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1-7
요한계시록 21장 설교 —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이 친히 눈물을 닦으시는 날
요한계시록 21:1-7은 장례식 강단과 송구영신 밤과 고난 중의 성도 앞에서 가장 자주 펼쳐지는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만큼 회중은 이 본문에서 위로를 기대하고 오는데, 본문이 실제로 하는 일은 위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선언이며, 마지막 절은 이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가르는 조건을 담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회중이 원하는 위로와 본문이 주는 위로 사이의 거리를 감당하셔야 하고, 설교 후에 녹음을 다시 들으며 그 거리를 스스로 재어 보실 수 있습니다.
본문 한눈에
- 1절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지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고 하며, 바다가 다시 있지 않다는 말로 옛 질서의 혼돈과 분리가 끝났음을 알립니다.
- 2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하는데, 성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성이 내려온다는 방향이 본문 전체의 축입니다.
- 3-4절은 보좌에서 나는 큰 음성으로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 눈물과 사망과 애통과 곡과 아픈 것이 없어진다고 선언하며, 이 절이 회중이 가장 기다리는 자리입니다.
- 5-6절은 보좌에 앉으신 이가 직접 말씀하시는 유일한 대목으로,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약속과 그 말이 신실하고 참되다는 보증, 그리고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를 값없이 주신다는 초대가 이어집니다.
- 7절은 이기는 자가 이것들을 상속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여, 이 위로가 견디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임을 밝히고, 바로 이어지는 8절이 그 반대편을 말합니다.
설교가 갈 수 있는 길 셋
위로의 설교: 하나님이 친히 눈물을 닦으신다
3-4절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이 사람 곁에 오셔서 손수 눈물을 닦으신다는 장면의 친밀함을 회중의 슬픔 위에 얹는 방향입니다. 장례식과 병상과 상실을 겪는 성도에게 가장 직접 닿습니다. 다만 이 방향은 4절에서 멈추기 쉬워서, 5-7절의 새롭게 하심과 이기는 자의 조건까지 끌고 가려면 설교의 후반부가 앞부분만큼 힘이 있어야 합니다.
방향의 설교: 우리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성이 내려온다
2절의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과 1절의 새 땅을 축으로, 성경의 마지막 소망이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을 새롭게 하시는 것임을 보이는 방향입니다. 창세기 1장과 이어 읽으면 창조와 새 창조가 한 줄로 서고, 지금 사는 삶과 몸과 일이 헛되지 않다는 데까지 갑니다. 이 방향은 회중이 익숙하게 품어 온 천국 그림을 조심스럽게 손보는 일이라, 어느 전통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본문이 말하는 바를 보여 주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약속의 설교: 신실하고 참된 말씀과 이기는 자
5-7절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며 그 말을 기록하라고 하신 것과 이기는 자에게 주는 상속을 다루는 방향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반복된 이기는 자라는 말이 여기서 마무리되므로, 박해와 타협의 압력 속에 있는 교회를 향한 견딤의 설교가 됩니다. 이 방향은 이기는 것이 무엇으로 이기는 것인지를 본문과 계시록 전체에서 답해야 하고, 그것을 도덕적 성취로 바꾸지 않도록 어린양의 피와 붙들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흔히 어긋나는 자리
4절에서 설교가 끝나 버립니다
눈물을 닦으신다는 장면이 워낙 강해서 설교의 감정적 정점이 4절에 오고, 5-7절은 마무리 낭독처럼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회중은 위로는 받지만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선언과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의 초대와 이기는 자의 조건을 듣지 못합니다. 본문의 유일한 직접 화법이 5절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면 무게중심을 다시 잡으실 수 있습니다.
7절 뒤의 8절을 없는 절처럼 다룹니다
본문을 7절에서 끊는 것은 정당하지만, 7절의 이기는 자라는 말은 8절의 목록과 짝을 이루어 뜻이 생깁니다. 8절을 아예 언급하지 않으면 이기는 자가 그냥 모든 사람이 되어 버리고, 반대로 8절을 정죄의 자리로 쓰면 위로의 본문이 갑자기 심판의 본문으로 바뀝니다. 한 문장이라도 8절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신다는 6절이 그 사이에 있다는 것을 붙드는 편이 본문에 가깝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을 버리는 그림으로 그립니다
본문은 성이 내려온다고 하는데 설교는 성도가 올라간다고 말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러면 1절의 새 땅이라는 말과 5절의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말이 설교 안에서 자리를 잃고, 회중은 이 땅에서의 수고와 몸과 창조 세계가 결국 없어질 것이라는 인상을 안고 돌아갑니다. 새 창조가 완전한 단절인지 갱신인지는 전통마다 강조가 다르지만, 적어도 본문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로임은 설교가 지켜야 할 사실입니다.
설교하신 뒤 스스로 물을 다섯 가지
- 녹음에서 4절의 눈물을 닦으신다는 장면에 쓴 시간과 5-7절에 쓴 시간을 각각 재어 보시면 어느 쪽이 길었는지요. 5절의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말씀을 설교 안에서 몇 번 말씀하셨는지요.
-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다는 2절의 방향을 설교에서 한 번이라도 명시적으로 말씀하셨는지요. 반대로 천국에 간다, 올라간다는 표현을 몇 번 쓰셨는지 세어 보시면 본문의 방향과 설교의 방향이 같았는지 드러납니다.
- 8절을 한 번이라도 언급하셨는지요. 언급하셨다면 그 자리에서 6절의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로 돌아왔는지, 아니면 8절에서 설교가 끝났는지 녹음의 그 부분을 확인해 보십시오.
- 이기는 자가 무엇으로 이기는지를 설교에서 한 문장으로 말씀하신 자리가 있는지요. 그 문장에 어린양이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들어 있었는지, 아니면 회중의 인내나 노력만 들어 있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 설교에서 쓴 예화 가운데 가장 긴 것의 길이를 재고, 그 예화가 끝난 뒤 본문의 절 번호로 돌아오기까지 몇 초가 걸렸는지 보십시오. 특히 장례식이나 눈물에 관한 예화가 4절 본문보다 길었다면 예화가 본문을 대신한 것입니다.
적용이 붕 뜨지 않게
이 본문의 적용은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늘을 바라보십시오에서 멈추기 쉬운데, 그것은 방향이지 행동이 아닙니다. 본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눈물을 닦으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이므로, 착지한 적용은 그 새롭게 하심을 미리 맛보이는 작은 행동, 곧 지금 우는 사람 곁에 가는 일과 옛 것이 지나가는 자리를 손보는 일이어야 합니다. 회중이 다음 주일 전에 실제로 할 수 있고, 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는 한 가지면 충분합니다.
- 이번 주 안에 최근 상을 당했거나 병중에 있는 교우 한 사람을 정해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하여, 위로의 말을 준비하기보다 십 분 이상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오십시오.
- 본문 3-4절을 손으로 옮겨 적어 지금 눈물 가운데 있는 한 사람에게 짧은 편지로 전하시되, 그분의 이름을 적고 하나님이 그 눈물을 아신다는 한 문장을 덧붙이십시오.
- 오래 미루어 둔 깨어진 관계 하나를 골라, 이번 주 안에 먼저 연락하는 한 걸음을 떼십시오.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약속을 믿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이 본문의 작은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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