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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4:1-17

에스더 4장 설교 —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침묵과 결단 사이

에스더 4장은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라는 한 구절 때문에 자주 강단에 오르지만, 그 한 구절 앞에는 베옷과 재, 사흘 금식,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책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어떻게 말할지, 그리고 에스더의 용기를 성도의 결단으로 옮기면서 그 결단이 회중의 자기 확신으로 흐르지 않게 붙드는 일이 설교자에게 조용히 요구됩니다. 설교를 마치신 뒤 녹음을 놓고 되짚어 보실 때 Preaching Lab 이 그 자리에 함께 있고자 합니다.

본문 한눈에

  1. 1-3절에서 모르드개와 유다 공동체는 조서 앞에서 베옷을 입고 크게 통곡하며, 성문에 들어갈 수도 없는 자리에 머뭅니다.
  2. 4-9절에서 에스더는 궁 안에서 옷을 보내 사정을 덮으려 하지만 모르드개는 거절하고, 하닥을 통해 조서 사본과 함께 왕 앞에 나가라는 요청을 전합니다.
  3. 10-12절에서 에스더는 부름 없이 왕 앞에 나가는 자는 죽는다는 법과 자신이 삼십 일 동안 부름받지 못했다는 사실로 답합니다.
  4. 13-14절에서 모르드개는 궁 안에 있다고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 다른 데로부터 구원이 오리라는 확신, 그리고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라는 물음을 차례로 건넵니다.
  5. 15-17절에서 에스더는 사흘 금식을 요청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며 자신이 먼저 결단하고 공동체에 지시를 내리는 자리로 옮겨 섭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보이지 않는 손, 이름 없는 하나님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없지만 14절의 「다른 데로부터」는 그 부재 속의 임재를 가장 가까이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방향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듯한 시절에도 역사가 그분의 손 안에 있음을 회중에게 보여 줍니다. 다만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설교자가 대신 말하지 않도록, 저자가 일부러 지킨 침묵을 설교도 존중해야 하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안전한 자리에서 위험한 자리로

에스더는 궁 안에 있고 모르드개는 성문 밖에 있으며, 13절은 그 안이 안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방향은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침묵이 곧 중립이 아님을 회중에게 묻고, 16절의 결단이 어떻게 두려움을 지나서 나오는지를 따라갑니다. 이때 설교자는 에스더의 결단을 영웅담으로 세우지 말고, 11절의 망설임을 충분히 살려 두어야 회중이 자기 자리에서 이 본문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금식하는 공동체, 혼자 가지 않는 결단

16절에서 에스더는 혼자 결단하되 혼자 가지 않고 수산의 유다인 전체에게 사흘 금식을 청합니다. 이 방향은 개인의 용기보다 공동체의 기도와 연대를 앞세우며, 한 사람의 결단이 회중의 중보 위에 서는 모습을 그립니다. 다만 금식 그 자체가 결과를 산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금식이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임을 분명히 해 두는 일이 요구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14절 한 구절로 본문을 덮어 버리는 일

「이 때를 위함」이라는 말이 너무 유명해서 설교가 1절부터 13절까지를 서론으로 지나치고 14절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베옷과 통곡, 에스더의 망설임, 모르드개의 경고가 사라지고 남는 것은 격려 문구뿐입니다. 본문의 무게는 14절 앞의 사흘 동안과 그 뒤의 결단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에스더를 성도의 자기 확신으로 바꾸는 일

회중에게 「여러분도 이 때를 위해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본문은 하나님의 섭리 이야기에서 개인의 소명감을 북돋는 이야기로 바뀌기 쉽습니다. 모르드개의 말은 확언이 아니라 「아닌지」라는 물음이고, 구원은 에스더가 없어도 다른 데서 온다고 먼저 말합니다. 그 순서를 뒤집으면 복음이 아니라 자기 사명감을 설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설교자가 채워 넣는 일

에스더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다 설교자가 본문에 없는 기도문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상상으로 덧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화나 상상이 본문을 대신하면 회중은 에스더서를 들은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됩니다. 저자의 침묵이 곧 메시지라는 점을 지키면서 섭리를 말하는 길을 찾으셔야 합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음에서 14절의 「이 때를 위함」에 이르기 전에 1-3절의 베옷과 통곡, 11절의 에스더의 망설임을 각각 몇 분이나 다루셨는지요, 아니면 14절이 설교 시작 몇 분 안에 바로 나왔는지요.
  2. 모르드개의 말 가운데 「다른 데로부터 구원이 오리라」는 확신을 설교에서 실제로 언급하셨는지요, 아니면 「이 때를 위함」만 인용하고 그 앞 문장은 건너뛰셨는지요.
  3. 하나님의 이름이 본문에 없다는 사실을 설교에서 말씀하셨다면, 그 뒤에 하나님의 뜻이나 음성을 본문 밖에서 덧붙여 말한 문장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몇 번인지 세어 보실 수 있는지요.
  4. 16절의 사흘 금식과 공동체의 참여를 설교에서 다루셨는지요, 아니면 에스더 한 사람의 결단만 남고 수산의 유다인들은 언급되지 않았는지요.
  5. 적용 대목에서 회중이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한 가지라도 이름으로 부르셨는지요, 아니면 「우리도 이 때를 위해 부름받았습니다」라는 문장에서 설교가 끝났는지요.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이 「용기를 내십시오」나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자리에 두셨습니다」에서 멈추면 회중은 감동은 받되 월요일에 무엇을 할지 모릅니다. 에스더의 결단은 침묵을 깨는 한 걸음과 공동체에 기도를 청하는 한 마디로 이루어졌고, 적용도 그 두 가지 크기의 행동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방향이 아니라 행동이 남을 때 회중은 본문을 자기 자리에서 들은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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