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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 · 마가복음 10:13-16 · 신명기 6:4-9 · 시편 127:3-5 · 디모데후서 3:14-15

어린이주일 설교 — 아이를 막는 손과 아이를 안으시는 손

어린이주일은 한국 교회가 5월 첫째 주일에 지키는 절기로, 회중석에 아이들이 앉아 있고 어른들은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설교를 듣습니다. 이날 강단은 아이를 향해서도 말하고 아이를 기르는 어른을 향해서도 말해야 하는데, 마가복음 10:13-16을 펴면 본문의 무게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막아선 제자들과 그들을 노하신 예수님께 실려 있습니다. 어린이를 칭찬하는 설교로 끝날지, 어른의 손을 돌아보게 하는 설교가 될지는 설교자가 이 무게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고, Preaching Lab은 그 설교를 녹음으로 다시 들어 보는 일을 돕습니다.

본문 한눈에

  1. 마가복음 10:13-16에서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려오고, 제자들은 꾸짖고, 예수님은 노하시며 아이들을 오게 하라 하시고, 안고 축복하십니다.
  2. 본문의 절정은 아이가 무엇을 잘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는 선언과, 아이처럼 받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경고입니다.
  3. 신명기 6:4-9는 이 절기에 흔히 함께 읽히는데,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일이 먼저이고 자녀에게 가르치는 일이 그 뒤를 따르는 순서를 놓치면 안 됩니다.
  4. 시편 127:3-5와 디모데후서 3:14-15는 자녀를 기업과 상급으로, 어릴 때부터 성경을 아는 사람으로 그리며 어른에게 맡겨진 책임을 말합니다.
  5. 그래서 어린이주일이 강단에 요구하는 것은 아이를 치켜세우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막는 손이 누구의 손인지 보게 하고 안으시는 손이 누구의 손인지 선포하는 일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막는 손을 향한 설교 — 제자들이 서 있던 자리

마가복음 10:13에서 아이를 꾸짖은 사람은 낯선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따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방향은 회중 가운데 교사, 부모, 직분자에게 우리가 어디서 아이를 예수님께 가는 길에서 밀어냈는지를 묻습니다. 이 방향은 어른에게 불편한 설교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그 불편이 정죄로 굳지 않도록 16절의 안으심으로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받는 자를 향한 설교 — 아이처럼 받는다는 것

15절은 아이가 나라를 얻는 조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라를 받는 방식을 말합니다. 아이의 순진함이나 착함이 아니라 아무것도 내놓을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자리, 곧 은혜를 받는 자리를 설교하는 방향입니다. 이 방향은 어린이주일에 어른을 향한 복음 설교가 되지만, 아이들이 회중석에 앉아 있는 날에 아이가 소외되지 않도록 설교의 한 대목은 아이의 눈높이로 내려와야 합니다.

새기고 가르치는 집을 향한 설교 — 신명기 6장의 순서

신명기 6:6-7은 말씀이 먼저 네 마음에 있고 그 다음에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이 방향은 가정과 교회학교가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는지, 어른 자신이 먼저 그 말씀을 붙들고 있는지를 묻는 설교가 됩니다. 이 방향은 자칫 자녀 교육 강연으로 흐르기 쉬워, 4-5절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고백과 그분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설교의 몸통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아이의 순수함을 본문이 말하지 않은 덕목으로 만드는 것

본문은 아이가 순수해서, 믿음이 좋아서 나라를 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저 데려와지고 안기는 존재로 나옵니다. 아이의 덕을 칭찬하는 순간 15절은 다시 자격의 말이 되고, 은혜로 받는다는 본문의 방향이 뒤집힙니다.

14절의 노하심을 건너뛰는 것

마가는 예수님이 노하셨다고 기록하는데, 어린이주일의 밝은 분위기에 맞지 않아 이 절을 살짝 지나가는 설교가 많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가 흐려지고, 설교는 어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축하 인사가 됩니다. 노하심의 대상이 누구였는지를 회중이 분명히 듣게 하는 것이 본문에 대한 성실입니다.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는 것

어린이주일 설교는 아이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 설교자 자녀의 일화, 교회학교 아이의 말 한마디로 채워지기 쉽습니다. 그 예화들이 회중을 웃기고 울리는 사이 마가복음 10장의 장면 자체는 한 번도 그려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녹취록에서 본문 장면을 설명한 분량과 예화 분량을 나란히 놓아 보시면 어느 쪽이 설교였는지 드러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취록에서 14절의 노하심을 언급하셨는지, 언급하셨다면 그 노하심의 대상이 제자들임을 몇 문장으로 말씀하셨는지 세어 보셨는지요.
  2. 15절을 아이가 나라를 받는 이유로 풀었는지, 모든 사람이 나라를 받는 방식으로 풀었는지, 그 문장을 녹취록에서 그대로 찾아 읽어 보실 수 있는지요.
  3. 설교 전체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말을 건넨 대목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몇 분 지점에서 몇 초 동안이었는지 녹음에서 짚어 보셨는지요.
  4. 예화에 쓴 시간과 마가복음 10:13-16의 장면을 설명한 시간을 각각 재어 보셨을 때, 본문 설명이 예화보다 길었는지요.
  5. 적용 대목에서 부모나 교사에게 이번 주에 할 한 가지 일을 이름 붙여 말씀하셨는지, 아니면 아이를 사랑하고 잘 기르자는 말에서 끝났는지 녹취록의 마지막 다섯 문장으로 확인해 보셨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아이들을 사랑합시다, 다음 세대를 세웁시다로 끝나며, 회중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착지한 적용은 제자들이 막았던 그 손이 이번 주 우리 집과 교회 어디에서 움직이는지를 한 장면으로 짚고, 그 손을 바꾸는 작은 일 하나를 다음 주일 전에 할 수 있는 크기로 내놓습니다. 마가복음 10장은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과 막는 사람과 안으시는 분이 한 장면에 있으므로, 적용도 데려오는 일, 막지 않는 일, 안기는 일 가운데 하나를 구체적으로 고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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