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aching Lab

마태복음 7:24-29

마태복음 7장 설교 — 반석 위에 지은 집, 듣고 행하는 사람

마태복음 7:24-29은 산상수훈 전체를 닫는 결론이라, 어린이 찬양으로도 익숙하고 새해나 건축 헌당, 임직 예배에서도 자주 택하시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조용히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이라 하신 그 말씀이 무엇인지를 설교자가 먼저 구체적으로 짚어야, 회중이 행할 것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Preaching Lab은 설교를 마치신 뒤 녹음으로 그 자리를 함께 돌아보는 일을 돕습니다.

본문 한눈에

  1. 24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하여, 5장부터 이어진 산상수훈 전체를 「나의 이 말」로 받아 듣는 사람 앞에 내려놓습니다.
  2.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에 비유되고, 25절에서 비와 창수와 바람이 그 집에 부딪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3. 26-27절은 같은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되 「행하지 아니하는」 한 마디만 바뀌고, 같은 비와 창수와 바람 앞에서 그 집은 무너지되 그 무너짐이 심하다고 끝납니다.
  4. 두 사람 모두 들었고, 두 사람 모두 집을 지었고, 두 집 모두 같은 폭풍을 맞았다는 것이 본문의 뼈대이며, 차이는 오직 행함 하나입니다.
  5. 28-29절은 비유를 떠나 무리의 반응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놀랐고, 그 까닭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마태는 적습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산상수훈의 결론으로 듣는 길

「나의 이 말」을 5-7장 전체로 받아, 회중이 이미 들은 원수 사랑과 은밀한 기도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 비유의 반석임을 보이는 설교입니다. 본문이 스스로 그렇게 요구하는 만큼 가장 정직한 길입니다. 다만 이 길은 설교자가 산상수훈의 실제 구절을 이름 붙여 불러와야 서고, 그러지 않으면 「말씀 순종」이라는 일반론으로 내려앉습니다.

폭풍은 두 집에 똑같이 온다는 길

25절과 27절이 같은 문장으로 폭풍을 묘사한다는 점에 무게를 두어, 믿음이 시련을 면제해 주지 않으며 다만 시련이 무엇 위에 서 있었는지를 드러낸다는 설교입니다. 고난 중인 성도가 많은 회중에게 특히 필요한 방향입니다. 이 길은 폭풍을 인생의 시련으로만 읽을지, 21-23절에 이어지는 마지막 심판의 날로도 읽을지를 설교자가 먼저 결정하고 회중에게 밝혀야 한다는 값을 치릅니다.

권위 있는 분의 말씀이라는 길

28-29절에서 출발하여, 이 비유가 도덕 교훈이 아니라 「내 말」을 반석이라 부르실 수 있는 분의 자기 계시임을 드러내는 기독론적 설교입니다. 행함이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권위에 대한 응답이 되도록 자리를 잡아 줍니다. 그러나 무리가 놀란 것과 행한 것은 다르다는 점을 함께 말하지 않으면, 회중도 그 무리처럼 감탄만 하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행함을 조건으로 세우고 복음을 뒤로 밀기

「행하는 자만 산다」는 대지가 설교의 전부가 되면, 본문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놓은 행함이 구원을 사는 값처럼 들립니다.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어떻게 잇는지는 전통마다 강조가 다르지만, 어느 전통에서도 이 본문의 「행함」은 「내 말」을 하신 분과 떼어서는 읽히지 않습니다. 행함을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설교 안에서 한 번은 분명히 세워 두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건축 예화가 본문의 자리를 차지하기

부실 공사와 건물 붕괴, 기초 공사의 중요성 같은 예화는 이 본문에 너무 잘 붙어서, 설교가 끝나면 회중이 「기초가 중요하다」만 기억하고 그 기초가 무엇이었는지는 잊기 쉽습니다. 본문에서 반석은 좋은 기초 일반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비유 자체가 이미 예화이므로, 덧붙이는 예화는 본문을 밝히는지 가리는지를 따로 저울질하셔야 합니다.

21-23절과 28-29절을 잘라 내고 비유만 남기기

24절의 「그러므로」는 바로 앞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에 이어지고, 27절의 「무너짐이 심하니라」는 그 문맥에서 마지막 날의 무게를 지닙니다. 이것을 잘라 내면 폭풍은 인생의 어려움으로만 축소되고 본문의 긴장이 사라집니다. 마지막 심판을 어떻게 설교할지는 종말론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앞뒤 절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회중에게 알려 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설교 안에서 「내 말」이 산상수훈의 어느 구절을 가리키는지 실제로 짚으셨는지요. 녹음에서 5-7장의 구체적 구절이 몇 번, 어느 구절로 언급되었는지 세어 보시고, 없었다면 「말씀」이라는 낱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회중이 알 수 있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2. 비와 창수와 바람이 두 집에 똑같이 닥친다는 것을 한 문장으로라도 말씀하셨는지요. 반대로 반석 위에 서면 폭풍을 피한다는 인상을 주는 문장이 있었다면 그 위치를 찾아 보십시오.
  3. 「순종」 「실천」 「행함」이라는 낱말이 설교 전체에서 몇 번 나왔고, 그 가운데 구체적인 행동 하나를 지목한 경우가 몇 번이었는지 세어 보십시오.
  4. 21-23절 또는 28-29절을 설교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연결하셨는지요. 녹음의 몇 분쯤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24-27절만으로 설교가 닫혔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5. 집이나 건축이나 붕괴에 관한 예화가 설교 전체 시간 가운데 몇 분을 차지했는지, 그리고 예화가 끝난 뒤 본문의 절로 돌아오는 문장이 있었는지 찾아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은 적용이 곧 본문의 요점이라, 「말씀대로 삽시다」로 끝나는 설교는 본문이 경고하는 바로 그 자리,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리에 회중을 두고 내려오는 셈이 됩니다. 방향만 있는 적용은 「순종하는 성도가 됩시다」이고, 행동이 있는 적용은 산상수훈의 한 구절을 골라 이번 주 안에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지목하는 것입니다. 회중이 예배당을 나설 때 무엇을 언제 할지 말할 수 있으면 적용이 내려앉은 것입니다.

이 설교 녹음으로 리포트 받기Preaching Lab 이 무엇인지 보기

함께 보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