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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1-23

마태복음 13장 설교 —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같은 씨가 네 밭에 떨어질 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직접 풀이까지 붙여 주신 몇 안 되는 비유라, 설교자가 뜻을 지어낼 필요가 없는 대신 그 풀이를 그대로 따라갈 책임이 생깁니다. 본문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 앞에서 말씀 듣는 일 자체를 다루기 때문에, 강단에 선 설교자와 회중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릅니다. 설교를 마친 뒤 녹음을 두고 이 페이지의 질문을 스스로 물으시면, Preaching Lab이 하는 일과 같은 종류의 점검을 혼자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 한눈에

  1. 1-9절에서 예수님은 바닷가에 모인 큰 무리에게 배 위에서 한 농부가 씨를 뿌리고, 씨가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에 떨어져 서로 다른 결과를 맺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2. 9절의 들을 귀에 대한 말씀은 이 비유가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듣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신호이며, 10절에서 제자들이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를 묻습니다.
  3. 11-17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이 어떤 이에게는 허락되고 어떤 이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시며 이사야 6장을 인용하시는데, 이 대목이 본문에서 가장 무겁고 설교에서 가장 자주 건너뛰는 자리입니다.
  4. 18-23절에서 예수님은 네 밭을 하나씩 풀이하시며, 마태복음 본문은 특히 깨닫는다는 말을 19절과 23절 양 끝에 두어 길가와 좋은 땅의 차이를 깨달음의 유무로 세웁니다.
  5. 23절은 좋은 땅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열매 맺는다고 말하며 비유를 끝내는데, 셋 다 열매를 맺은 밭이라는 점이 결말의 무게를 정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뿌리는 자와 씨에서 출발하는 설교

비유의 제목이 밭이 아니라 씨 뿌리는 자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길가와 돌밭에도 아끼지 않고 씨를 던지는 농부의 손과 어디에 떨어지든 같은 씨인 말씀의 능력을 대지로 세우는 방향입니다. 회중이 자기 밭을 진단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고 계심을 듣게 됩니다. 다만 이 방향은 네 밭 중 셋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본문의 현실을 어떻게 다룰지를 미리 정해 두어야 하며, 뿌리는 자의 너그러움만 말하고 끝나면 18-23절의 풀이가 설교에서 사라집니다.

듣는 일을 점검하는 설교

18-23절을 따라 네 밭을 하나씩 짚으며, 말씀이 회중 안에서 어떻게 빼앗기고 말라 죽고 막히는지를 예수님의 풀이 그대로 드러내는 방향입니다. 설교를 듣는 바로 그 시간이 본문의 장면이 되기 때문에 회중의 집중이 자연스럽게 높아집니다. 이 방향은 본문이 밭이 바뀌는 길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가시떨기 밭이 좋은 땅이 되는 방법을 설교자가 덧붙일 때는 본문 밖에서 가져온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하며, 회중이 자기를 정죄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도록 23절의 약속으로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가를 정면으로 다루는 설교

10-17절을 중심에 두고, 같은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열리고 어떤 이에게는 닫히는 천국의 비밀을 다루는 방향입니다. 이 대목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강조하는 전통과 인간의 응답과 책임을 강조하는 전통이 갈라지는 자리이며, 설교자는 자기 교단의 고백 안에서 말하되 본문이 두 면을 다 담고 있음을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이 방향은 세 방향 중 가장 준비가 많이 들고, 16-17절의 복이 제자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점을 놓치면 설교가 경고로만 끝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밭 진단으로만 끝나는 설교

네 밭을 설명한 뒤 당신은 어떤 밭이십니까 하고 묻는 것으로 설교가 마무리되면, 뿌리는 자는 첫 장면에만 잠깐 나오고 사라집니다. 본문은 밭의 등급을 매기려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말씀이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를 보여 주려고 주어졌습니다. 회중이 자기가 돌밭이라는 결론만 안고 돌아가면 그 설교는 씨를 뿌린 것이 아니라 밭을 평가한 것이 됩니다.

10-17절을 건너뛰거나 서둘러 풀어 버리는 것

비유와 풀이 사이에 놓인 이 대목은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설교가 9절에서 18절로 곧장 넘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비유의 풀이를 제자들에게만 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본문의 일부이며, 이를 빼면 왜 같은 설교를 듣고 어떤 성도는 깨닫고 어떤 성도는 그냥 돌아가는지에 대한 본문의 답을 설교자가 스스로 버리는 셈입니다. 반대로 이 대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한 전통의 답만 확정해 버리는 것도 본문이 남겨 둔 긴장을 지우는 일입니다.

농사 예화나 전도 성과가 본문을 대신하는 것

시골 교회의 농사 이야기나 팔레스타인 농법에 관한 설명이 길어지면 회중은 예화는 기억하고 18-23절의 풀이는 잊습니다. 또 이 본문을 전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의 위로나 교회 성장의 원리로 끌고 가면, 본문이 겨냥한 듣는 사람의 자리가 뿌리는 사람의 자리로 바뀌어 회중이 점검 대상에서 빠져나갑니다.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를 신자의 등급으로 나누는 것도 본문이 하지 않는 일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음에서 1-9절, 10-17절, 18-23절 각각에 쓴 시간을 재어 보십시오. 10-17절에 1분 이상을 쓰셨는지요, 아니면 한 문장으로 지나가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으셨는지요.
  2. 설교 전체에서 밭이라는 말과 씨 또는 말씀 또는 뿌리는 자라는 말이 각각 몇 번 나왔는지 세어 보십시오. 밭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설교의 주어가 하나님에서 회중으로 옮겨 간 것입니다.
  3. 네 밭을 설명하실 때 19절의 깨닫지 못함, 21절의 뿌리 없음과 환난과 박해, 22절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 예수님의 풀이 세 가지를 실제로 입에 올리셨는지, 아니면 바쁜 현대인이나 신앙의 열심 같은 설교자의 범주로 바꾸어 말하셨는지 녹취록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4. 23절의 열매 맺음이 설교의 마지막 5분 안에 다시 등장했는지 보십시오. 설교가 가시떨기나 돌밭의 경고에서 끝났는지, 좋은 땅의 약속으로 돌아와서 끝났는지는 녹음의 끝부분을 들으면 바로 드러납니다.
  5. 이번 주에 또는 오늘 집에 가시면 같은 말로 시작하는 문장이 있었는지 찾아보십시오. 좋은 밭이 됩시다나 말씀을 잘 들읍시다는 방향이지 행동이 아니며, 성도가 월요일에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녹취록에 한 문장으로 있는지가 이 질문의 답입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떠 있는 적용은 좋은 밭이 되자, 말씀을 깨닫는 성도가 되자는 말로 끝나는 적용입니다. 방향은 옳지만 회중은 예배당을 나서며 그 방향으로 첫걸음을 어디에 디딜지 모릅니다. 본문의 풀이가 말씀을 빼앗기고 마르고 막히는 세 가지 구체적 방식을 이름 붙였듯이, 내려앉은 적용도 그 셋 중 하나에 대응하는 작은 행동 하나를 이번 주 안에 할 수 있는 크기로 건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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