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16
에베소서 4장 설교 — 부르심에 합당하게, 한 몸으로 자라기
에베소서 4:1-16은 교회의 하나 됨과 성숙을 말할 때 가장 먼저 펼쳐지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1-3장의 은혜를 딛고 서 있는 「그러므로」로 시작하기에, 설교자에게 은혜와 권면의 순서를 바꾸지 말 것을 조용히 요구합니다. 설교하신 뒤에는 Preaching Lab 같은 도구로 녹음을 되짚어 보시면 이 페이지의 질문들에 답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 한눈에
- 1절은 「그러므로」로 1-3장의 은혜를 받아,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권면을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의 용납으로 구체화합니다.
- 3절은 하나 됨을 만들라 하지 않고 성령이 이미 이루신 하나 됨을 지키라 하며, 4-6절은 그 하나 됨의 근거를 일곱 번의 「하나」로 못 박습니다.
- 7절부터 초점은 하나 됨에서 다양성으로 옮겨 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은혜와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8-10절)을 말합니다.
- 11-12절은 그 선물이 사람, 곧 사역자들이며 그들의 일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성도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13-16절은 목표를 그립니다. 어린아이의 흔들림을 벗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각 마디가 제 분량대로 일하여 몸 전체가 사랑 안에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지켜야 할 하나 됨 — 1-6절 중심
하나 됨은 교회가 만들어 내는 성과가 아니라 성령이 이미 주신 선물이며, 회중의 일은 그것을 겸손과 오래 참음으로 지키는 것이라는 방향입니다. 4-6절의 일곱 「하나」를 대지의 뼈대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 길은 회중 안의 실제 갈등을 강단에서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를 요구하며, 갈등이 없는 척하면 본문이 공허해집니다.
선물로 주신 사람들 — 7-12절 중심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이 은사가 아니라 사람이며, 사역자의 존재 이유가 성도를 세워 성도가 사역하게 하는 것이라는 방향입니다. 목회 철학과 평신도 사역을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습니다. 다만 12절의 구문을 두고 「사역자가 봉사한다」와 「성도가 봉사하도록 사역자가 준비시킨다」로 읽는 전통이 갈리므로, 어느 쪽을 택하시든 그것이 해석의 선택임을 회중에게 밝히는 정직함이 필요합니다.
머리께로 자라는 몸 — 13-16절 중심
교회의 성숙이 개인의 경건이 아니라 몸 전체가 그리스도께로 함께 자라는 것이며, 그 자람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함」(15절)으로 이루어진다는 방향입니다. 교회의 성장을 숫자가 아닌 성숙으로 다시 정의하는 설교가 됩니다. 이 길은 14절의 「교훈의 풍조」가 오늘 회중에게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이름 붙여야 하며, 막연히 「세상 사상」이라고만 하면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세우는 본문의 힘이 사라집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그러므로」를 잘라 내고 권면만 남기는 것
1절의 「그러므로」는 1-3장 전체, 곧 죽었던 자를 살리신 은혜와 둘을 하나로 만드신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이것을 건너뛰면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이 은혜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회중이 채워야 할 요구 목록이 됩니다. 4장을 설교하시면서 2장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셨다면 본문의 무게중심이 옮겨진 것입니다.
8-10절을 어색하다고 건너뛰는 것
시편 68편 인용과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구절은 해석이 갈리는 대목이라 설교자가 조용히 지나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없으면 11절의 사역자들이 왜 「선물」인지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내려가셨다가 올라가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뼈대만 붙잡아도 충분하며, 지옥 강하 문제까지 판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11절을 오늘의 직제 논쟁으로 바꾸는 것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가 오늘 교회에 그대로 있는지, 다섯인지 넷인지는 교단마다 답이 다르며 본문이 그 논쟁을 위해 쓰인 것도 아닙니다. 이 논쟁에 설교 시간의 상당 부분을 쓰면 12-16절의 목표, 곧 몸이 세워지는 일이 뒤로 밀립니다. 본문의 관심은 직분의 목록이 아니라 직분의 목적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설교 안에서 에베소서 1-3장의 은혜(특히 2장의 살리심과 하나 되게 하심)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지점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권면(1-3절)보다 앞에 놓였는지 뒤에 놓였는지 녹취록에서 확인해 보십시오.
- 3절의 「지키라」와 「만들라」의 차이를 회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으로 말씀하셨는지, 아니면 「하나 됩시다」처럼 하나 됨을 회중의 과제로 돌리는 표현이 몇 번 나왔는지 세어 보십시오.
- 8-10절을 다루셨는지, 다루셨다면 몇 문장을 쓰셨는지, 아니면 7절에서 11절로 바로 건너뛰셨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 12절의 「봉사의 일」을 누가 하는 것으로 설명하셨는지 — 사역자인지 성도인지 — 그리고 그것이 해석의 선택임을 밝히셨는지, 아니면 한쪽을 당연한 것으로 말씀하셨는지 들어 보십시오.
- 15절의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를 적용으로 이으셨을 때, 회중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는 관계(교인 사이, 세대 사이, 부서 사이)를 하나라도 이름 붙이셨는지, 아니면 「서로 사랑합시다」 수준에 머물렀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하나 됩시다」「사랑으로 참읍시다」「함께 자라 갑시다」이며, 회중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돌아갑니다. 착지한 적용은 2절의 「오래 참음」과 3절의 「지키라」가 이번 주 어느 관계, 어느 자리에서 어떤 행동이 되는지를 말합니다. 본문이 겸손과 온유를 하나 됨의 수단으로 명시하고 있으니, 적용도 그 수단을 손에 잡히게 만들어야 합니다.
- 교회 안에서 마음이 멀어진 한 분께 이번 주 안에 먼저 안부 연락을 드리되, 그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은 넣지 않는 것입니다.
- 내가 섬기는 부서나 소그룹에서 나 없이는 안 되는 일 하나를 골라, 다음 주까지 다른 성도에게 넘겨 드리고 그분이 하시도록 두는 것입니다.
- 주중에 다른 교인이나 다른 부서에 대해 불평이 입에 오르려 할 때 그 자리에서 멈추고, 대신 그분을 위해 짧게 기도하는 것을 이번 주 한 번이라도 실제로 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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