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1-12
베드로전서 2장 설교 — 산 돌, 택하신 족속, 나그네의 선한 행실
베드로전서 2:1-12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본문이라, 교회의 정체성을 세워야 할 때, 새해나 창립 기념, 임직식 즈음에 강단에 자주 오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회중을 향한 명령보다 회중을 향한 선언이 훨씬 길어서, 설교자가 명령을 앞세우는 순간 본문의 무게중심이 흔들립니다. 설교 후 녹음을 두고 이 다섯 질문을 스스로 물어보시는 것이 Preaching Lab이 목사님께 권하는 한 가지 습관입니다.
본문 한눈에
- 1-3절은 거듭난 자에게 걸맞은 삶을 요청하는데, 악독과 기만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라는 말과 갓난아기처럼 말씀을 사모하라는 말이 나란히 놓여 있고, 그 근거는 3절, 이미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는 사실입니다.
- 4-5절에서 그리스도는 사람에게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산 돌이고, 성도는 그에게 나아옴으로 함께 산 돌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며 거룩한 제사장으로 신령한 제사를 드립니다.
- 6-8절은 이사야 28장, 시편 118편, 이사야 8장을 이어 붙여 같은 돌이 믿는 자에게는 보배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보이고, 8절 끝은 그 넘어짐이 정해진 것이라는 어려운 말로 맺습니다.
- 9-10절은 출애굽기 19장과 호세아의 언어를 빌려 회중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 부르고, 그 존재의 목적을 부르신 이의 덕을 선포하는 것으로 못 박은 뒤,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 11-12절은 그 정체성을 다시 나그네와 행인의 자리로 데려와, 영혼을 거스르는 정욕을 제어하고 이방인 가운데서 선한 행실을 보여 비방하던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맺습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선언이 명령을 떠받친다 — 정체성으로부터의 윤리
본문의 골격은 너희는 이런 존재이니 이렇게 살라는 순서입니다. 9-10절의 네 가지 호칭을 설교의 중심에 두고, 1절과 11절의 명령을 그 호칭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배치하면 본문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는 설교가 됩니다. 이 길은 호칭 하나하나가 구약의 어느 자리에서 왔는지를 설교자가 먼저 확인해 두어야 하고, 그 호칭을 회중이 자기 것으로 듣도록 만드는 데 시간을 써야 합니다.
산 돌과 신령한 집 — 개인이 아니라 함께 세워지는 교회
4-5절의 그림은 돌 하나가 아니라 여러 돌이 한 집으로 세워지는 그림이고, 제사장직도 단수가 아니라 공동체의 것입니다. 한국 교회 회중이 이 본문을 개인 경건의 말씀으로 들어 온 경향이 있다면, 이 길은 그 습관을 바로잡는 설교가 됩니다. 다만 교회론을 세우려다 그리스도가 모퉁잇돌이라는 4절과 6-7절이 배경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집의 기초가 누구인지를 먼저 말해야 합니다.
나그네의 선한 행실 — 비방받는 자리에서의 증언
11-12절은 흩어진 나그네가 이방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다루고, 12절은 비방하는 이들이 언젠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까지 시야를 넓힙니다. 교회가 사회의 신뢰를 잃었다는 자각이 있는 회중에게 이 길은 절실하게 들립니다. 이 길이 요구하는 것은 선한 행실을 도덕 일반으로 흐리지 않고, 4-10절의 정체성이 그 행실의 뿌리라는 것을 설교 안에서 실제로 잇는 일입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1절의 버릴 것 목록으로 설교를 열고 거기서 끝나는 경우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은 어느 회중에게나 짚을 거리가 많아서, 설교가 1절에 오래 머물다 3절의 맛보았다는 근거와 4-10절의 선언을 급히 지나가기 쉽습니다. 그러면 본문은 도덕 훈계가 되고, 회중은 왜 버려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만 듣고 돌아갑니다. 1절의 명령은 2:3과 1장 끝의 거듭남에 기대어 있다는 것을 설교의 구조가 보여 주어야 합니다.
