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3:19-33
예레미야애가 3장 설교 — 폐허 한가운데서 꺼내는 「주의 성실하심」
예레미야애가 3:22-23은 새해 첫 주일과 장례, 그리고 교회가 큰 상실을 지난 뒤에 자주 읽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루살렘이 불타고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서 나온 고백이고, 19-20절의 쓴 기억과 28-30절의 침묵과 뺨을 대는 말씀이 앞뒤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위로를 서두르지 말 것을 조용히 요구하며, Preaching Lab 은 설교를 마치신 뒤 그 요구를 실제로 지키셨는지 녹음으로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본문 한눈에
- 19-20절에서 화자는 고난과 쓴 것을 잊지 못하고, 그 기억 때문에 마음이 꺾여 있다고 말합니다.
- 21절이 경첩입니다. 상황이 바뀐 것이 아니라 화자가 무엇을 마음에 되새길지를 바꾸고, 그래서 소망이 생깁니다.
- 22-24절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끝나지 않았고 아침마다 새로우며, 그분이 나의 기업이라는 고백입니다.
- 25-27절은 기다림과 잠잠함, 그리고 젊었을 때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소망을 곧바로 일상의 자세로 바꿉니다.
- 28-33절은 홀로 앉아 입을 티끌에 대고 뺨을 내어 주는 낮은 자리를 그리면서도, 주께서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 본심으로 고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데서 마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21절의 전환 — 상황이 아니라 되새김이 바뀌었다
본문의 힘은 19-20절과 22절 사이에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성벽은 여전히 무너져 있고 화자가 바꾼 것은 마음에 두는 내용뿐입니다. 이 방향은 회중에게 정직합니다만, 설교자가 21절에서 정말로 멈춰 서서 「무엇을 되새길 것인가」를 본문의 언어로 풀어야 하고, 그것이 긍정적 사고와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침마다 새로운 인자 — 하루치 은혜의 신학
23절은 인자와 긍휼을 한꺼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로 받는 것으로 그립니다. 광야의 만나처럼, 오늘 분량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방향은 위로가 크지만, 22-23절만 떼어 내면 본문이 아니라 찬송가 가사를 설교하게 됩니다. 19-20절의 쓴 기억을 먼저 회중 앞에 세워야 23절이 값을 얻습니다.
잠잠히 기다림과 멍에 — 소망이 몸으로 나타나는 자리
25-30절은 소망을 감정이 아니라 자세로 그립니다. 기다리고, 홀로 앉고, 입을 티끌에 대고, 뺨을 내어 줍니다. 이 방향은 본문을 24절에서 끝내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는 정직한 길입니다. 다만 27절의 멍에와 30절의 뺨을 고난 미화로 듣지 않게 하려면, 31-33절의 「본심이 아니시라」를 반드시 함께 세워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22-23절만 떼어 내고 19-20절을 건너뜀
이 본문은 새해나 감사절에 자주 쓰이다 보니, 쓴 것과 쓸개를 기억하는 19-20절을 인사말 정도로 지나치고 곧장 아침마다 새로운 인자로 가는 설교가 많습니다. 그러면 회중 가운데 지금 19절에 앉아 있는 분들은 자기 자리가 본문에 없다고 느낍니다. 화자가 잊지 못한다고 말한 것을 설교자가 먼저 잊으면 안 됩니다.
「본심이 아니시라」를 고난의 원인 설명으로 바꿈
33절은 하나님이 고통을 즐기지 않으신다는 고백이지, 회중의 개별 고난이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하는 공식이 아닙니다. 이 구절로 「모든 고난은 훈련이다」 혹은 「하나님이 다 계획하신 것이다」를 세우면, 애가라는 장르 자체가 허용하는 탄식의 자리를 설교자가 닫아 버리게 됩니다. 섭리를 어떻게 말할지는 전통마다 강조가 다르니, 본문이 말하는 만큼만 말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예화가 예루살렘의 폐허를 대신함
이 본문은 국가와 성전이 무너진 집단적 재앙에서 나온 고백인데, 설교가 개인의 실직이나 질병 예화 하나로 무게중심을 옮기면 본문의 규모가 사라집니다. 예화는 필요하지만, 회중이 설교를 마친 뒤 기억하는 것이 예화의 주인공인지 21절의 전환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예화가 길어질수록 본문은 짧아집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설교에서 19-20절의 쓴 기억을 다루는 데 실제로 몇 분을 쓰셨고, 22-23절로 넘어가기 전에 회중이 그 자리에 머물 시간을 주셨는지요. 녹음에서 그 지점의 시각을 찍어 보시면 됩니다.
- 21절의 전환, 곧 상황이 아니라 되새기는 내용이 바뀌었다는 점을 설교자의 말로 분명히 한 문장이 있었는지요. 있었다면 그 문장을 녹취록에서 그대로 옮겨 적어 보십시오.
- 27-30절의 멍에와 뺨과 티끌을 설교에서 실제로 읽거나 언급하셨는지, 아니면 24절이나 26절에서 본문 낭독과 강해가 사실상 끝났는지요.
- 33절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이 고통을 즐기지 않으신다」는 본문의 범위 안에 머무셨는지, 아니면 회중의 고난이 왜 왔는지를 설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셨는지요. 그 대목의 문장들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 예화에 쓴 시간과 본문 구절을 직접 풀이한 시간을 각각 재어 보셨을 때, 어느 쪽이 길었는지요. 그리고 예화가 끝난 뒤 본문의 어느 절로 돌아오셨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어려워도 소망을 잃지 맙시다」나 「주의 성실하심을 믿읍시다」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회중이 월요일 아침에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본문 자체가 21절에서 「마음에 되새긴다」는 구체적 행위를, 23절에서 「아침마다」라는 구체적 시간을, 28절에서 「홀로 앉는다」는 구체적 자세를 주고 있으니, 적용도 그만큼 구체적일 수 있습니다.
- 이번 주 매일 아침 눈을 뜬 뒤 첫 일을 시작하기 전에 22-23절을 한 번 소리 내어 읽고, 그날 새로 받은 것 하나를 짧게 적어 두십시오.
- 19-20절처럼 잊히지 않는 쓴 기억 하나를 종이에 적고, 그 아래에 21절을 따라 「그럼에도 내가 마음에 되새길 것」을 한 줄로 써서 성경에 끼워 두십시오.
- 28절의 「홀로 앉아 잠잠함」을 따라, 이번 주 하루 십오 분을 정해 손전화를 끄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주 앞에 앉아 계셔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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