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aching Lab

누가복음 10:25-37

누가복음 10장 설교 —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는 자에게 누가 이웃이 되었는가를 물으신 예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교회 밖 사람도 줄거리를 아는 몇 안 되는 본문이라, 회중은 설교자가 첫 문장을 꺼내기도 전에 결론을 짐작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조용히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비유만이 아니라 그 비유를 둘러싼 대화, 곧 율법교사의 두 질문과 예수님의 되물으심까지 강단에 올리시는 일입니다. Preaching Lab은 이렇게 설교한 뒤 녹음을 놓고 스스로 되묻는 자리를 돕고자 만든 페이지입니다.

본문 한눈에

  1. 율법교사가 예수를 시험하려고 영생의 길을 묻고, 예수님은 율법을 되물으시며 그가 스스로 신명기 6장과 레위기 19장을 합쳐 답하게 하십니다(25-28절).
  2. 그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이웃의 범위를 묻자(29절), 예수님은 정의 대신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3. 강도 만난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해 지나가고,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멈춥니다(30-33절).
  4. 그의 자비는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기름과 포도주, 나귀, 주막, 두 데나리온과 다시 오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집니다(34-35절).
  5. 예수님은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을 뒤집어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고 물으시고, 율법교사는 사마리아인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한 채 자비를 베푼 자라고 답하며, 가서 그렇게 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36-37절).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뒤집힌 질문 — 이웃의 범위에서 이웃 되기로

본문의 중심은 29절의 질문과 36절의 되물으심 사이의 간격에 있습니다. 율법교사는 사랑해야 할 대상의 경계를 물었고 예수님은 그에게 사랑하는 주체가 되라고 답하십니다. 이 길로 가시려면 비유 앞뒤의 대화를 대지 안에 실제로 넣으셔야 하고, 회중이 이미 아는 이야기의 교훈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지를 보여 주셔야 합니다.

율법과 영생 — 행함으로 얻는가, 행함으로 드러나는가

본문은 영생을 묻는 질문으로 열리고 이렇게 행하라는 명령으로 닫힙니다(25, 28, 37절). 이 길은 행함과 은혜의 관계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하므로, 설교자가 자기 교단의 구원론을 명확히 하면서도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범위를 넘지 않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율법교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 했다는 29절의 한 구절이 이 길의 열쇠가 됩니다.

멈춘 사람과 지나간 사람 — 종교적 신분과 자비

제사장과 레위인은 악인이 아니라 성전을 섬기는 사람이었고, 사마리아인은 청중이 이웃으로 여기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길은 회중을 강도 만난 자의 자리에도, 지나간 두 사람의 자리에도 세워 봅니다. 다만 본문이 두 사람이 지나간 이유를 말하지 않으므로, 정결 규례나 바쁜 일정 같은 동기를 설교자가 채워 넣을 때는 그것이 추정임을 밝히는 정직함이 요구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비유만 남고 대화가 사라지는 설교

25-29절과 36-37절을 서론에서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곧장 30절로 들어가면, 본문은 착한 일을 권하는 도덕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질문을 뒤집으신 36절이 설교에서 할 일이 없어지고, 회중은 이미 알던 결론을 다시 듣고 돌아갑니다.

사마리아인을 그리스도로 바꾸어 본문을 닫아 버리는 설교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의 모형으로, 주막을 교회로, 두 데나리온을 은혜로 읽는 전통이 오래 있어 왔고 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읽기가 설교의 전부가 되면 37절의 가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갈 곳을 잃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비를 말씀하시더라도 본문의 마지막 문장이 명령형이라는 사실을 설교가 감당해야 합니다.

예화가 본문 자리를 차지하는 설교

이 본문은 감동적인 선행 사례를 부르기 쉽고, 그 예화가 길어지면 회중이 기억하는 것은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그 사례가 됩니다. 또 하나의 위험은 제사장과 레위인을 오늘의 특정 집단이나 교회 직분자에 빗대어 회중이 남을 비난하는 자리에 서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은 듣는 사람 자신이 지나간 사람일 수 있음을 묻고 있습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음에서 25-29절의 대화와 36-37절의 되물으심에 각각 몇 분을 쓰셨고, 30-35절 비유 자체에 몇 분을 쓰셨는지요. 대화 부분이 합쳐서 두세 문장에 그쳤다면 비유가 대화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2. 이웃이 누구냐는 율법교사의 질문과 누가 이웃이 되었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이 서로 다른 질문이라는 점을 설교에서 명시적으로 말씀하신 문장이 있는지요. 있다면 어느 지점이며, 그 뒤의 대지가 실제로 그 차이 위에 세워졌는지요.
  3.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간 이유를 설명하셨다면, 그것을 본문이 말하는 것으로 말씀하셨는지 아니면 추정이라고 표시하셨는지요. 녹취록에서 그 문장을 찾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4. 34-35절의 구체적인 행동들, 곧 기름과 포도주, 나귀, 주막, 두 데나리온, 다시 오겠다는 약속 가운데 설교에서 실제로 언급하신 것이 몇 가지인지요. 사마리아인의 자비를 불쌍히 여긴 마음이라는 한 단어로만 말씀하셨다면 본문이 공들여 적은 다섯 가지 행동이 빠진 것입니다.
  5. 설교에 쓰신 예화의 길이를 합치면 몇 분이며, 그 예화들이 본문의 어느 절에 걸려 있는지 하나씩 짚을 수 있는지요. 어느 절에도 걸리지 않는 예화가 있었다면 그것이 본문 대신 기억될 가능성이 큽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이 이웃을 사랑합시다에서 멈추면, 그것은 율법교사가 이미 28절에서 스스로 답한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은 방향이 아니라 멈춤과 행동을 말합니다. 사마리아인은 보았고, 다가갔고, 돈을 썼고,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착지한 적용은 성도가 이번 주에 누구 앞에서 멈출 것인지, 그리고 그 멈춤이 무엇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이름 붙일 수 있게 합니다.

이 설교 녹음으로 리포트 받기Preaching Lab 이 무엇인지 보기

함께 보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