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주일 · 로마서 1:16-17 · 에베소서 2:8-9 · 하박국 2:4 · 갈라디아서 2:16
종교개혁주일 설교 — 믿음으로 사는 의인, 오늘 강단에 다시 묻는 복음
10월 마지막 주일이면 많은 강단이 로마서 1:17과 에베소서 2:8-9를 다시 펴고, 오백 년 전의 이야기를 오늘 회중 앞에 놓습니다. 이 날의 어려움은 역사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데 있습니다. 성경 본문이 종교개혁의 배경 설명에 밀려 예화 자리로 내려가기 쉽고, 설교가 끝났을 때 성도가 들고 가는 것이 복음이 아니라 교회사 상식일 수 있습니다. Preaching Lab 이 녹음으로 설교를 돌아볼 때 늘 확인하는 것도 그 한 가지, 본문이 설교의 주인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본문 한눈에
- 종교개혁주일은 교회가 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그 사건이 되찾으려 했던 한 문장을 다시 듣는 날입니다. 그 문장이 로마서 1:17이고, 그 뿌리가 하박국 2:4입니다.
- 로마서 1:16-17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고, 그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며 그 의는 믿음으로 받는다고 이어갑니다. 힘의 방향이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향해 있습니다.
- 에베소서 2:8-9는 같은 진리를 반대편에서 말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믿음을 통해, 선물로 온 것이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자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8절과 9절 중 어느 쪽에 힘을 두느냐가 설교의 색을 정합니다.
- 갈라디아서 2:16은 이 진리가 논쟁 속에서 지켜진 문장입니다.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말이 한 구절 안에 세 번 반복됩니다. 이 반복 자체가 설교의 강조점을 가르쳐 줍니다.
- 하박국 2:4는 원래 바벨론의 위협 앞에서 기다리는 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신약이 이 구절을 어떻게 가져다 썼는지를 보면, 믿음이 지적 동의가 아니라 캄캄한 때에 하나님을 붙드는 일임이 드러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하나님의 의, 방향을 바로 잡는 설교
로마서 1:17의 하나님의 의를 중심에 두고, 의가 사람이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타내시고 주시는 것임을 한 방향으로 밀고 가는 설교입니다. 회중이 신앙생활을 성과로 셈하고 있는 자리를 짚어 낼 때 힘이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설교가 추상 속에서 맴돌게 되니, 그 한 문장을 원고에 먼저 써 두셔야 합니다.
믿음의 정체, 하박국에서 로마서로
하박국 2:4에서 출발해 믿음이 본래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를 보여 주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그 말을 어떻게 이어받았는지를 따라가는 설교입니다. 믿음을 교리 동의로 얇게 이해하던 성도에게 믿음이 곧 기다림과 붙듦이라는 두께를 되찾아 줍니다. 구약 본문을 충실히 다뤄야 하므로 하박국 1장의 질문과 2장의 응답을 설교자가 먼저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랑할 수 없음, 교회를 향한 설교
에베소서 2:9의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을 붙들고,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자랑을 다루는 설교입니다. 종교개혁이 개인 구원의 회복이면서 동시에 교회가 자기를 자랑하던 자리를 무너뜨린 사건이었음을 오늘 우리 교회에 되돌려 묻습니다. 회중이 불편해할 수 있으니 설교자가 자기 교회의 자랑거리를 먼저 이름 붙여 내려놓는 정직함이 요구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교회사가 본문을 밀어내는 설교
1517년의 이야기, 개혁자들의 일화, 당시 교회의 폐단이 설교 시간의 절반을 넘기고 본문은 서론과 결론에서만 언급되는 경우입니다. 역사는 예화이지 본문이 아닙니다. 녹음을 들어 보시면 로마서 1:17이 실제로 풀이된 시간이 몇 분인지 금방 드러납니다.
다른 교회를 향한 비판으로 흐르는 설교
종교개혁을 말하다가 특정 교단이나 교회 전통을 틀린 쪽으로 세우고 우리를 옳은 쪽에 놓는 방향으로 기우는 경우입니다. 에베소서 2:9가 막으려던 것이 바로 그 자랑입니다. 본문이 겨누는 화살은 늘 듣는 회중 자신을 향해야 하며, 밖을 향한 비판은 본문이 담고 있지 않은 주제를 끌어들이는 일이 됩니다.
믿음이 새 행위가 되는 설교
행위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 뒤에, 결론에서 더 믿으라, 믿음을 키우라,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권면으로 마무리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또 하나의 성취 과제가 되어 본문이 무너뜨린 구조가 마지막 오 분에 되살아납니다. 갈라디아서 2:16이 세 번 반복하는 대상은 사람의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녹음에서 로마서 1:16-17이나 에베소서 2:8-9의 구절 자체를 풀이한 시간과 종교개혁 역사를 설명한 시간을 각각 재어 보시면, 어느 쪽이 더 길었는지요.
- 설교 중에 하나님의 의 또는 믿음이라는 말을 회중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정의한 문장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몇 분 지점에서 어떤 말로 하셨는지요.
- 다른 교단이나 다른 교회 전통을 가리켜 부정적으로 언급한 문장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몇 번이고 그 문장이 본문의 어느 구절에서 나왔는지요.
- 결론부의 권면 문장들을 옮겨 적어 보시면, 주어가 성도가 해야 할 일이었는지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이었는지, 그 비율이 어떠했는지요.
- 하박국 2:4를 언급하셨다면 그 구절이 원래 놓여 있던 상황을 한 문장이라도 설명하셨는지, 아니면 로마서의 인용 구절로만 스쳐 지나갔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은 은혜를 더 깊이 깨닫자, 믿음으로 살자 같은 방향 제시에서 멈추기 쉽습니다. 그 말은 옳지만 성도가 월요일에 무엇을 할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착지한 적용은 본문이 무너뜨린 것, 곧 자기 성취와 자랑을 이번 한 주 어디에서 내려놓을지를 손에 잡히게 이름 붙여 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주일이라면 그 대상은 개인의 신앙 성적표와 교회의 자랑 둘 다여야 합니다.
- 이번 주 안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점수로 세고 있던 한 가지, 예를 들어 새벽기도 출석 횟수나 헌금 액수를 종이에 적고, 그 옆에 에베소서 2:8의 선물이라는 말을 써 놓고 한 주 동안 그 종이를 지갑에 넣어 두십니다.
-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낫다고 말한 적이 있는 사람이나 자리를 하나 떠올리고, 다음 모임에서 그 교회를 위해 소리 내어 한 문장 기도해 보십니다.
- 가족이나 구역 식구 중 신앙이 부족하다고 여겨 은근히 판단하던 한 사람에게, 이번 주 안에 조건 없이 밥 한 끼를 대접하거나 안부 전화를 한 번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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