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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1-22

룻기 1장 설교 — 빈손으로 돌아온 나오미 곁에 선 룻

룻기 1장은 어버이주일과 결혼식에서 16-17절만 잘라 읽히는 일이 잦지만, 본문 전체는 흉년과 세 번의 장례와 한 과부의 쓴 원망을 지나서야 그 고백에 이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설교자에게 룻의 아름다운 말보다 나오미의 아픈 말을 먼저 강단에 올릴 용기를 요구합니다. 설교하신 뒤 녹음을 놓고 보실 수 있도록 Preaching Lab 이 이 페이지를 마련했습니다.

본문 한눈에

  1. 사사 시대의 흉년으로 베들레헴의 한 가정이 모압으로 내려가고, 거기서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이 모압 여인과 혼인한 뒤 열 해 만에 아들들마저 죽어 세 과부만 남습니다(1-5절).
  2.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갈 길을 나서며, 두 며느리에게 각자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세 차례 권하고 축복합니다(6-13절).
  3. 오르바는 입 맞추고 떠나지만 룻은 나오미를 붙좇고, 어디로 가시든 함께 가고 어머니의 백성과 하나님을 자기 것으로 삼겠다는 맹세를 합니다(14-18절).
  4. 베들레헴에 이르자 성읍이 떠들썩해지고, 나오미는 자기를 나오미가 아니라 마라라 부르라며 전능자가 자기를 괴롭게 하셨고 채워서 나갔다가 비어서 돌아왔다고 말합니다(19-21절).
  5. 그런데 본문은 그 원망 곁에 모압 여인 룻이 서 있고, 때가 보리 추수 시작 무렵이었다는 말로 조용히 닫힙니다(22절).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룻의 고백, 이방 여인이 여호와를 택하다

16-17절을 중심에 두고, 아무 보장도 없는 과부의 길을 택하며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룻의 결단을 따라가는 방향입니다. 15절에서 나오미가 오르바는 자기 백성과 신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말한 직후이므로, 룻의 말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신앙의 선택으로 읽힙니다. 이 길을 택하시면 룻을 영웅으로 세우다가 6절에서 먼저 움직이신 여호와를 놓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으셔야 하고, 오르바를 깎아내리지 않고 룻을 높이는 방법을 미리 마련하셔야 합니다.

나오미의 원망, 하나님 앞에서 쓴 말을 하는 신앙

13절과 20-21절의 나오미를 중심에 두고, 여호와의 손이 자기를 치셨다고 말하는 이 과부의 말이 불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여전히 상대로 붙드는 탄식임을 보이는 방향입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이 즐거움을, 마라가 쓴맛을 뜻한다는 것은 표준 사전이 다 전하는 사실이고, 이 대비가 20절 설교의 뼈대가 됩니다. 이 길은 회중 가운데 실제로 비어서 돌아온 분들에게 닿지만, 22절의 보리 추수와 룻의 존재를 성급히 들어 원망을 서둘러 덮지 않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흉년에서 추수로, 베들레헴에서 다윗까지

1절의 흉년과 22절의 보리 추수를 양 끝에 두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이 구속의 역사를 한 걸음 옮기고 계심을 보이는 방향입니다. 룻기 4장 끝의 족보와 마태복음 1장 5절이 이 장의 무명 과부들을 다윗과 그리스도의 계보 안에 놓기 때문에, 1장은 그 큰 이야기의 첫 장으로 읽힐 자격이 있습니다. 다만 4장으로 빨리 건너가려는 유혹이 커서, 1장의 슬픔에 충분히 머물지 않으면 회중은 아직 겪지 않은 결말을 미리 통보받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16-17절을 결혼식 시로 떼어내는 것

이 말은 신부가 신랑에게 한 말이 아니라 과부가 과부에게, 그것도 떠나라는 권유를 세 번 들은 뒤에 한 말입니다. 14절의 붙좇았다는 말이 창세기 2장 24절의 합한다는 말과 같은 낱말이라는 것은 참고서에 흔히 나오지만, 그것이 이 장면을 혼인 장면으로 바꾸어 주지는 않습니다. 룻이 무엇을 포기하고 이 말을 했는지, 곧 고향과 재혼의 가망과 안전을 다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빠지면 고백은 아름답기만 하고 무게가 없습니다.

오르바를 정죄하고 엘리멜렉을 심판하는 것

본문은 오르바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나오미가 그를 축복했고 그는 시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했으며, 15절도 사실을 말할 뿐 판결을 내리지 않습니다. 엘리멜렉의 모압 이주를 약속의 땅을 버린 불신앙으로, 세 죽음을 그 징벌로 읽는 설교도 많은데, 본문은 그 인과를 한 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읽는 전통이 있으니 소개하실 수는 있지만, 그것이 본문의 판결이 아니라 해석임을 회중이 알 수 있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나오미의 쓴 말을 서둘러 고쳐 주는 것

20-21절을 읽자마자 곧바로 그러나 하나님께는 계획이 있었다고 넘어가면, 본문이 굳이 남겨 둔 원망이 설교에서는 지워집니다. 본문 자체는 나오미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22절에 룻과 보리 추수를 나란히 놓아 둘 뿐입니다. 회중 가운데 지금 마라라 불리고 싶은 분이 있다면,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반박이 아니라 그 말이 성경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1. 녹취록에서 19-21절, 곧 나오미의 마라 발언을 다룬 대목이 몇 문장이었는지, 그리고 16-17절 룻의 고백을 다룬 대목이 몇 문장이었는지 세어 보셨는지요. 둘의 비율이 본문의 비중과 어긋나지 않았는지 보십시오.
  2. 오르바에게 붙인 형용사와 서술어를 전부 적어 보십시오. 본문에 없는 판결, 예를 들어 세상으로 돌아갔다거나 믿음이 없었다는 말이 한 번이라도 나왔는지 확인하십시오.
  3. 엘리멜렉의 모압 이주와 세 죽음 사이에 인과를 세운 문장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것을 한 해석으로 소개하셨는지 아니면 본문의 결론처럼 단정하셨는지 그 문장을 그대로 찾아 보십시오.
  4. 설교 전체에서 여호와 또는 하나님이 문장의 주어로 나온 횟수와 룻이 주어로 나온 횟수를 세어 보십시오. 6절과 22절이 언급되었는지, 아니면 룻의 결단만이 이 장을 움직인 것처럼 들렸는지 확인하십시오.
  5. 적용 대목에서 회중이 이번 주에 붙좇을 사람, 곧 비어서 돌아온 특정한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이 있었는지, 아니면 우리도 룻처럼 신실하자는 문장에서 끝났는지 그 문장을 찾아 보십시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에서 방향만 있는 적용은 룻처럼 신실하게 헌신합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택합시다 같은 문장으로, 듣는 분이 고개는 끄덕이지만 월요일에 무엇을 할지는 모릅니다. 착지한 적용은 룻이 실제로 한 일, 곧 떠나라는 말을 들은 쓴 과부 곁에 남아 그 길을 같이 걸은 일을 회중의 이번 주로 옮깁니다. 나오미가 누구인지, 그 곁에 서는 일이 이번 주에 무슨 모양인지가 설교 안에서 이름 붙여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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