8절의 어려운 문장을 건너뛰거나 한 진영의 답으로 닫아 버리는 경우
믿지 않는 자들이 넘어지도록 정하셨다는 8절 끝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책임을 두고 개혁주의 전통과 웨슬리안 전통이 오래 다르게 읽어 온 자리입니다. 어떤 설교는 이 절을 없는 것처럼 지나가고, 어떤 설교는 자기 교단의 답을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단정합니다. 본문이 분명히 말하는 것, 곧 같은 돌이 어떤 이에게는 보배요 어떤 이에게는 걸림돌이 되며 그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와 얽혀 있다는 점까지만 말하고, 그 너머는 전통의 차이가 있음을 정직하게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을 특권으로 읽고 목적절을 놓치는 경우
9절의 호칭들은 듣기에 좋아서 설교가 회중의 존귀함을 높이는 데 머물기 쉽습니다. 그러나 9절 문장의 무게는 호칭이 아니라 그 뒤의 목적, 부르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에 있고, 10절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다는 말로 그 존귀함이 받은 것임을 못 박습니다. 호칭만 크게 말하고 목적과 출처를 작게 말하면 본문이 뒤집힙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녹취록에서 1절의 버릴 것들에 쓴 분량과 4-10절의 선언에 쓴 분량을 재어 보시면, 어느 쪽이 더 깁니까. 본문은 선언이 명령보다 길고, 설교 시간의 배분이 그 비율을 뒤집었다면 어디서 뒤집혔는지 짚어 보십시오.
- 8절 끝의 넘어지도록 정하셨다는 구절을 설교에서 다루셨습니까. 다루셨다면 그 부분을 다시 들으며 본문이 말하는 것과 목사님의 전통이 덧붙인 것이 회중에게 구별되어 들렸는지, 아니면 하나로 뭉쳐 들렸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 9절의 네 호칭을 읽으신 뒤 그 문장의 목적절, 곧 선포하게 하려 하심을 따로 언급하신 자리가 있습니까. 있다면 몇 분 지점이고, 호칭을 설명한 시간과 목적을 설명한 시간 중 어느 쪽이 길었는지 세어 보십시오.
- 산 돌과 신령한 집을 말하실 때 주어가 몇 번 개인이었고 몇 번 교회 공동체였습니까. 녹취록에서 여러분 각자와 우리 교회가라는 말이 각각 몇 번 나오는지 세어 보시면 설교가 본문의 복수형을 따랐는지 드러납니다.
- 12절의 선한 행실을 적용하실 때 회중 바깥의 이방인, 곧 교회를 비방하는 이웃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한 번이라도 이름 붙이셨습니까. 그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선한 행실은 누구에게 보이는 행실인지가 설교에서 비어 있었던 셈입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거룩한 백성답게 삽시다, 선한 행실로 빛을 발합시다에서 멈춥니다. 회중은 동의하고 돌아가지만 월요일에 손댈 것이 없습니다. 자리에 내려앉은 적용은 1절의 버릴 것 하나, 5절의 제사 하나, 12절의 이방인 한 사람을 이번 주 안에 실제 시간과 실제 얼굴에 붙입니다.
- 1절의 다섯 가지 중 비방 하나를 골라, 이번 주에 교회 안이나 직장에서 누군가를 두고 나눈 말 가운데 그 사람이 들었으면 안 될 말을 한 번이라도 삼키고, 그 자리를 주일 전에 기록해 두십니다.
- 5절의 신령한 제사를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로 삼아, 이번 주 구역이나 소그룹 모임에서 모임 시작 전에 한 사람이 회중 전체를 위해 소리 내어 기도하는 순서를 한 번 만들어 보십니다.
- 12절의 비방하는 이방인을 실제 얼굴로 바꾸어, 교회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웃이나 동료 한 사람에게 이번 주에 아무 목적 없이 도움이 되는 일 하나를 하고,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채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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