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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 성금요일 · 이사야 53장 · 누가복음 23:26-49 · 요한복음 19:16-30 · 마가복음 15:33-39

고난주간 설교 — 십자가 앞에서 서둘러 부활로 건너가지 않는 설교

고난주간과 성금요일은 교회력에서 가장 무거운 날이고, 설교자가 가장 절제해야 하는 날입니다. 십자가 본문은 설교자에게 감정을 끌어올리라고 하지 않고,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러 달라고 조용히 요구합니다. 그렇게 절제한 설교였는지 스스로 확인하기가 어렵기에, 설교 녹음을 놓고 되짚어 보는 도구로 Preaching Lab이 쓰이기도 합니다.

본문 한눈에

  1. 네 본문은 저마다 다른 눈으로 십자가를 봅니다. 이사야 53장은 사건이 있기 오래 전에 고난받는 종을 노래하고, 세 복음서는 사건을 목격한 자리에서 각각 다른 순간을 붙듭니다.
  2. 이사야 53장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그가 대신 졌다는 대속의 논리를 가장 또렷하게 세우면서도, 그 종이 누구인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복음서와 이어 읽을 때 비로소 그 얼굴이 드러납니다.
  3. 누가복음 23장은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구레네 시몬, 우는 여인들, 두 강도, 백부장. 누가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용서와 위탁의 기도로 기록합니다.
  4. 요한복음 19장은 십자가 위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그립니다. 어머니를 맡기시고, 목마르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며 스스로 영혼을 내어 주십니다.
  5. 마가복음 15장은 가장 어두운 순간을 남깁니다. 정오의 어둠, 버림받음의 부르짖음, 찢어진 휘장, 그리고 이방인 백부장의 고백. 이 날의 강단은 이 어둠을 지나가지 않고 그 안에 서 있어야 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대속 — 그가 대신 지셨다는 것

이사야 53:4-6을 축으로 십자가가 우리 죄를 대신 지신 사건이라는 것을 설교하는 길입니다. 가장 전통적이고 안전한 방향이지만, 이 대지를 세우려면 설교자가 죄를 추상 명사가 아니라 회중이 알아볼 수 있는 구체적 실체로 말해야 합니다. 죄가 흐릿하면 대속도 흐릿해집니다.

십자가 주변의 얼굴들 — 누가 어디에 서 있었는가

누가복음 23장의 인물들, 곧 억지로 십자가를 진 시몬, 조롱하는 자들, 회개한 강도, 멀리 서서 본 사람들을 따라가며 회중에게 자기 자리를 묻는 길입니다. 이 방향은 회중이 본문 안에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지만, 인물 묘사가 예수님을 가리는 순간 설교는 인물 소묘가 되고 십자가는 배경이 됩니다. 각 인물이 결국 예수님께로 시선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버림받음과 찢어진 휘장 — 어둠 한가운데서 열린 길

마가복음 15:33-39를 축으로 예수님의 부르짖음(시편 22:1의 인용)과 휘장이 찢어진 사건을 함께 붙드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아들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역설이 설교의 심장이 됩니다. 이 방향은 삼위일체 안의 신비를 다루므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단정하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셔야 하고, 전통마다 이 순간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금요일에 이미 일요일을 설교함

십자가의 어둠이 불편해서 설교 중반부터 부활을 앞당겨 선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부활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지만, 성금요일 설교의 무게는 그 날에 머무는 데서 나옵니다. 부활은 마지막 한두 문장으로 충분하며, 회중이 어둠 속에 잠시 남겨진 채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고통의 묘사가 본문을 대신함

채찍과 못과 출혈의 의학적 묘사, 영화 장면의 재연, 길게 늘어진 감정적 예화가 본문의 자리를 차지하기 쉽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십자가형의 육체적 고통을 놀랄 만큼 절제해서 기록합니다.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설교자가 채우면, 회중은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가 아니라 고통의 정도에 반응하게 됩니다.

십자가가 도덕적 모범으로만 남음

예수님처럼 용서하라, 예수님처럼 희생하라는 권면으로 설교가 끝나면 십자가는 우리가 흉내 낼 모범이 되고, 우리를 위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복음이 빠집니다. 요한복음 19:30의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이미 되어진 일을 선언합니다. 본받음은 그 선언 뒤에 와야지 앞에 와서는 안 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설교 전체에서 부활이나 빈 무덤을 언급한 시점이 어디였는지 녹음에서 찾아보십시오. 설교 중반 이전이었다면, 그 뒤에 십자가로 다시 돌아온 대목이 있었는지요.
  2. 십자가의 육체적 고통을 묘사하는 데 쓴 시간과 본문의 구절을 직접 읽거나 풀이한 시간을 재어 보십시오. 어느 쪽이 길었는지요.
  3. 설교에서 죄를 말할 때 구체적인 이름, 예컨대 거짓말, 원한, 외면 같은 것을 붙인 횟수와, 그냥 죄라고만 말한 횟수를 세어 보십시오.
  4. 본문의 인물, 곧 시몬이나 강도나 백부장이나 우는 여인 중 한 사람을 다루었다면, 그 인물에서 예수님께로 시선을 돌린 문장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몇 분 지점이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5.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일을 선언한 문장과, 회중에게 하라고 권면한 문장을 각각 세어 보십시오. 선언이 권면보다 먼저 나왔는지, 그리고 권면이 선언에 근거를 두고 있었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십자가를 묵상하자,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자, 십자가의 길을 따르자로 끝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회중은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착지한 적용은 성금요일과 부활주일 사이의 며칠 동안 회중이 실제로 할 수 있는 한 가지 행동을 이름 붙여 줍니다. 십자가 본문에서는 그 행동이 용서, 침묵, 고백 중 하나와 맞닿을 때 본문과 가장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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