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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1-10

누가복음 19장 설교 — 찾으러 오신 분과 삭개오의 오늘

삭개오 본문은 주일학교 노래로 먼저 배우는 이야기라, 회중은 설교자보다 먼저 결말을 알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조용히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나무 위의 작은 사람 이야기를 넘어, 10절이 말하는 찾으시는 분과 8절이 보여 주는 지갑의 회개까지 회중을 데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신 뒤 녹음을 놓고 되짚어 보실 때 쓰시도록 Preaching Lab이 정리했습니다.

본문 한눈에

  1. 1-4절에서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보려고 앞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오르지만, 본문은 그의 열심보다 그가 부자이고 키가 작다는 두 사실을 먼저 적어 둡니다.
  2. 5-6절에서 시선의 방향이 뒤집힙니다. 보려던 사람이 보임을 받고,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오늘 그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이 영접합니다.
  3. 7절에서 모든 사람이 수군거립니다. 죄인의 집에 들어가셨다는 이 불평은 기쁨과 회개 사이에 끼어 있어, 본문이 회중 자신을 비추는 자리입니다.
  4. 8절에서 삭개오는 서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토색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나아간 구체적인 숫자입니다.
  5. 9-10절에서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언하시고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르시며,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본문 전체의 열쇠를 주십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찾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 10절을 열쇠로 읽는 길

삭개오가 보려고 나무에 올랐지만(3-4절), 먼저 올려다보시고 이름을 부르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5절). 10절의 찾아 구원하신다는 선언을 처음부터 열쇠로 놓으면, 이 본문은 열심 있는 사람이 상을 받은 이야기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분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 길의 대가는 삭개오의 달음질을 없는 것처럼 지워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본문은 그의 행동을 분명히 적어 두었고, 은혜가 먼저라는 말이 사람의 반응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말은 아닙니다.

구원은 지갑에서 보입니다 — 8-9절을 중심에 두는 길

예수님은 삭개오의 고백이나 눈물이 아니라 재산의 절반과 네 배 배상이라는 말 뒤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언하십니다(8-9절). 출애굽기 22:1의 네 배 배상은 도둑에게 내리는 판결이고, 레위기 6:5는 오분의 일을 더하라고 하니, 삭개오는 율법의 최소치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길이 요구하는 것은 순서를 지키는 일입니다. 5-6절의 영접이 8절의 회개보다 먼저 왔다는 것을 설교자가 말로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회중은 돈을 내놓아야 예수님이 오신다고 듣고 돌아갑니다.

수군거리는 무리 — 7절에서 회중을 비추는 길

7절의 불평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고, 9절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언은 그 불평에 대한 답입니다.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를 정하던 무리 앞에서 예수님은 세리장을 언약 백성 안으로 다시 부르십니다. 이 길은 강단에서 회중을 무리의 자리에 세우는 길이라 가장 조심스럽습니다. 회중을 꾸짖는 설교가 아니라, 설교자 자신이 수군거리는 자리에 서 본 적이 있음을 먼저 인정하는 설교라야 회중이 따라 들어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나무에 오른 열심이 설교의 중심이 되는 것

키 작은 사람이 애써 나무에 올랐더니 예수님이 보아 주셨다는 흐름은 노래로 익숙해서 설교가 저절로 그쪽으로 기웁니다. 그러면 은혜가 노력의 보상이 되고, 10절은 결론에 붙는 인용구로 내려앉습니다. 3-4절을 설명하는 시간과 5절과 10절을 설명하는 시간을 견주어 보시면 설교가 어디에 무게를 두었는지 드러납니다.

8절을 건너뛰거나 율법으로 만드는 것

돈 이야기가 부담스러워 8절을 한 줄로 지나가면 본문은 만남의 감동으로 끝나고, 반대로 네 배 배상을 모든 성도의 기준으로 세우면 본문이 없는 짐을 지웁니다. 8절의 동사가 헬라어 현재형이라 삭개오가 이미 하던 관행을 변호한 것으로 읽는 견해와 지금 결단한 것으로 읽는 견해가 표준 주석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하시든 그것이 선택임을 알고 택하셔야 하고, 9절의 선언이 그 말 뒤에 온다는 사실은 두 읽기 모두에서 같습니다.

18장의 부자 관원을 끌어와 부가 죄라고 말하는 것

18:18-30의 부자 관원이 슬퍼하며 떠난 직후에 부자 세리장이 구원을 받는 배치는 누가가 의도한 대조이지만, 그 대조를 재물 자체를 정죄하는 데 쓰면 본문을 넘어섭니다. 삭개오는 다 팔라는 말을 듣지 않았고, 절반을 내놓은 뒤에도 여전히 집이 있는 사람입니다. 대조의 요점은 18:27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는 말씀이 19장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데 있습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취록에서 삭개오가 주어인 문장(올랐다, 달려갔다, 보려 했다)과 예수님이 주어인 문장(올려다보셨다, 부르셨다, 머물러야 한다 하셨다)을 세어 보십시오. 어느 쪽이 많았고, 10절은 설교의 몇 분 지점에서 처음 나왔는지요.
  2. 8절의 돈 이야기에 몇 분을 쓰셨는지요. 절반과 네 배라는 숫자가 실제로 입 밖에 나왔는지, 그리고 회중 가운데 갚을 것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한 문장으로라도 말씀하셨는지요.
  3. 영접(5-6절)이 배상(8절)보다 먼저 왔다는 순서를 말로 명시하셨는지요. 녹음에서 그 순서를 말한 문장을 찾을 수 있는지, 아니면 설교의 흐름 속에서 순서가 뒤집혀 들리는 대목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4. 7절의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그들이라고 하셨는지 우리라고 하셨는지 세어 보십시오. 회중을 그 자리에 세우셨다면, 설교자 자신을 먼저 그 자리에 세운 문장이 있었는지요.
  5. 나무와 작은 키에 대한 예화나 묘사에 쓴 시간과 9-10절을 푸는 데 쓴 시간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리고 본문의 오늘이라는 말(5절, 9절)이 설교에 몇 번 나왔고, 적용에서 그 오늘이 회중의 이번 주 어느 날로 옮겨졌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이 떠 있는 상태는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기쁘게 영접하고 회개하는 삶을 삽시다로 끝나는 것입니다. 방향은 있으나 회중이 월요일에 손댈 것이 없습니다. 삭개오 자신이 방향이 아니라 숫자와 대상을 말했다는 사실(8절)이 이 본문의 적용이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를 이미 보여 줍니다. 적용에 사람의 이름, 액수, 날짜 가운데 하나라도 들어가 있는지가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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