구가 빠지고, 반대쪽에서는 부활이 마음속의 새 출발이나 다시 일어서는 용기로 녹아 사건성이 사라집니다. 둘 다 본문이 하는 일, 곧 실제로 일어난 일을 알리고 가서 전하라고 명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부활을 우리도 다시 일어납시다라는 도덕적 권면으로 끝내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미끄러집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취록에서 부활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진술한 문장과, 마음의 변화나 새 출발이나 희망의 상징으로 진술한 문장을 각각 세어 보십시오. 어느 쪽이 더 많았는지요.
  2. 마가복음 16:8, 누가복음 24:11, 요한복음 20:9 가운데 본문에 든 두려움과 불신과 몰이해의 절을 설교 몇 분 몇 초에 다루셨는지 찾아보십시오. 한 번도 읽지 않고 지나가셨다면 그 자리는 어디였는지요.
  3. 자연과 계절과 나비와 새싹 예화가 몇 번 나왔고, 그 예화가 끝난 뒤 본문 절 번호로 돌아오는 문장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4.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선포 문장이 설교 안에서 몇 번, 어디에서 나왔는지 표시해 보십시오. 서론에서 한 번뿐이었는지, 결론에도 있었는지, 그리고 부활의 증거를 설명하는 데 쓴 시간과 선포하는 데 쓴 시간이 각각 몇 분이었는지요.
  5. 설교 마지막 5분에서 회중에게 요구하신 행동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어 보십시오. 부활의 소망으로 삽시다처럼 방향만 있었는지, 아니면 이번 주 안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이름 붙어 있었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부활절 적용은 부활의 소망으로 살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처럼 방향만 있고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문장으로 끝나기 쉽습니다. 착지한 적용은 본문 안에 이미 있는 동작을 따릅니다. 마가복음 16:7과 요한복음 20:17은 가서 전하라고 명하고, 누가복음 24:1의 여인들은 무덤으로 걸어갔으며, 고린도전서 15:58은 수고가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동작을 회중 한 사람이 다음 주일 전에 할 수 있는 크기로 줄여 이름을 붙이는 것이 설교자의 마지막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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