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aching Lab

어버이주일 · 출애굽기 20:12 · 에베소서 6:1-4 · 룻기 1:16-17 · 디모데후서 1:5

어버이주일 설교 — 공경은 감정이 아니라 무게를 두는 일입니다

어버이주일은 회중이 결론을 미리 알고 앉는 몇 안 되는 주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 나올 것을 모두가 알기에, 본문이 그 말보다 무엇을 더 하는지 보여 주지 못하면 설교는 카네이션 순서의 배경음이 되고 맙니다. 이 페이지는 설교를 대신 써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하는 일과 갈림길과 설교 뒤에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Preaching Lab이 정리한 작업지입니다.

본문 한눈에

  1. 어버이주일은 교회력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관습에서 온 날이라, 본문이 날을 정한 것이 아니라 날이 본문을 골라 옵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먼저 어느 본문을 강단에 세울지 정해야 하고, 넷을 다 읽고 하나도 강해하지 않는 길을 피해야 합니다.
  2. 출애굽기 20:12은 계명이면서 동시에 약속입니다. 에베소서 6:2이 그것을 그대로 짚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 부르고, 3절에서 그 약속을 다시 붙입니다.
  3. 에베소서 6:4은 시선을 자녀에게서 부모에게로 돌립니다. 이 날 강단 앞에 앉은 부모들에게 본문이 직접 하는 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4. 룻기 1:16-17은 혈연이 아닌 며느리의 언약적 헌신이고, 디모데후서 1:5은 할머니와 어머니를 거쳐 온 믿음입니다. 둘 다 부모 공경을 가족 미담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이야기 안에 놓습니다.
  5. 그러므로 이 날 강단이 받는 요구는 효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모라는 자리를 왜 무겁게 여기라 하시는지를 복음 안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약속이 있는 계명 — 출애굽기 20:12과 에베소서 6:1-3

공경의 근거를 부모의 은혜나 자녀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두는 길입니다. 표준 사전들이 공통으로 말하듯 공경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무겁게 여긴다는 뜻과 맞닿아 있어, 설교는 마음의 온도가 아니라 부모에게 두는 무게를 다루게 됩니다. 이 길의 비용은 약속 부분입니다. 잘되고 장수한다는 말을 개인의 복 보장으로 풀지도, 불편해서 지우지도 않고, 언약 백성에게 주신 약속으로 자리를 잡아 주어야 합니다.

부모를 향한 말씀 — 에베소서 6:4

이 날 강단은 대부분 자녀에게 말하지만, 본문은 부모에게 더 어려운 말을 합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명령은 부모의 권위를 전제하면서 그 권위의 한계를 긋고, 양육의 기준을 부모의 뜻이 아니라 주의 교훈에 둡니다. 이 길을 택하시면 회중의 부모들이 불편해질 수 있고, 설교자 자신이 부모라면 자기 이야기가 됩니다. 그 불편을 피하려고 4절을 읽기만 하고 지나가면 이 방향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세대를 건너는 이야기 — 디모데후서 1:5과 룻기 1:16-17

공경을 넘어서, 부모 자리를 통해 믿음이 다음 세대로 건너가는 것을 다루는 길입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고(사도행전 16:1) 믿음은 할머니와 어머니 쪽에서 왔으며, 룻은 딸이 아니라 며느리였습니다. 그래서 이 방향은 한쪽 부모만 믿는 가정과 혈연 아닌 관계에도 말씀이 닿게 합니다. 비용은 회중 안의 자녀 없는 성도와 믿지 않는 부모를 둔 성도에게 이 이야기가 다르게 들린다는 점이고, 설교자가 그것을 알고 말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효 사상과 계명을 같은 것으로 놓는 것

유교적 효와 성경의 공경은 겹치지만 같지 않습니다. 본문 없이도 할 수 있는 설교가 되면 본문은 장식이 되고, 회중은 교회에서도 같은 말을 듣는다고 느낍니다. 공경이 왜 하나님 앞의 일인지, 그리스도께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무엇을 하셨는지가 빠지면 이 날 설교는 복음 없는 도덕 훈화로 끝납니다.

예화가 본문을 대신하는 것

어머니의 희생 이야기는 어느 회중이든 울립니다. 문제는 눈물이 나면 설교가 되었다고 느끼기 쉽다는 것입니다. 녹음을 들어 보면 본문 해설이 삼 분이고 예화가 십이 분인 설교가 드물지 않고, 그 경우 회중이 들고 나간 것은 본문이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강단 앞 회중의 절반을 잊는 것

부모가 이미 돌아가신 분,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분, 부모와 연락이 끊어진 분, 자녀를 잃었거나 자녀가 없는 분이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공경하라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 통증으로 들립니다. 본문은 그분들을 배제하지 않는데 설교가 배제하면, 그것은 본문의 실패가 아니라 설교의 실패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음에서 본문 해설에 쓴 시간과 예화에 쓴 시간을 각각 재어 보셨는지요. 부모의 희생을 다룬 예화가 가장 길게 말한 대목이었다면, 그 예화가 끝난 뒤 본문의 절 번호로 돌아온 문장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2. 에베소서 6:4을 강단에서 읽기만 하셨는지, 아니면 부모에게 직접 말하는 대목이 몇 분이라도 있었는지요. 자녀에게 한 말과 부모에게 한 말의 분량을 나란히 세어 보시면 설교가 실제로 누구를 향했는지 드러납니다.
  3. 출애굽기 20:12과 에베소서 6:3의 약속 부분을 어떻게 다루셨는지요. 건너뛰었는지, 개인의 복 보장으로 풀었는지, 언약 백성에게 주신 약속으로 풀었는지, 녹취록에서 그 문장을 그대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4. 부모가 이미 돌아가신 성도, 부모에게서 상처를 받은 성도, 자녀가 없는 성도를 설교 안에서 한 번이라도 직접 부르셨는지요. 그런 문장이 있었다면 몇 분 지점이었는지, 없었다면 그분들은 설교 어느 대목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을지 물어보십시오.
  5.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언급된 자리가 결론의 한 문장뿐이었는지, 아니면 공경해야 하는 이유와 이어져 있었는지요. 그리고 적용에서 효도합시다 외에 이번 주에 할 구체적 행동 하나를 말씀하셨는지, 그 문장을 녹취록에서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지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이 부모님을 공경합시다에서 끝나면 방향은 있어도 발걸음이 없습니다. 어버이주일 회중은 그 방향을 이미 알고 앉아 있으므로, 설교가 줄 수 있는 것은 이번 주 안에 실제로 옮길 수 있는 한 걸음입니다. 부모가 계신 분, 안 계신 분, 스스로 부모인 분이 각각 집어 갈 수 있도록 적어도 두 갈래를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설교 녹음으로 리포트 받기Preaching Lab 이 무엇인지 보기

함께 보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